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철도노동자 바통 이어 달리자

2014. 1. 2. 16:5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_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국회에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가 구성됐다. 공공기관에 대한 시선이 따가운 조건에서 공기업 노동조합이 민영화 반대 여론을 주도하고 국회 논의기구까지 만들어낸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제 야권과 시민사회가 제 역할을 할 차례다. 철도파업이 시작되기 이전까지 별다른 활동이 없었던 걸 자성한다면, 앞으로는 철도노조처럼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야당은 철도소위에서 치열해야 한다. 시민들이 수서발 KTX 주식회사에 제기하는 의문들을 속 시원히 풀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파업하면 이로 인한 불편만 보려 했던 예전의 시민이 아니다. 엉성하게 철도소위가 운영되는 걸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거란 이야기다.

논점은 네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정부가 발급한 면허권의 적법성을 따져야 한다. 현행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은 철도시설공단이 건설한 노선의 운영권을 코레일에 독점적으로 부여했다. 작년에 법제처가 적법하다고 유권해석했다는 게 정부 주장이지만, 행정부처가 아니라 국회가 철도관련법의 입법 취지와 체계를 종합 검토해야 한다.

 

둘째, 정부 말대로 민영화가 아니라면 매각 금지를 입법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여론조사를 보면, 수서발 KTX 주식회사가 민영화라고 생각하는 시민이 다수이다. 정관에 담긴 지분 매각 금지, 매각 시 면허권 취소 등이 상법과 충돌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8월 코레일조차 법무법인 두 곳에서 정관이 무효화될 수 있다는 검토 의견을 받지 않았는가? KTX 민영화를 방지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수서발 KTX 주식회사가 경쟁 효과를 발휘할 건지, 공연히 중복조직을 만드는 비효율인지 조목조목 검증해야 한다. 정부는 ‘경쟁 = 효율’이라고 주장하지만, 상당수 시민들이 단일 선로 위를 달리는 복수회사 열차에서 의미있는 경쟁이 생긴다는 논리에 의아해하고 있다. 사장이 되기 전에는 KTX 경쟁 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다가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 최연혜 사장의 해명도 듣고 유럽철도의 구조개혁이 경쟁의 효과인지 정부의 투자 확대 때문인지도 조사해 봐야 한다.

넷째, 한·미 FTA의 영향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정부 주장대로 민영화 금지 조항이 한·미 FTA와 충돌한다면 당연히 다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협정문에서 개방된 수서~평택 구간을 미국자본이 참여하겠다고 했을 때 한국 정부가 이를 거부할 수 있는지, 혹 미국자본이 들어오면 그나마 유보 조치를 걸어놨던 평택~동대구 노선까지도 ‘수서발 영업권’이라는 명목으로 풀리는 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그 결과 면허권이 적법하고 민영화 방지가 분명하며 경쟁 효과가 크고 한·미 FTA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게 확인되면 흔쾌하게 수서발 KTX 주식회사를 지지해야 한다. 반대로 이 네 가지 의문에 대해 답을 얻지 못했다면 주저없이 면허를 취소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정 KTX 노선 간의 비교 효과를 보고 싶다면 따로 주식회사를 설립하는 무모한 실험 대신 코레일에 수서발 KTX 사업부를 꾸릴 수 있다. 사장이 정책 소신을 펴지 못하겠다면 낙하산 체제를 쇄신해야 하고, 공기업 내부가 불투명하다면 이용자인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공공이사회도 구상할 수 있다.

과연 철도소위원회가 이 논점들을 집요하게 다루어갈까? 정부와 새누리당이 진지하게 논의에 응할까? 기대만큼 우려도 크다. 면허권을 둘러싼 입법권 침해 논란이 생겨도, 한·미 FTA의 유보 조치마저 허무는 KTX 개방 위험이 제기되어도 꿈쩍 않는 게 국회였다. 그간의 무기력을 벗어나는 계기로도 삼을 겸, 야당은 날선 결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철도개혁 논의의 공이 국회에만 머무는 건 곤란하다. 이번에 국회를 움직인 건 결국 국회 밖이었다. 철도노동자들이 신변 위험을 무릅쓰고 단체행동에 나서 국회 논의기구를 만들어냈 듯이, 시민사회는 국회 논의 진행과 별도로 의제를 선도하는 대중 활동을 벌여가야 한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로 인해 코레일 적자가 가중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일반철도 이용자들이 전국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도록 말이다. 

갑오년 푸른 말이 뛰기 시작했다. 야당, 시민사회도 철도노동자에게 넘겨받은 바통을 쥐고 힘껏 이어 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