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다행] 도봉구 작은 공간 ‘숲속애(愛)’의 기적

2014. 11. 30. 20:47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 이 기사는 서울시복지재단 웹진 '천만다행'에 실린 것입니다.

 

 

 

지난 해 숲속애를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가운데)과 숲속애 주민들. 숲속애는 ‘좋은 민관 협력’ 사례로 알펴져 다른 지역 마을에서 자주 찾는 탐방 코스가 되었다. (사진 김미현 도봉N 시민기자)

 

조윤희씨(46세, 여)는 “인터뷰는 나중에 하고 일부터 도와 달라.”면서 기자를 마을 텃밭으로 이끌었다. 텃밭에는 방금 배추를 뽑은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기자가 도와야 할 일은 텃밭에 널브러진 배춧잎들을 치우면서 시래기로 쓸 만한 것들을 골라내는 것이었다. 조씨와의 인터뷰는 졸지에 텃밭에서 함께 일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주민들 사이에서 ‘마님’으로 통하는 조씨는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작은 공간 ‘숲속애(愛)’의 초창기 멤버다. 2년 전 우연히 협동조합에 관한 강의를 듣고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무언가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라는 생각으로 이곳에 발을 들였다. 스스로 “곱게 커 온 탓”에 텃밭 가꾸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는 조씨는 이날도 김장용 무를 채 썰다 손을 벤 어딘가 모르게 서투른 주부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주민들마다 삽질이나 잡초 뽑는 일 등을 곧잘 시키곤 해 ‘마님’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렇다고 “맨 입에 부리지는 않고 텃밭에서 난 야채나 감자 같은 걸 꼭 나누어 준다.”고 했다. 기자도 인터뷰가 끝난 뒤 갓 담근 배추김치에 싼 굴 보쌈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도봉구 작은 공간 숲속애, ‘프로젝트 이노베이션’ 세계 2등 수상
 

‘마님의 분부’대로 배추 잎을 마당 한쪽에 모아 놓는 일을 마친 뒤에야 숲속애 공간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때 어린이집 교사였다는 지은림씨(49세, 여)가 배추 양념용 파를 다듬고 있었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어서 그녀의 손길은 무척 빨랐다. 집보다 이곳에서 하루 중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그녀는 만 1년 된 숲속애의 ‘공간 지기’다. “누군가 여길 찾았을 때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서운해 할 것 같아서” 낮과 밤 가리지 않고 숲속애 공간에 자주 나와 있다고 했다.

 

 

숲속애 공간지기 지은림씨(왼쪽). 그녀는 인터뷰하면서 연신 김장용 파를 다듬었다.

 

지씨에게 따뜻한 커피를 한 잔 건네받고 대뜸 수상 소감부터 물었다. “뭐 달라진 건 없어요, 주민들이 그 동안 함께 해온 걸 (주최측에서) 높이 산 거 같아요.” 숲속애는 지난 달 미국 컬럼비아 대학이 개최한 혁신적 사고방식 연구대회인 ‘프로젝트 이노베이션’에서 세계 2등을 차지했다. 이 대회는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고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를 모아 연구하고 전 세계에 소개하기 위해 컬럼비아 대학이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열고 있다. 숲속애는 사단법인 ‘마을’을 통해 이 대회에 공모했고 세계적인 혁신 사례로 뽑혔다. 그런데 세계 2등을 한 것 치고 지씨의 소감은 다소 싱거웠다. 숲속애 외에도 영국, 인도, 태국, 케냐 등에 있는 4개 팀이 함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숲속애가 프로젝트 이노베이션에서 2등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린 컬럼비아 대학의 관련 홈페이지 내용.

 

컬럼비아 대학 측은 블로그(http://www.social innovationtoolkit.com)를 통해 숲속애가 “마을의 공간을 바꿈으로써 교육의 의미를 재정립”했으며 “세대를 넘나드는 유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또 “오늘날 어떠한 기준이나 책임에 대해 새로운 도전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이 사실이 널리 알려져 주요 일간지와 지역 신문은 물론 SBS, TBS 등 방송사에서도 지씨를 많이 인터뷰한 뒤였다. 취재에 응하는 게 귀찮을 법도 한데 지씨는 김장을 위해 바쁜 손을 놀리면서도 친절하게 답했다.

 

김장을 하는 이유를 물으니 “숲속애를 오가는 이웃들과 그냥 나눠 먹기 위해서”란다. 주민들은 수시로 밥과 반찬을 싸오거나 이곳에서 함께 모여 밥을 해 먹는다. “옛 시골처럼 밥 먹을 때 누가 오면 수저 하나만 더 놓고 먹는 것처럼 밥을 먹는다.”고 지씨는 말했다. 이 날도 해가 넘어갈 무렵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더니 함께 밥을 해 먹었다.

 

도봉구 방학동 518번지. 숲속애가 있는 이곳은 원래 방치된 땅이었다. 사천 목씨 종친회 소유이긴 하지만 워낙 외진데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다 보니 폐가 주변은 온통 쓰레기가 넘쳤다. 서울 도심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낮에도 귀신이 나올 법한 곳이었다. 낮에는 가끔씩 담배 피우는 아이들이 찾기도 해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곳을 “어떻게 잘 가꾸어 보자.”며 몇몇 주민들이 3년여 전에 모였다. 30명의 출자자를 모아 보증금 1천만원과 함께 이곳을 임대했다. 구청의 도움을 받아 쓰레기를 치우고 텃밭을 먼저 일구었다. 이런 과정은 서울시 복지재단 블로그(http://blog.naver.com/swf1004)를 통해 지난 해 소개한 적이 있다.

 

 

버려진 야산과 폐가를 주민들의 생태놀이터로 바꾼 힘은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벽돌 기금’을 모으고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 지원을 받아 폐가를 깨끗하고 열린 공간으로 바꿀 수 있었다. 텃밭에 포근한 공간까지 생기니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컴퓨터, 복사기, 책꽂이와 책 등 필요한 물품은 주민들이 서로 내놓았다. 봄·가을엔 채소를 가꾸며 뒤뜰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아이들은 자연과 함께 뛰놀 수 있었다. 공간지기 지씨는 ‘지끈 공예’ 등 어린이집 교사 때 익힌 손재주를 주민들과 나누었다. 주민들이 함께 저녁밥을 먹고 나면 종종 궁금해하는 주제를 골라 조촐한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달 공간 마련 1주년 잔치 때는 수십 명의 주민들이 먹을거리를 해와 함께 나눠 먹었다. 숲속애 공간은 주민들에게 1박2일 수련회 공간으로 빌려주기도 한다. 숲속애는 그렇게 이름대로 ‘숲속에 있으면서 주민들이 서로 사랑(愛)을 나누는 곳’이 되었다.

 

 

 한 때 폐가였던 도봉구 방학동 518번지는 주민들의 벽돌기금과 서울시의 지원으로 깨끗한 주민 공간이 되었다.

 

이렇게 주민들이 함께 한 일련의 과정을 혁신적 사고방식 연구대회를 주최한 ‘프로젝트 이노베이션’이 높게 평가한 것이다. 컬럼비아 대학 측은 “주민들이 기존 방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창조적인 해결책을 찾아냈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만약 구청에서 방학동 518번지 우범지역을 무작정 폐쇄시키거나 했다면 지금의 ‘숲속애’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혜를 모아 버려진 땅을 새롭게 바꾸고 함께 누리는 ‘마을공동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숲속애는 얼마 전부터 ‘좋은 민관 협력 마을공동체’ 사례로 전국 각지에서 탐방을 오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하지만 ‘숲속애’에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서울시의 지원이 있었지만 이 공간을 계속 가꿔 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주민들의 시간과 노력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지씨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지씨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맑은 물에 헹구면서 내년 숲속애 운영을 걱정하고 있었다. 지씨가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하자 옆에서 일을 거들던 주민이 “지금까지 온 것도 잘 한 거죠, 함께 하면 되죠.”라고 격려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는 일찍이 저서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서 “미래 세계의 희망은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고 했다. 숲속애를 보면 간디가 생전에 했던 이 말의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온다.

 

 

이상호 | 서울시 복지재단 시민기자,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