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저출산’에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

2015. 2. 5. 18:57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이건범 | 작가·한글문화연대 대표,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어린 시절에 봤던 표어 가운데 가장 재미있지만 끔찍했던 것이다. 최근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현재 3% 중반으로 추정되나 저출산·고령화 여파로 이르면 오는 2018년 이후에는 2%대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했다. 공짜로 남성의 정관수술을 해주며 인구 폭발을 걱정하던 나라에서 어느새 애를 낳지 않아 경제성장이 멈출 거라고 걱정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겨우 한 세대만의 일이다. 그런데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가 우리 삶을 짓누르니 영 찜찜하다. 앞일을 모르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저출산 문제가 나올 때면 늘 ‘고령화’가 따라붙는다. 인구의 변동이라는 측면에서 같이 묶나 본데, 이게 참 야릇하다. 고령화 현상이 마치 아이를 적게 낳아서인 것처럼 설명하기 때문이다. 숫자와 인구 비율로만 따지면 그리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수명이 늘어나는 일과 어쩔 수 없어서 애 낳지 않겠다는 흐름을 어찌 같은 틀에서 보려 하는가? 두 현상 사이엔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다. 아이를 많이 낳았어도 고령화는 노인 인구의 절대적인 증대로 어차피 닥치는 문제였다.

저출산의 원인을 살펴보면, 가족에서 개인으로 생각의 중심이 바뀌어 그렇다는 말도 있고, 아이 키우는 부담이나 애 낳은 여성의 사회생활 단절 때문에 아이 낳기를 꺼리는 것이라고도 한다. 둘 다 맞는 이야기다. 세상이 바뀌니 가치관이 바뀌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입시지옥에 취업전쟁인데 무슨 배짱으로 마구 낳겠는가. 양쪽 다 아이 적게 낳는 게 문제라는 인식은 같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애 많이 낳자는 운동을 벌이고 한쪽에서는 보육을 비롯한 여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저출산은 정말로 문제일까?

저출산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노동력 감소, 소비 위축, 군인 수 감소, 학생 수 감소 등을 문제로 꼽는다. 2017년을 기점으로 15세부터 64세까지의 생산가능인구가 줄기 시작한다지만, 갑자기 일할 사람들이 무더기로 증발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인구가 줄면 서서히 육체노동을 중심으로 몸값도 올라갈 것이다. 이게 왜 문제인가? 굳이 고학력에 좋은 학벌이 아니어도 먹고살 만한 사람이 늘어나는데. 내가 보기엔 싼값으로 쓸 수 있는 노동 인구가 줄어드는 걸 염려하는 목소리가 가장 높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인 이민 정책이 자꾸 대책으로 튀어나온다.

다음으로, 우리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는 까닭은 수출 대기업 위주의 성장 효과가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는 문제와 비정규직 등 고용 불안으로 내수가 침체하는 데에서 찾는 게 마땅하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이 올라가면 소비가 늘고 성장률도 오른다는 실증적인 연구도 있다. 소비 위축의 실질적인 원인을 모호하게 인구 감소로 돌려서는 안 된다.

청년이 줄면 징집 대상이 줄겠지만 모병제 이야기도 나오는 마당에 군 전력 현대화와 남북관계 개선 등으로 해결할 문제를 과거의 낡은 잣대로 재는 것 역시 이상하다. 그리고 학생 수가 감소하면 학급당 학생 수도 줄어들어 교육 여건이 좋아지는데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육 지원이나 여성 노동력 보호 등은 그 자체로 실시해야 할 까닭이 있는 제도이지 저출산 대책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아이를 적게 낳건 많이 낳건 보육 지원의 질을 높이고 여성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일은 문명사회를 추구하는 기본자세다. 살 만하면 자연스레 사람들의 생각도 바뀔 것이다. 아직도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할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