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복지] 예술가들이 만난 ‘창동 삼거리’

2013. 7. 14. 17:45내만복 교육(아카이빙용)

예술가들이 만난 ‘창동 삼거리’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창작스튜디오, 지역연계 프로젝트 전시회 가져

 

번동사거리 방향으로 신창시장(도봉구 창동)을 조금 못 미쳐 말끔한 건물의 스튜디오가 하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창동창작스튜디오다. 2002년에 설립 해 1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거기 뭐 하는 곳이에요?”, “한 번도 안 가봤어요”라는 주민들이 많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주민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함께 만든 작품들을 전시했다. 동네 아이들이 막 뛰어 노는 미술관은 처음이었다. 예술이 멀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창동창작스튜디오는 공모를 통해 지난 3개월간 지역연계 프로젝트를 진행 할 두 팀을 선정했다. 재일교포 3세 젊은 부부 작가인 김인숙, 김명권 팀은 <소년들이 소년들에게 - Continuous Way>라는 작품을, 국민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4명의 남자들이 모인 ‘인사이트씨잉’(조성배, 나광호, 이정훈, 최형욱)팀은 <창동여지도>를 선보였다. ‘창동삼거리’라는 제목의 전시회는 지난 5월 9일부터 30일까지 약 한 달간 이어졌다. 이들은 스튜디오가 위치한 창동에서 주민들의 경험과 기억으로 예술적인 소통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것이 <창동여지도>, 주민들의 기억으로 지도를 만들다

 

<오래 산 주민들이 기억만으로 그린 창동 일대의 다양한 지도들>

 

조선후기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인 김정호는 전국을 직접 걸어 다니며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현재의 ‘인사이트씨잉’ 팀은 창동을 돌아다니며 짧게는 20년에서 길게는 40년 넘게 산 주민들을 만나 이들의 기억으로 지도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예술가인 자신들이 지도를 그리지도 않았다. 주민들이 직접 기억을 회상하며 조금씩 그린 작은 지도들을 모아 붙여 <창동여지도>가 되었다. 작가는 주민들의 기억을 끄집어내 그림으로 그릴 수 있도록 했다. 작업이 더디고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한 작가는 “경로당 한 번 다녀오면 ‘기’를 빨리고 온 느낌”이라며 지난 소회를 털어놨다.

 

흔히 볼 수 있는 기존의 지도와는 어떤 점이 다른가. 조성배 작가는 “항공 사진(으로 만든 지도)은 과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정보와 가치를 닮고 있는지..”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믿는 지도들은 (역설적으로) 제작자의 주관적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설명이다. 행정가, 토지나 부동산 개발자, 지질학자, 토목공학자 등에게만 유용한 지도라는 얘기다. 거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창동 배밭에서 40년 넘게 산 이인열 할아버지 등 40여명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지도로 엮어냈다. <창동여지도>는 축적이나 기준점, 유용한 정보는 없지만 주민들의 값진 이야기가 살아있다. 창동과 창동 주민들의 근현대 역사 기록이다. 조 작가는 만났던 주민들에게 “오히려 배운 점도 많았다.”며 “수십 년 두터운 삶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창동의) 빛을 본 것 같다.”고 밝혔다.

 

<창동여지도>에 대해 월간 아티클(article) 홍경한 편집장은 “원주민이 복원한 지도로서 의미있는 시도”라면서도 “이주가 빈번한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또 작가가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과 이러한 작업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과 조언을 남겼다.

 

40년 넘은 신창초등학교의 기억을 물려주다

소년들이 소년들에게 - continuous way -

 

책보 안에 담긴 사연

 

난생 처음 보는 책보를 메고 뛰어 노는 소년들.

이제까지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내가 사는 동네’, ‘내가 다니는 학교의 역사’를 알게된 (지금의) 소년들은 각각의 방법으로 (지금은 어른이 된) 옛 소년들을 생각했다.

 

처음 신어 본 고무신은 발에 달라붙어 시원하지만 발꿈치가 긁혀 아프기도 하고 책보는 생각보다 무거웠지만 편하기도 했다. 또 처음 써 본 학생모는 멋스러움의 상징이었고, 쑥스러운 양 갈래 머리와 치마 차림도 애착이 가기 시작했다...

 

_ 작가 김인숙 글 중에서

 

 

제일교포 3세로 10년 전에 한국에 이주해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김인숙 작가와 일본에서 10년 동안 ‘마치즈쿠리(마을만들기)’ 기술사로 활동한 김명권 부부의 첫 프로젝트다. 40년이 넘은 신창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했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는 마을에 중심이 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모든 불자가 부족했던 1960년대 학생들의 모습을 재현했다. 지금의 어린 소년, 소녀들이 옛 모습으로 학교와 거리를 활보하니 오래 전에 학교를 졸업한 어른들은 자신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귀를 기울였다.

<우이천에서 고무신에 책보를 둘러메고 옛 학생들을 재현해 본 지금의 신창초등학교 학생들. 사진 _ 창동창작스튜디오>

 

“사회에 대한 애정, 그것이 바로 도시계획이다.” 1948년, 전후 복구를 위해 애쓰던 일본에서 도시계획가 이시카와 히데아키(Ishikawa Hideaki)가 한 말이다. 김인숙, 김명권 부부의 이번 <예술+마을만들기 프로젝트>도 “창동에 사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마을에 대한 애정을 계승하는 기회”로 만들고 싶었다. 또 김인숙 작가는 지난 석달 동안 “주민들과 교감이 없었다면 프로젝트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도 오로지 경제 발전만을 위해 달려오다 보니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겼고 이를 도시 주민들이 스스로 발견하고 해결하는 ‘마치즈쿠리(마을만들기)’에 적극적이다. 서울시와 도봉구도 최근 마을만들기가 주목받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처럼 마을만들기에 예술이 더해지니 보는 사람도 재미있다.

 

전시 기간 중 열린 세미나에서 홍경한 아티클(article) 편집장은 “시, 공간의 차이를 극복하는 시도가 진취적이고 신선했다.”고 평한 반면 심상용 미술평론가는 “요즘 유행하는 복고풍과 향수를 자극해 정서적 위로에만 그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분석을 내놨다.

 

한편 창동창작스튜디오는 이번 전시회로 그치지 않고 하반기 지역연계 프로젝트로 이어갈 계획이다. 공모를 통해 2팀의 예술가를 선발해 6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진행한다. 하반기엔 또 어떠한 작품들을 창동에서 만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_ 시민기자 이상호 (adonis2357@hanmail.net)

 

* 이 글은 서울시 복지재단 블로그(http://blog.naver.com/swf1004)에도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