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인] 참을 수 없는 세금정치의 무능함

2015. 2. 5. 19:0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연말정산 논란의 본질은 무능한 세금정치다. 바뀐 연말정산의 구조적 특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리지도 않았고, 증세를 하면서도 증세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세금과 복지를 묶어 다루어야 할 지점도 놓쳤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연말정산 대란이다. ‘세금 폭탄, 13월의 공포’란다. 이리 접근하는 게 옳은 일일까? 나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무능한 세금정치’라고 본다. 그릇에 든 물을 조심스럽게 옮길 수도 있었건만 엎질러버렸다. 이 지경까지 와야 했을까?

연말정산은 자신이 낸 원천납부액과 실제 내야 할 세금의 차이를 계산하는 절차다. 개별 가구의 1년간 지출을 미리 알 수 없기에 월급을 받을 때 일정하게 정해진 금액(간이세액)을 원천납부하고 나중에 실제 가계지출을 감안해 진짜 세금을 계산해서 그 결과에 따라 환급을 받거나 더 낸다. 소득세제는 세율과 공제로 구성돼 있다. 총소득에서 가구원 수, 가계지출에 따라 일정 비율의 금액을 공제하고 남은 소득(과표소득)에 세율을 곱해 세금을 산출한다. 공제에는 필수적인 가계지출에 대해서는 세금을 줄여주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 소득세에서는 공제가 너무 많다. 공제의 왕국이라 불릴 만하다. 2013년 1600만명의 근로자가 얻은 근로소득은 총 503조원이다. 이 중 306조원이 공제로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소득세율이 적용되는 과표소득은 197조원, 약 40%에 불과하다. 소득세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큰 직접세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서는 소득의 40%에 대해서만 그러하다. 공제로 빠지는 60% 소득에서는 고소득일수록 세금을 더 절감하는 역진성이 발생한다. 교육비로 1000만원을 공제받을 경우 6% 세율이 적용되는 하위 계층은 60만원, 38% 세율이 적용되는 고소득자는 380만원의 세금을 덜 낸다.

 

 

 

 

 

 
ⓒ연합뉴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1월2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말정산 논란에 관해 브리핑하고 있다.

 

 

이번 연말정산에서 핵심 변화는 자녀·의료비·교육비 등 소득공제 항목이 세액공제로 전환된 것이다. 특히 무상보육 전면화에 따라 자녀 관련 공제제도를 대폭 정비했다. 전향적인 개혁이다. 비록 5500만~7000만원 구간도 조금 세금이 늘지만 고소득으로 갈수록 누진적으로 세금이 증가한다. 이리 괜찮은 일이 어째서 세금 폭탄으로 몰리게 되었을까?

소득세제를 개정할 때 그것이 미치는 세금 변화는 소득계층별 평균치를 기준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2013년 소득세법 개정으로 3450만원 이하 소득자는 평균적으로 세금이 줄고, 3450만~5500만원까지는 변동이 없으며, 5500만~7000만원은 연 2만~3만원 늘고, 7000만원 초과부터는 누진적으로 세금이 증가해 1억원 소득자는 113만원, 3억원 소득자는 342만원을 더 내야 한다. 이것만 보면 서민 증세로 비판하기 어렵다. 5500만~7000만원 구간도 세금이 늘지만 사실상 상위 계층 증세이고 <조선일보>가 부자 증세로 규정했던 이유이다.

그런데 정부의 세금정치가 너무 안이하고 무능하다. 5500만원 소득자부터 세금이 증가한다는데 이건 소득계층별 평균치이다. 실제 연말정산으로 들어가면 동일한 소득일지라도 가구원 수, 지출 실태에 따라 세금액이 다르다. 수십 개의 공제 항목이 개별 가구별로 다르게 조합되기 때문이다. 6000만원 소득자가 평균 2만원 는다지만 어떤 가구는 20만원이 늘 수 있고, 어떤 가구는 20만원 줄어들 수도 있다. 동일 가구라도 매해 교육비·의료비 등 지출이 다르므로 소득과 세제 변화가 없더라도 자신의 세금은 해마다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다.

 

 

 

 

ⓒ연합뉴스
자녀를 둔 모든 계층에 대략 연 250만~500만원씩 보육료가 지원된다. 출생 공제, 다자녀 공제 폐지는 무상보육 확대를 반영한 세금 개편이다.

 

 

2013년 국세 통계를 보면, 8000만원 넘게 버는 사람 중에서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는 면세자가 867명이고, 반대로 1000만원 이하 소득자 중 세금을 내는 사람이 30만명에 달한다. 전자는 가족 수와 가계지출이 많고 후자는 저소득이지만 싱글로서 지출이 거의 없는 경우다. 이렇게 연말정산 결과는 동일 소득에서도 편차가 크고 오히려 저소득자가 고소득자보다 세금을 더 내는 경우도 발생한다. 연말정산의 구조적 특징이다.

이런 당연한 일이 ‘사태’로 돌변했다. 정부는 소득계층별 평균치로 개편 효과를 분석하더라도 실제 연말정산에서는 개인별로 다르다는 점을 미리 구체적으로 알렸어야 했다. 시민들이 이를 알게 된 것은 한 시민단체의 자극적 폭로, 자신이 실제 연말정산 계산기에서 세금을 확인한 이후이다. 심지어 정부는 연 9300억원을 더 걷으면서도 증세는 아니라고 강변한다. 시민들이 ‘속았다’고 느낄 만하다.

국민의 불만에서 ‘조세 정의’ 열망을 읽어라

어쨌든 5500만원, 심지어 3000만원 싱글 근로자도 세금을 더 내는 경우가 발생한다. 출생 공제, 다자녀 공제가 폐지됨에 따라 4000만원 이상 소득자로서 지난해에 아이를 낳았거나, 6세 이하 아이가 둘 이상이면 세금이 늘 수 있다(4000만원 미만 가구는 자녀장려세제로 1인당 최대 50만원 지원받음). 근로소득 공제가 줄어든 탓에 싱글 근로자도 세금이 는다.

이는 형평에 어긋나고 서민 증세일까? 여기서도 정부의 세금정치가 아쉽다. 출생 공제, 다자녀 공제 폐지는 무상보육 확대를 반영한 개편이다. 현재 연령에 따라 모든 계층에 대략 연 250만~500만원씩 보육료가 지원된다.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출산장려금, 다자녀 지원정책도 생기고 있다. 이러한 시대 변화를 감안해 자녀 관련 소득공제 제도를 통합했다. 이 과정에서 세금이 느는 중간계층 가구가 생기지만 무상보육 혜택에 비하면 훨씬 작은 증세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자녀 지원 제도가 공제에서 복지로 전환되고 있다는 걸 설명하며, 싱글 근로자에 대해서는 보완책을 마련하고 솔직히 증세라고 인정하면 되는 일이었다.

복지에 소극적인 세력은 세금만 이야기한다. 세금에 대한 저항을 키워 ‘작은 정부, 작은 복지’를 지향한다. 거꾸로 복지국가를 꿈꾸는 세력이라면 세금과 복지를 묶어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 조세 저항을 넘어 복지재정 확충에 나설 수 있다. 지금 정부도, 야당도, 언론도 오로지 세금만 부각시킨다. 정부는 안이하고, 야당은 조세 저항에 편승하며, 언론은 기사 키우기에 전념한다. 연말정산 논란을 생산적으로 풀고자 하는 세금정치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이 표출한 불만이 연말정산 손익에만 한정된 건 아니다. 그 뿌리에는 과세 형평성에 대한 분노, 조세 정의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다. 왜 근로소득만 손보고 금융소득에는 너그러운가, 왜 이명박 정부가 내린 법인세를 그냥 놔두는가 하는 외침이다. 이왕 대책을 마련할 거면 연말정산 항목 보완에 그치지 말고 금융소득, 법인세 등 전체 과세체계를 정비하는 누진 증세 논의로 가자. 시민들도 복지가 권리로 자리 잡는 만큼 자신의 책임도 생각해야 할 때이다. 연말정산 논란을 조세 개혁 에너지로 삼는 진정한 세금정치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