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복지국가운동 '연대', 어떻게 할 것인가?

2014. 11. 9. 21:0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복지국가운동 '연대', 어떻게 할 것인가?

- 이창곤 소장의 "한국 복지국가운동 어디로"에 대한 의견

 

 

오 건 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이창곤 소장이 "한국 복지국가운동 어디로" 제목의 칼럼을 통해 복지국가운동의 연대를 소망하는 글을 썼다. 현재의 침체된 복지운동을 재활성화하기 위한 '내부 성찰'과 '상호 연대'를 제안하는 좋은 글이다. 문제의식의 방향에 100% 동의한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는 더 이야기가 필요하다. 칼럼을 읽고 이창곤 소장에게 전한 의견을 다듬어 정리해 둔다.

 

1. 지난주 20주년을 맞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복지국가운동 연대를 위한 '초보적 수준의 전국적인 연대체”를 제언했고, 이소장은 이것의 성사를 기대하며 칼럼을 썼다. 어떤 형식이든 열린 소통은 필요하다. 나 역시 느슨한 형태의 자리가 정례적으로 있으면 좋겠다. 이는 많은 실무가 요하는 것도 아니므로 뜻을 모으면 조만간 가능할 것이다.

 

2. 하지만 그 다음 연대방식은 논의가 더 필요하다. 지금 복지운동이 침체라면, 그것의 한 이유가 '연대체'가 없어서가 아니다. 현재 '기초생활보장 연석회의', '국민연금행동',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공공부조, 연금, 의료 핵심 영역에서 나름 연대체가 대응하고 있다. 집행위 참여단체의 리더십도 존중되는 편이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민주적 의사조정도 행해지고 있다고 본다. 다만, (일단 주체 조건이 다른 '기초생활보장 연석회의'는 논의로 빼고), 적극적 대안 의제 활동보다는 정부 방안을 비판하고 저지하는 'negative' 활동에 치중한다. 오랫동안 활동 방식이 그래왔고, 박근혜정부가 개악을 추진해 그럴 수밖에 없는 면도 있다.

 

3. 개악저지 운동의 필요성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에 나서야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비록 열심히 활동하지는 못하지만 내만복 역시 각 공동기구에 참여한다. 그런데 동시에 적극적(positive) 의제 개발, 확장, 실현에도 그만큼의 힘을 써야 한다. 시민들은 복지의 실질적 확장을 원한다. 구체적 그림을 보여주는 세력에 호응하고파 한다. 안타깝게도 시민사회, 야당을 보면 모두 '원론'에 머무는 듯 보인다. 원론적, 포괄적, 현실성이 약한 대안이 현재의 침체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닌가? 예를 들어, 무상의료가 그렇고(어떻게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늘릴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경로 제시가 있는가?), 공적연금이 그렇다(공적연금 상향의 구체적 경로는 무엇인가?).

 

4. 구체적 대안 활동이 필요하다. 이미 그러한 움직임은 시작되었다. 아직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지만, 건강보험하나로(보장성 강화), 사회복지세 도입(복지재정 확충) 등이 사례이다(과거 사회연대전략도 연금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구체적 의제였다).

 

5. 구체적 대안 의제로 가면 복지운동 내부에 이견이 존재한다. 당연한 일이다. 대안 운동은 미래 운동이다. 미래 구체 설계도가 어찌 모두 같을 수 있겠는가? 실천만이 성패를 검증한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이 미래 구체적 의제를 두고 내부 논란이 있으며, 이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분화이다.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는 적극적 실천으로 읽어줘야 한다.

 

6. 복지국가운동의 '연대'는 어떤 방향이 적절할까? 이젠 '포괄적 수준의 복지국가론 혹은 보편복지론'으로 에너지가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이미 그러한 단계는 지났다. 앞으로 나아가는 구체적 진지를 만들어야 한다. 의제에 동의하는 세력들이 함께 실천에 나서는 '의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하나로(정부/사용자 책임 확대 -> 건강보험료 인상), 사회복지세 도입(1% 부자증세 -> 중간계층부터 참여하는 누진 복지증세), 기초연금 강화(국민연금 상향 -> 기초연금 인상) 등이 그것이다. 요새, 마을만들기와 결합한 '지역복지공동체'(행정중심 복지전달체계 -> 지역 복지공동체 가버넌스 구축)도 추진해볼만 의제라고 생각한다.

 

7. 내만복은 복지국가를 바라는 회원들의 모임이다. 내만복을 통해서 자신의 복지국가 꿈을 키우고 공부하며 소속감을 느낀다. 이러한 공동 경험을 거름으로 자신의 현장에서 복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만복의 공식 활동은 대부분 연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실제 내만복 단독 명의의 논평, 활동은 그리 많지 않다. 사회복지세, 거리서명전, 복지국가촛불, 강연회, 줬다뺏는 기초연금 등 대부분이 의제에 동의하는 단체들과 함께 진행된다. 아직은 참여단체가 많지 않지만 조금씩 동조단체를 늘려나가려 노력한다. 이렇게 내만복은 회원이 있는 독자 단체이지만, 회원사업 외에 복지운동은 다른 단체와 함께 의제별 네트워크를 만들고 또 거기서 열심히 활동하려 한다. (사실 내만복 조직 자체가 네트워크 성격을 지닌다. 모두 다른 영역에서 일하는 생활인, 활동가들이 모여 운영위원회를 이룬다. 상근자 없는 내만복이다...물론 돈이 없어 그리 버티는 거지만 ㅠ ㅠ).

 

8. 2010년부터 현재까지를 복지운동 시즌1이라고 칭하면 핵심어는 '보편복지'일 것이다. 시대적 복지민심과 보편적 복지원리가 만나 복지바람을 만들었다. 대략 시즌1은 마무리된 듯 하다. 이후 시즌2로 상승해야 한다. 시즌1만 보면 지금의 상황이 '침체'로 느껴질 수 있지만, '시즌2'를 기대하며 '활력'을 보자. 복지민심이 원하는 구체적 의제에 집중하고 성공모델을 하나씩 만들어가자. 굳이 이름 붙히면 시즌2 핵심어는 '의제별 네트워크'일 수 있다. 시민의 복지 체험과 함께 움직이는 '아래로부터 진지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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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 시각] 한국 복지국가운동, 어디로 / 이창곤 (2014. 11. 3. 한겨레신문)

 

 

지난 금요일 뜻깊은 행사에 참여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20돌을 기려 연 심포지엄 ‘한국 복지국가 운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었다. 특히 기자가 사회를 맡은 ‘복지국가운동단체에게 묻는다’란 심포지엄 2부 토론회에는 복지 관련 주요 운동단체가 대거 참여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구의 우리복지시민연합 등에서 민주노총, 여성단체연합 등 기존의 사회운동 조직에 이르기까지 두루 함께했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10개 이상의 단체들이 자리를 같이한 것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자리였다.

 

아마도 2011년 7월 출범한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 이래 이렇게 많은 복지운동단체가 머리를 맞댄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연석회의는 전통적인 보건복지단체와, 양대노총 등 노동계를 비롯해 교육·여성·주거·의료 등 총 402개 단체들이 함께하면서 큰 기대를 모으며 결성됐으나 뚜렷한 활동을 벌이지 못했다. 오히려 “무책임한 사회운동의 전례를 남겼다”는 평가를 얻으며 해소됐다. 이날 각 단체는 활동상을 소개하고, 현 단계 좌표와 과제를 짚으며 나름의 운동전략을 제시했는데, 비록 그 내용의 편차와 강조점은 달랐지만 현실 진단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세 모녀 사건’과 국밥값을 남겨놓고 자살한 노인의 사례에서 보듯 보편적 복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점차 커지는데도, 한국의 복지체제는 시장화·영리화의 흐름을 타면서 더욱더 잔여주의적 형태로 고착화하고 있다는 우려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복지국가운동 진영의 새로운 좌표 설정과 뜨거운 연대가 절실하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은 듯하다. 우선 연대가 구체화하려면 각 단체의 대표나 대표급들이 참석해 뜻을 모아야 했지만, 대표가 참석한 곳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향후 이들 단체의 연대의 가능성과 수준은 단체들을 ‘소집’해 “초보적 수준의 전국적인 연대체”를 제언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의지와 리더십에 상당 부분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상 사회복지위원회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복지운동사에 헌걸찬 존재감을 보여왔다. 오늘날 그나마 취약계층의 보루 구실을 하고 있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도 1994년 12월5일 이 위원회의 ‘국민생활최저선 확보운동 선언’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근년 들어 사회복지위원회는 차세대 양성과 내부 의견 조율의 실패 등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과거와 같은 영향력과 지위를 갖지 못하고 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등 새 운동단체가 출현했고, 지역에서는 풀뿌리 운동단체들이 출현·성장하고 있으나, 이들 또한 과거 위원회 활동과 같은 실효성 있는 입법운동과 이슈 제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혁신과 중심성 있는 리더십을 다시금 바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복지국가 발전과 관련해 이들 복지국가운동단체들을 주목하는 까닭은 분명하다. 이들의 움직임이 장차 이 나라 복지 발전의 수준과 경로와 무관치 않은데다, 무엇보다도 복지국가운동의 주체 형성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날 각 단체가 뜻을 모은 ‘연대’가 실질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서로 손을 마주 잡기 이전에 각자 자신의 손의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순서가 아닐까란 생각도 해본다. 내부적인 성찰을 선행하지 않는 연대는 과거 연석회의처럼 무책임으로 귀결돼 미약한 힘을 강화하기보다 더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곤 인사·협력 부국장 겸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