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세 아이 엄마 "보육료 지원 없어지나" 불안

2012. 6. 21. 15:16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민영보험료만 45만 원, 복지국가 언제 오나"




김영미 은평구 주민 세 아이 엄마


내 나이 올해로 38살, 서른 살에 결혼해 작년에 셋째를 낳았다. 둘째 낳기 전까지 맞벌이하느라, 셋째를 낳기 전까지는 육아에 전념하느라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무려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은 아주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미래가생각만큼 밝지만은 않다.

셋째 아이가 태어나고, 집주인은 삼천만원 올려달라 하고

일단, 가족이 5명이 되면서 가족의 건강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다. 물려받은 재산 없이 오롯이 남편의 월급만 바라보며 살다 보니 두 아이를 키우는 것과 세 아이를 키우는 것이 정말 다르다는 걸 여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특히 지금 상황에서 가족 중에 누구 하나 아프기라도 하면 감당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큰 아이는 학교, 둘째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막내를 집에서 돌보고 있는데 애들 아빠를 비롯해 누구 하나라도 아파서 입원이라도 한다면? 간병은 누가 할 것인가? 병원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집에 남은 아이들은 누가 돌볼 것인가? 아, 생각하기도 싫다.

이렇다 보니 최소한 불안이라도 없애자 싶어 남편이 받아오는 월급을 쪼개 내는 각종 보험료만 현재 매월 총 45만 원에 이른다. 이것도 작년에 셋째 낳으면서 이전에 들었던 보험을 모두 해약하고 병들면 당장 필요한 실비 중심의 민간의료보험으로 다시 가입한 것이다. 살면서 병원에 그렇게 자주 갈 일이 생길까 싶지만 아이가 셋이면 소소한 사고로 응급실에 갈 일이 생긴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팔이 부러지기도 하고 명절 때 음식을 잘못 먹고 탈이나 장염에 걸린다거나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시기에 열이라도 나면 한 밤중에 달려 나가야 한다.

주변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도 생각이 다르지 않아서 다들 이 정도 보험료는 지불하고 산다. 소득이 높으면 높을수록 민간보험에 기대는 비율도 높다. 우리야 월 소득이 많지 않아 45만원이지만 내 주위에는 80만원~100만원까지 보험료를 내는 엄마들도 꽤 많다. 다 미래의 불안에 대비한 비용이다.

사실 앞으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질병만 걱정이라면 인생살이가 이렇게 고달프진 않겠다. 이사온 지 2년 됐는데 얼마 전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하루 아침에 3천만 원을 올려달라는 집주인 덕분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나처럼 전세 사는 엄마들은 갑자기 전세값을 왕창 올려달라고 할까봐 걱정이고 이런 꼴 보기 싫어 대출받아 집 산 친구들은 몇 년 째 오르지 않은 집값과 이자 부담에 울상이다. 현재 상황도 암울한데 아이들 교육이나 노후는 어쩔 것인가 생각해보면 답이 없다. 큰 아이가 올해 학교에 입학해서 10년 있으면 대학에 간다고 했을 때 한 학기 등록금의 여유도 없는 지금 나의 삶을 보면마음이 답답해진다. 노후는 대비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당장 급박한 병원비 대응에 전전긍긍하는 정도로 살고 있다.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질병, 교육, 노후 이 세 가지는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없다.

복지체험 하고 있지만 여전히 하루하루가 불안

물론 아이 셋을 키우면서 국가의 도움을 조금씩 받고 있다. 아무런 지원 없이 아이를 키웠던 이전 세대에 비해서 나는 꽤 많은 복지 정책의 수혜자인 셈이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즈음부터 소득 수준에 따른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 정책이 실시되어 약간의 보육료 지원을 받았고 둘째 아이가 다닐 때에는 두 아이 보육료 지원 정책으로 두 아이 모두 법정보육료를 거의 내지 않고 다녔다(물론 특별활동비, 현장학습비, 차량운영비, 간식비 등 작지 않은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기는 했다). 특히 셋째 아이를 출산했을 때에는 산부인과 진료비, 출산장려금과 72개월까지 매월 양육수당 10만원을 받으면서 우리나라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 어린이집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올해, 이제 6개월된 셋째 아이를 돌보면서 큰 아이 뒷바라지를 어떻게 할까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작년 지방 선거에서 젊은 구청장으로 바뀌면서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급식, 청소에 공공근로 형태의 도우미 제도가 실시되었다. 또 교통안전지도사 제도가 생기면서 하원도우미가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 주어 엄마가 학교에 갈 일이 거의 없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거를 정말 잘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사실 보육료 정책의 경우 저소득층 위주로 지원되다 보니 외벌이 가정이나 소득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자영업자외에는 지원받기 힘들다. 맞벌이 가정은 거의 지원받지 못한다. 물론 올해부터 소득에 관계없이 보육료를 지원하는 정책으로 많은 가정이 혜택을 받고 있지만 "대선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 아닌가, 내년이면 없어진다는데…" 이런 불안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약간의 복지 체험을 했다고 해서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불안과 불신을 넘어서기 위한 작은 노력들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죽도록 일해서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길에 몰입하는 것 이외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국가가 내가 바라는 무엇인가를 해줄 때까지 마냥 기다릴 것인가?

나는 현재 내가 처한 삶의 불안 요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몇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일단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친환경 먹거리를 공급하는 생활협동조합을 이용한다. 건강해야 아프지 않고 아프지 않아야 예상하지 못했던 돈이 들지 않는다. 생협에서는 먹거리를 '구입'하는 것 뿐만아니라 여러 가지 활동을 함께 한다. 식품첨가물의 위해에 대해 강의하는 건강 강좌를 듣거나 생산지 견학을 가기도 하고 면 생리대 강좌를 듣고 직접 만들어 쓰기도 한다. 텃밭을 함께하는 단체에 들어가서 여름 내내 먹을 야채를 키워먹기도 한다. 아이들을 경쟁이나 먹거리 걱정 없는 공동육아로 옮겨 마음의 고민을 덜어내는 노력도 한다.

얼마 전엔 우리 동네에 생긴 의료생협에 가입했다. 의료생협은 여러 사람이 조합을 만들어 병원을 세우고 의사를 고용하여 나의 건강을 돌보는 비영리법인 형태의 병원이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나는 여기에 약간의 출자금을 내고 설립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국가나 사회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일종의 소비자 운동이다. 국가에 마냥 바라기보다는 내가 바라는 서비스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이 모든 활동이 불안을 해소해 나의 정신 건강을 유지하려는 작은 움직임이다. 또 여기에는 함께하는 이웃들이 있다 보니 위의 고민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마음만이라도 여유를 갖고 싶은 심정이랄까.

문득 내가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가 나의 노후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불신, 내가 아프기만 기다려 돈만 벌어갈 것이라는 우려를 주는 병원, 내 아이의 미래를 책임질 생각이라곤 전혀 없는 공교육, 그리고 뭘 먹일지, 뭘 하고 노는지 항상 불안한 보육 서비스가 새로운 형태의 소비자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국가에 대한 나의 불신이 나의 정신 건강에 절대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하는 모든 일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낼 수 있다면 소득을 탈루하는 자영업자들도 없고 월급의 반을 내도 전혀 아까울 것 같지 않은데 현재 우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웃지 못할 소리로 올해 보육료 지원 정책이 갑작스럽게 쏟아졌을 대 '혹시 대통령 손주가 올해 어린이집에 들어갔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처럼 미래에 대해 불안해가기 보다는 걱정 없이 즐겁게 늙어갈 수 있는 국가에서 살고 싶다. 세금을 많이 내도 좋고 지금보다 좀 더 힘들게 살아도 좋다. 하지만 지금처럼 다양한 '불신' 속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꿈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말 이뤄질까 싶었던 '친환경 무상급식' 이야기이다. '무상급식'이라는 단어가 나온지 몇 년 지나지 않아 급속도로 공감대가 확산되고 급기야 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첫 해에 혜택을 받은 소중한 체험. 처음에 '무상급식'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되겠어?'하는 생각이 있었다. 길을 걸어가다 서명을 하기도 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댓글을 달기도 하는 아주 소극적인 활동을 하긴 했지만 진짜로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 시행되는 것을 보니 좀 더 큰 꿈을 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복지국가!

나는 배우고 싶은데 돈이 없어 학교에 못 가는 사람, 아픈데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한없이 안쓰럽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 아이 셋을 키우는 나의 복지국가를 위한 꿈은 바로 이것이다. 나의 큰아이가 대학에 가기 전까지 모든 교육 분야에서 무상교육이 이뤄지는 것. 내가 죽기 전에 우리나라의 모든 아픈 사람들이 돈 걱정 없이 병들었을 때 치료받는 것이다.

정말 이 꿈이 이뤄질 수 있을까?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이 곳에서 내 꿈을 위해서 노력할 생각이다. 사람들과 꿈을 이루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널리널리 퍼뜨리고 인터넷 게시판에 댓글도 달겠다.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활동하는 사람이 있으면 작게나마 돈도 내고 그렇게 끊임없이 묵묵히 지치지 않을 작정이다.

아. 우리 아이들의 복지국가! 생각만 해도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