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9. 21:45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새해 들어 주위에서 힘찬 포부를 듣기 어렵다. 복지 분야도 그렇다. 2012년엔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꿈을 꾸었다. 작년, 재작년은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 역주행을 막자는 급한 과제가 있었다. 올해는 복지공약 구조조정도 마무리되었고 큰 선거도 없다. ‘2015년엔 이거다’라고 말할 게 안 보인다. 오히려 작년 하반기부터 박근혜 정부가 공세적이다. 이전에는 복지공약 후퇴 부담으로 수세적이었다면 공약 조정을 끝내자 ‘무상복지’ ‘공짜복지’ 딱지로 보편복지를 몰아붙인다.
OECD 회원국 중 복지가 거의 꼴찌인 나라에서 말할 게 없을 리 없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못 살겠다 아우성치고 말문만 트이면 요구가 넘친다. 결국 보편복지가 사람들의 에너지를 모아낼 핵심 의제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대선에서 절정에 달했던 보편복지 바람은 이제 새로운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당시 보편복지가 시민의 열망에 부응했던 이유는 ‘차별 없는’에 있었다. 시장의 잔혹함에 지친 시민들이 나라가 주관하는 복지에서조차 사람을 차별하는 건 곤란하다는 정의감을 발휘했다. 박근혜 후보조차 무상보육, 기초연금을 내놓았으니 보편복지가 판정승한 셈이다. 그런데 지금은 보편복지라는 ‘담론’만으론 허전하다. 어느새 시민들은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복지를 구현할지 구체적 길을 묻고 있다.
우선 복지증세 운동이 절실하다. 올해도 무상급식, 누리과정, 기초연금 예산을 둘러싸고 갈등이 재현될 것이다. 재정 부족은 국정운영자인 박근혜 정부에 제일 큰 부담이지만 복지 확대를 주창하는 보편복지에도 심각한 장벽이다. 보편복지의 목표가 현재의 박근혜 복지가 아니지 않은가? 증세 논의가 불가피하다. ‘복지에만 쓰는 세금, 사회복지세’와 같이 구체적인 실행안을 내놓고 시민의 참여를 모으는 기획이 필요하다.
복지서비스 질도 중요한 의제로 등장했다. 청와대가 무상급식을 공격하는 이유의 본질이 ‘무상’에 있을까? 청와대 역시 보육에선 무상을 옹호한다. ‘예산이 없다면서 무상급식해야 하는가’, ‘무상급식 질이 나쁘다’ 등 예산 부족, 서비스 질이 비판의 실제 소재이다. 청와대가 재정난, 서비스 질로 보편복지를 공격한다면, 보편복지 역시 재정 확충 비전을 보여주고 무상급식 질도 괜찮다는 걸 알리는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또한 민간시설에 의존하는 무상보육의 질에 대한 논란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설득력 있는 개혁안을 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도 전면에 와야 한다. 지난 몇 년 보편복지가 중상위계층의 복지 혜택을 늘렸다면 기초생활보장, 장애인복지 등 어려운 사람의 복지는 제자리에 머물렀다. 복지의 불균등 발전이다. 세모녀법이 통과되어도 세 모녀는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하고, 기초연금조차 기초생활 노인에게는 ‘줬다 뺏기’이다. 세모녀법, 기초연금관련법 재개정 등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운동을 본격화하자. 근래 활기를 내는 복지시민단체, 복지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마을복지 만들기에 나선 지역풀뿌리가 서로 힘을 합치면 가능한 일이다.
사회보험 영역에선 보험료 인상을 진지하게 논의하자. 사보험에 종속되느니 차라리 건강보험료를 더 내서 병원비를 해결하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되살아나길 바란다. 현재 취업자의 절반이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다. 고용보험은 불안정 노동자일수록 절박한 제도인데 이들 다수가 사각지대에 있고 설령 받더라도 실업급여액과 수급기간이 빈약하다. 고용보험료 인상은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노사의 재정 기여로 주로 불안정 근로계층이 혜택을 보는 노동자연대 의의를 지닌다.
2015년 복지를 둘러싼 지형 변화를 주목하자. 포괄적 원론만으론, 박근혜 복지 비판만으론 앞으로 내딛기 어렵다. 보편복지 담론을 넘어 실질적 의제로 나가자. 이미 복지시민이 구체적으로 묻고 있지 않은가? 복지증세는 어떻게 가능할지, 무상급식·보육 질은 괜찮은지, 세 모녀와 불안정 노동자를 위한 복지는 무엇인지, 공적연금 강화 경로는 어떤 건지, 병원비 부담에서 어떻게 벗어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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