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장애인은 언제까지 동정의 대상이어야 하나"

2012. 6. 13. 21:5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장애인, 사회적 약자에서 복지국가 주체로




현근식 지체장애2급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연구위원


2010년 6.2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복지국가에 대한 논쟁이 여기저기에서 물밀 듯이 터져나왔다. 여전히 남유럽의 경제 위기를 예를 들며, 복지국가를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빈부의 격차를 복지로 보완하자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핵심 과제는 누가 사회적 연대를 통해 복지국가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있다. 이를테면 노동연대, 시민연대, 복지연대 등 다양하고 강력한 복지동맹이 형성될 때에만 복지국가 실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혜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장애인

이 과정에서 사회적 취약계층의 하나인 장애인들은 어떠한 태도를 취하여야 할까? 장애인은 어떤 면에서 산업화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의 대표적인 낙오자이며 부적응자의 위치로 전락해버렸다. 이는 최근까지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생산과 노동에서 배제되는 장애인은 결국 경제적으로 절대빈곤층으로 떨어지고 그로 인해 사회가 도움을 줘야하는 존재, 누군가가 부양해야하는 부담 가득한 사회의 군더더기로 전락한 것이다.

국내에서 이런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장애인에 대한 동정이나 시혜가 가득한 정부의 시책사업이나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을 보면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게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나타난다. 아직도 사회 한 쪽에서는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모금 방송이 장애인을 철저하게 동정의 대상물로 그려 기부행위를 촉발시키는 데 활용하고, 정치인들은 명절 때가 되면 장애인 생활시설에 방문하여 사진 찍고 사회적 약자와 함께한 하루를 과시한다.

정부는 지금까지 장애인들에게 동정과 시혜의 태도로 선별적 복지정책을 펼쳐왔다. 기초생활보장 정책은 물론이고 장애인 연금 등 소득보장 정책 또한 절대빈곤층인 저소득층 장애인에게 공공부조 성격의 직접 급여로 지원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취약계층인 많은 장애인들은 그 연금을 받기위해 아무런 꿈도 없이, 일할 욕구조차 없이 적은 지원금에 목메고 있다.

이는 대표적인 선별적 복지이다. 정부 시책 중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 대부분 이런 경우이다. 장애인 의료비도 그렇고 특별공급 임대주택 또한 마찬가지이다. 마치 정부는 저소득층 장애인에게 특별히 배려해서 빈곤을 탈피하게 해주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동정어린 시책 수준에 머물고 있다.

▲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을 요구하는 장애인. ⓒ프레시안

복지지출의 1.5%에 불과한 장애인예산

2012년 예산안 기준으로 중앙정부의 복지예산은 약 92조 원이다. 올해 정부예산이 325조 원이니 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28.3%이다. 그렇다면 이중 장애인 예산은 얼마일까?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가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2년 중앙정부 장애인예산은 총액 1조4176억 원이다. 금액이 조 단위가 넘으니 매우 많은 예산처럼 느껴지지만 이는 전체 복지예산의 1.5%에 불과한 금액이다. 올해뿐만 아니라 몇 년간 계속 제자리 수준이다.

현재 장애인을 위한 소득보장 정책은 대표적인 것으로 장애인 연금이 있다. 2011년 장애인 연금의 수급자는 24만4527명이며 예산은 국비 2887억 원, 지방비 1449억 원을 합쳐 4336억 원이다. 그런데 장애인연금의 수급률은 전체 등록 장애인인구 250만 명의 10%도 되지 않으며, 대상자인 1,2급 장애인의 약 50% 수준이다. 24만4527명의 절대 빈곤층인 장애인 1명이 한 해 받는 연금은 연 177만 원 정도이다. 이 수준의 연금이 장애인 소득보장 정책의 결과이다. 절대빈곤층인 저소득장애인들을 목숨만 겨우 연명할 수 있게 해놓은 꼴이다. 더구나 장애인이지만 경증이라는 이유로 연금에 훨씬 못 미치는 수당을 받는 장애인은 약 31만 명이다. 그 외 200만 명 정도의 장애인을 위해 국가에서 책임지고 있는 소득보장 정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장애인 의료비 지원은 더욱 열악하다. 의료비 지원을 받는 의료 수급권자 장애인 수는 약 9만8000명 정도이며 예산은 국비 258억 원, 지방비까지 합치면 378억 원이다. 장애인은 장애로 인해 비장애인에 비해 의료비의 부담이 매우 크다. 그래서 의료비 지출이 소득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문제는 의료 수급권자 장애인을 제외한 약 240만 명의 장애인은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비의 부담조차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사회와 국가에 바라는 요구사항'이라는 항목에 항상 소득보장과 함께 의료지원이 다른 복지욕구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국민건강보험 하나로시민회의'같은 풀뿌리 운동이 성공하기를 절실히 바라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일부 장애인의 경우 기초 수급권보다는 의료 수급자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절대 빈곤의 울타리 안에 남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다수의 장애인은 힘내서일자리를 찾는 것보다는 수급자 자격을 놓치기 않기 위해 혈안이다.

장애인에게 낙인을 거두라

선별적 복지의 낙인효과(stigma effect)도 심각하다. 낙인효과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정적인 낙인이 찍힘으로써 실제 그렇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절대빈곤층 장애인에 대한 선별적 복지는 다시 장애인들을 가난을 벗어나려는 의지조차 없는 낙오자의 이중굴레를 씌워버린다. 본인 스스로도 궁핍에서 벗어나 사회참여를 위한 적절한 노력과 열의를 잘라버리고, 사회적으로도 세금으로 지원은 받으면서 아무런 기여도 없는 존재라는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게 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장애인은 아무런 사회적 기여도 하지 않고 국민의 세금만을 축내며 살아가는 존재일까?

아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장애인들은 얼마 전까지 기본권인 이동권(대중교통과 특별교통수단을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 투쟁에 목숨을 건 적이 있다. 이들의 목숨 건 투쟁의 성과로 저상버스가 일부 도입되고 많은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그 결과는 어떤가? 장애인이 아닌 유모차를 끄는 주부도, 지팡이를 짚는 노인들도 편리하게 저상버스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되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사회의 구성원 누구나 이용할 있는 편리한 시설로 진화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장애인은 장애로 인해 생기는 사회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충분히 개선하며 사회통합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이다.

장애인은 지금까지 경제활동에 직접 참여하기 어려웠고, 좋은 일자리를 갖기는 불가능할 때가 많았다. 심지어 교육의 기회까지도 갖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결과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을 장애인은 온몸으로 고스란히 겪고 있다. 그러나 가만히 돌이켜보면 이는 수십 년간 산업화, 경제적 발전 중심의 우리 사회에 장애인이 적합했는가, 부적했는가의 문제이지 장애로 인한 기능 손상이 결코 비도덕적이거나 무능한 것은 아니다. 즉 장애인의 삶의 질이 이토록 최악인 것은 본인의 탓이라기보다는 젊고 유능한 비장애인근로자를 우선시했던 이 사회가 그들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근래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논의들이 여기저기 펼쳐지고 있다. 당연히 장애인들도 이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복지국가가 되면 장애인 연금 몇 푼 올라가고 장애인 의료비가 지원되어서가 아니다. 물론 장애인의 소득 격차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장애인 복지 정책은 대폭 바뀌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삶을 지켜줄 안전망을 만드는데 장애인 당사자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편적 복지가 실현되기만 한다면 장애인들도 빈약한 통장을 헐어 많지는 않지만 소득세를 내고, 건강보험료도 적절한 수준에서 좀 더 부담해서 납부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회서비스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활동보조인의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드는데 기여한다든지,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콜택시의 기사 일자리를 만들고 보호하는데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또한 돌봄서비스의 양과 질을 최적화하는데 많은 의견을 낼 수도 있다.

복지국가 건설, 장애인과 함께 가자!

장애인이 복지국가 건설에 당당하게 나서기를 기대한다. 사회적 약자의 대표적인 계층인 장애인이 비록 상징적인 작은 금액일지라도 먼저 세금을 더 내겠다는 목소리를 낼 수도 있으리라. 이는 복지국가가 되면 갖게 될 사회적 권리, 불안을 잠재울 복지안전망에 대한 기대 때문에 열의를 다해 대중을 설득해보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자! 희망의 복지국가를 향해 장애인과 어깨동무하고 소통하면서 발걸음을 같이할 사람은 누구인가? 연대할 주체는 누구인가? 언제든, 누구든 환영한다. 함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