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병원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게 '공공 의료'의 핵심

2013. 6. 2. 16:28내만복 자료(아카이빙용)/내만복 사진

지금까지 '공공병원'이나 '공공의료'라고 하면 가난한 취약계층만을 위해 진료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것은 "취약한 우리의 건강보장 현실 때문에 부득이 공공병원에 부여된 제한적 역할이었을 뿐"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이진석 교수는 지난 5월 27일 저녁, 홍대인근 '정치발전소'에서 <내가만드는 복지국가> 주최로 열린 공공의료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러한 인식은 전통적인 진보진영이나 보편복지 운동가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더욱이 진주의료원 폐업이 초읽기에 들어간 시점(현재는 경남도가 공식 폐업을 발표한 상태)이어서 이 교수의 공공의료는 새롭게 다가왔다.  

 

 

먼저 이 교수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공공의료'나 '공공병원의 역할'에 관한 규정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우리 나라의 공공의료는 취약한 의료 현실 때문에 생긴 통념에 가깝다. 반면에 '병원의 역할'에 관한 규정은 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양질의 적정진료'와 연구, 교육/훈련, 지역 보건의료체계 지원의 네 가지를 병원의 역할로 정하고 있는데, 이 교수는 이같은 "병원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공공성이 높은 병원'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공공병원이 취약계층 진료만 잘 하면 되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면 이제는 이러한 시혜적 역할을 넘어서 포괄적으로 모든 환자에게 양질의 적정진료를 하는 병원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마치 기업의 '사회적 공헌'과 '사회적 책임'을 최근 구분해서 보는 접근과 같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겠다'는 말처럼 기업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낸 후 극히 일부분을 가난한 사람에게 시혜적으로 베풀었다면 이제는 이윤을 내는 과정 자체가 사회적 책임을 다했는지가 중요해 졌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모든 환자에게 양질의 진료를 하는 과정 자체가 병원의 사회적 책임, 즉 공공성을 높이는 길이다. 여기에는 국공립병원인지 민간병원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모든 병원이 원래 공공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병원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지금의 취약한 보장성으로 인해 과잉진료와 비급여 진료가 구조화된 현실은 공공성을 회피하는 쪽으로만 병원을 유도한다. 보장성을 강화해야 과잉진료와 비급여 진료 관행을 없애고 양질의 필수 진료를 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사회적 통제가 가능하다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와 관련하여 공공병원의 적자 문제는 병원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건강한 적자'로 설명했다. 다른 병원 운영상의 이유로 생기는 '불건강한 적자'와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이 교수는 이 같은 '건강한 적자'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전체 보건의료 체계에서 이익이라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공공병원이 모든 환자에게 양질의 적정진료를 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공공병원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공공병원의 주인은 '노,사,정'이 아닌 그 지역에 살면서 세금을 내는 시민이다. 이러한 시민에게 그간 주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했는지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진주의료원 사태에 경남도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노조는 있었지만 정작 진주시민의 목소리는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던 점이 이를 반증한다.

 

 

강연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공공의료뿐만 아니라 의료비 지불제도나 건강보험 보장성에 관한 준비된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그간 시혜적인 관점에서만 본 공공의료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고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 교수는 두 시간 넘게 진행된 열띤 강연에도 지치지 않고 참석한 10여 명의 참여자들과 함께 뒷풀이까지 함께 하면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내만복의 회원으로 가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