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10. 22:25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나는 국민연금이다. 요새 마음이 편치 않다. 이웃집 공무원연금 살림이 어려워졌다며 가계부를 전면 손볼 모양인데 공연히 우리 집으로 불똥이 날아왔다. 하향평준화란다. 내 키가 작으니 이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툭하면 나를 ‘용돈연금’으로 깔본다. 나와 닮아가는 게 ‘공적연금 포기’란다. 그럼 도대체 난 뭐란 말인가?
그 용돈의 실체를 보자. 올해 약 290만명의 노인에게 달마다 평균 33만원씩 드린다. 이것만 보면 용돈이 맞다. 나는 1988년 태어났다. 은퇴 후 나를 받으려면 60세 이전까지 10년은 가입해야 하는데 당시 45세가 넘은 사람들은 이 기간을 채우기 어려워 최소 5년만 납부하면 수급권을 부여받았다. 내가 도시 지역까지 확대된 1999년에는 당시 50세 이상에게 동일한 혜택을 제공했다. 이게 특례노령연금인데 현재 수급자 중 절반이 여기에 속하고 연금액은 가입 기간이 짧은 탓에 평균 21만원으로 적다. 나의 실체를 이해하려면 이 ‘특례’를 빼고 봐야 한다.
연금은 다른 복지와 달리 세대간 관계를 따진다. 두 세대는 지나야 성인으로 인정받는 우리 동네에서 나는 아직 청소년이다. 1988년에 태어났으므로 원년에 나에게 가입해도 현재 26년이 최장이다. 우리 집안에선 20년 이상 지나야 제대로 된 노령연금으로 대접받는다. 이에 해당되는 수급자는 지금 14만명에 불과하지만 평균 연금액은 87만원이다. 내가 커갈수록 당신의 가입 기간도 길어져 그만큼 연금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2007년 법개정으로 급여율이 2028년까지 40%로 낮아지고 있어 다시 연금액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당신은 내 가족에게 생긴 또 하나의 변화를 모른 체한다. 예전엔 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2007년 개혁으로 나는 깎였지만 동생 기초노령연금이 태어났다. 나만 보면 ‘연금 축소’지만 나와 동생 몫을 합치면 실질연금액에서 상위계층은 줄고 서민은 늘어나는 하후상박 효과가 생겨났다. 이에 더해 내 사촌인 퇴직금이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면서 노후연금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전엔 법적 연금이 나 혼자였으나 점차 나, 기초연금, 퇴직연금이 당신 노후를 함께 책임진다. 당신이 노동자라면 40년 기준으로 각각 급여율이 40%, 10%, 20%여서 합산하면 70%이고, 실제 받을 금액은 평균 가입 기간 24년을 적용하면 내 몫 24%의 두 배인 50%에 이른다. 비록 퇴직연금은 사적기관에서 운용되고, 기초연금은 현 정부에서 훼손되는 문제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 집안이 3형제라는 건 당신의 노후보장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이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그렇다면 면목없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당신의 기대수명은 70세였다. 지금은 82세이고 장차 90세에 근접한다. 내가 책임져야 할 당신의 노후가 길어만 가니 나 역시 어쩔 도리가 없다. 이젠 내가 목소리를 내야겠다. 나는 급여와 보험료의 짝을 맞추는 무척이나 단순한 놈이다. 앞으로 연금액을 이야기할 땐 꼭 보험료도 다뤄주기 바란다. 내 40% 급여율이 낮다고 핀잔주지만 이를 유지하는데도 필요한 보험료율이 16%다. 당신이 내는 건 고작 9%이고. 그 차이만큼 미래 세대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내가 세상을 떠난 후 내 자식, 손주들이 나를 어떻게 평할지 솔직히 두렵다. 이제는 더 받고 싶으면 얼마를 더 낼 건지 밝혀야 하고, 당장 올리지 못할 거라면 용돈연금이라 흠집 내지 말아야 한다.
내친김에 부탁한다. 앞으로 나보단 내 동생 기초연금을 더 챙겨주라. 사실 난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돌려주지 않는 쌀쌀한 놈이다. 노동시장이 불안정해 보험료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비정규 노동자와 영세자영자에게는 별 도움이 못된다. 또한 당신이 덜 낸 보험료 부족분을 후손에게 그대로 넘기는 무책임한 놈도 바로 나다. 이런 나에 비하면 동생은 참 기특하다. 보험료 납부 여부를 따지지 않고 대한민국 노인이면 챙긴다. 후세대에게도 빚을 넘기지 않고 당해 세금으로 필요 재정을 충당하는 깔끔한 놈이다. 진정 초고령사회에서 당신의 노후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더 이상 나를 용돈연금이라 놀리지 마라. 강 건너 사보험 집안만 홍보해주는 꼴이다. 정성껏 세금을 모아 내 동생을 튼튼히 키워라. 그게 최선의 공적연금 강화이다.
'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 > 언론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향] ‘보편복지’ 담론 넘어 의제로 (0) | 2015.01.09 |
---|---|
[시사 인] 무상급식을 공격하는 사람들… (0) | 2014.12.19 |
[천만다행] 도봉구 작은 공간 ‘숲속애(愛)’의 기적 (0) | 2014.11.30 |
[경향] 생애주기별 공약 파기 (0) | 2014.11.16 |
[jtbc 밤샘토론] 무상복지 힘겨루기, 해법은 없나? (0) | 2014.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