[경향] 보편주의 재인식

2018. 2. 28. 10:1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오늘 국회에서 본회의가 열린다면 아동수당법이 의결될 예정이다. 올해 9월부터 6세 미만 아동의 94%가 월 10만원을 받게 된다. 애초 정부 원안은 해당 연령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이었으나 예산안 협상에서 야당들의 반대로 일부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수정되었다.


최상위 6%는 주지 않는 아동수당을 어떻게 봐야 할까? 예산 절감이 목적은 아닌 듯하다. 미적용 아동 규모가 매우 작고, 선별을 위한 행정비용까지 감안하면 재정 효과는 미미하다. 결국 복지담론을 둘러싼 명분 싸움이 낳은 설계로서, 어떤 경우라도 선별 방식을 가미해 보편주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보수야당의 집요함이 낳은 작품이다. 


자유한국당은 뜻을 이룬 것일까? 보편복지를 막았다고 자평할지 모르겠으나 지급 대상이 94%라면 상위계층 아동까지 거의 포괄하므로 사실상 보편 수당으로 볼 수 있다. 선별복지라는 의미보다는 공연히 행정비용을 유발한다는 문제만 부각될 뿐이다.


느새 우리나라에서 보편·선별 복지 논쟁이 선보인 지 8년이다. 이번 아동수당 도입에서 보듯 복지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복지담론 논의는 정체된 듯하다. 우선 자유한국당은 자신의 복지관을 정립하기 바란다. 같은 대상임에도 보육료는 모두에게 지원하면서 아동수당에선 최상위 일부를 제외하는 건 근거를 찾기 어렵다. 진정 선별복지를 추구한다면 가난한 아이에게 집중하는 꼼꼼한 제도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예산 절감도, 선별의 의미도 내세울 수 있다. 반대로 아동수당이 아동의 권리라고 생각한다면 의무교육, 무상보육, 건강보험처럼 모든 아이에게 제공해야 깔끔하다.


한편 무상급식 논란 이후 복지에 가장 적극적인 정부가 들어섰다. 이에 발맞추어 보편복지 쪽도 보편주의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기 바란다. 복지국가에서도 선별복지는 필요하다. 아동수당처럼 모두에게 제공하는 게 바람직한 복지도 있고, 국민기초생활보장처럼 일부만 선별하는 제도도 있다. 보편·선별 논의가 선악 이분구도에 기우는 걸 경계하자는 이야기이다. 지난 몇 년 우리 사회 복지논쟁에서 보편복지가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는 주변화되는 ‘불균등 발전’ 경향이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부양의무자의 부분 폐지 등 일부 개선은 있으나 기존 기초생활수급자의 생계급여는 제자리이다. 기초연금의 경우도 올해 25만원으로 오르면 일반 노인은 가처분소득이 늘지만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줬다 뺏는 기초연금’으로 아무런 혜택이 없다. ‘포용적 복지국가’를 주창하는 정부라면 보편복지와 함께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에도 충실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는 보편주의 담론이 개별 제도 너머로 확장돼야 한다. 아동수당의 도입으로, 우리나라도 서구 복지국가가 운영하는 복지 프로그램을 거의 갖춘 셈이다. 이제는 보편주의도 여러 ‘제도’를 엮은 복지 ‘부문’, 나아가 복지국가 ‘체제’ 수준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보편주의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포괄성’, 일정 급여를 보장하는 ‘적정성’을 핵심 축으로 삼는다. 무상보육, 아동수당처럼 단일 프로그램에서도 적용되지만, 본령은 개별 제도를 넘어서는 부문, 체제 수준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법정 연금은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 세 가지이다. 과거에는 국민연금만 존재했으나 지금은 3층 체계로 발전해 모든 노인이 최소한 법정 연금 하나는 적용받는 포괄성은 확보되었다. 반면 급여 적정성에서는 격차가 크다. 하위계층 노인은 기초연금뿐이지만 중상위 노인은 복수의 연금을 받고, 상위계층은 기초연금을 못 받더라도 퇴직연금을 일시금에서 연금 형태로 전환한다면 법정 연금의 총합이 훨씬 많다. 이에 보편주의 시야를 개별 제도에서 연금 부문으로 확장하면 계층별 급여 적정성을 위해 적극적 차등의 취지에서 하위계층을 위한 보충 기초연금도 모색될 수 있다. 이 보충연금은 제도만 보면 선별이지만 연금 부문에서는 전체 노인의 급여 적정성을 도모하는 보편주의 틀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시야를 더 넓히면 노인복지의 보편주의는 연금 부문에 그치지 않는다. 의료, 주거, 일자리, 지역공동체 등 체제 수준에서 평가될수록 더 실질적이다. 또한 보편주의가 동반하는 적극적 증세 역시 개별 제도를 넘어 여러 복지 효과와 증세 정치를 토대로 체제 수준에서 논의될 수 있다.


근래 헌법에 복지국가를 명시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그만큼 복지국가가 미래 비전으로 등장했다. 이제 보편주의도 개별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부문, 체제 수준에서 이야기하자. 그래야 여러 제도를 종합하는 복지국가 전략도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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