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저출산의 뿌리 / 양난주

2018. 3. 6. 17:58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부교수



“돈은 답이 아니다. 부모를 돈으로 매수하여 인구 감소를 막을 수는 없다.” 영국 복지국가의 이론적 기둥을 세운 리처드 티트머스는 저출산 문제를 다룬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1942년 영국을 뜨겁게 달궜던 아동수당에 대해서도 “저출산 해법은 아니다”라고 쐐기를 박는다. 그는 저출산을 부모의 반란(parents revolt)이라 불렀다. 자녀를 출산하지 않는 이 반란에는 사회에 대한 좌절이 반영되어 있다고 했다. 부모에게 돈을 줘서 출산을 늘릴 수는 없으며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가진 사회를 주장했다. 영국 복지국가가 등장하기 직전의 생각이었다.


2005년 출산율이 1.08이라는 통계청 발표가 나온 이래 정부는 부지런히 저출산 대책들을 추진해왔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구성하고,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세워야 하는 책임을 법으로 정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으로 바뀌었다. 무상보육과 가정양육수당이 도입되었고 육아휴직 제도가 거듭 개선되었으며 지방자치단체들은 다투어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다자녀가구에 대한 혜택을 늘렸다. 저출산은 충격이고 공포였으며 우리의 대응은 “출산을 늘리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2017년 출산율은 1.05로 더 낮아졌다. 티트머스의 해석을 빌려 말하면 우리 사회의 좌절은 더욱더 깊어졌고 반란은 더욱더 거세졌다.

왜일까? 서구의 한 학자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저출산을 급속하게 발전한 새로운 경제모델과 전통적 사회모델이 충돌한 결과로 진단했다. 일본, 한국, 싱가포르 등은 새로운 경제모델을 빠르게 도입하였지만 보수적 성역할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기존의 사회모델을 유지해왔다. 남녀 모두에게 교육이 확대되고 직업과 경력 추구가 당연시되었음에도 실제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차별은 지속되었고 가족 안에서 가사와 양육은 여성에게만 맡겨졌다.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직업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여성에게 혼자 감당해야 하는 출산과 양육은 점점 피하고 싶은 선택이 되었다. 이렇듯 저출산의 뿌리에는 변화한 경제 환경과 맞지 않는 가부장적 사회질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낡은 사회모델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새로운 사회모델을 도입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남성이 생계를 맡고 여성이 가사와 양육을 맡는 전근대적 성역할 규범에 기초한 제도와 질서를 바꿔야 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시민이자 노동자인 만큼 일과 돌봄의 권리와 책임을 함께 지는 사회모델을 수립해야 한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시민-노동자-돌봄자로서 권리와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 제도, 가족규범, 사회환경을 바꿔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젠더평등사회의 실현을 미룰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


10년이 넘도록 출산율에 변화가 없다고 질책하는 목소리가 있다. 정부 예산을 100조 넘게 투입했는데도 출산율에 변화가 없다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성이 일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에서 출산율을 높이는 건 어렵다. 6살 이하 자녀를 둔 여성의 고용률이 남성의 절반도 안 되는 나라. 오이시디 평균의 세배 가까운 남녀임금격차가 10년 동안 변하지 않는 나라. 미혼이건 기혼이건, 맞벌이건 아니건 여성이 가사와 자녀돌봄에 남성보다 4배나 더 긴 시간을 쓰는 나라. 이 성별 불평등이 지속되는 한 저출산 문제에 “돈은 답이 아니다”.


* 양난주 교수는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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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4547.html#csidx0773159c3b7c96284d90f60c52564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