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노동절, 민주노총에 보내는 고언

2013. 5. 3. 18:2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주장과 논평

[정동칼럼]노동절, 민주노총에 보내는 고언

 
 
오건호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오늘은 노동절이다. 노동자에게 생일 같은 날이다. 자본주의 발자취는 인권을 유린당해온 노동자의 역사이기도 했다. 초기 시장경제는 노동자들을 죽을 지경까지 쥐어짠다는 의미에서 ‘악마의 맷돌’이었다. 그만큼 지금 우리 헌법에 담긴 노동권은 노동자들의 저항과 희생이 만든 귀중한 자산이다. 여기에는 엄혹한 시절 민주노조운동을 개척해 온 민주노총 몫도 있다.

그런데 현실은 생일 덕담만을 주고받기엔 갑갑하다. 민주노총이라는 조직 자원을 가진 상당수 중심 노동자들은 종종 자신만을 챙기는 ‘이익집단’으로 간주된다. 민주노총은 6개월째 위원장조차 뽑지 못하는 내홍을 겪고 있다. 조직의 생동감을 불어넣는 데 선거만큼 중요한 계기가 없건만, 정파 인사들은 자리를 논하는 ‘짝짓기 테이블’을 급조할 뿐, 노동운동을 부흥시킬 프로그램은 제시하지 못한다. 선거라는 절호의 기회를 매번 뒷걸음질에 소모해 버렸다면, 이들이 지닌 시대적 역할은 분명 종료됐다.

 

중앙조직의 활동 역시 명분에 치우쳐 일을 놓친다. 요사이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이 논란이다. 민주노총은 임금피크제가 불안정 노동자의 저임금을 악화시킨다며 도입에 반대한다. 하지만 정년 연장의 수혜가 지불능력이 있는 대기업, 공공부문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임금피크제 논란이 수년을 거듭해 온 주제임에도 ‘임금삭감 불가’만 되풀이한다. 모양은 정년 연장을 보편적 노동권으로 주창하지만 실상은 중심 노동자를 위한 조치로 귀결시킨다는 점에서 ‘미필적 고의’에 가깝다.

며칠 전 민주노총은 고용보험료 인상을 다룬 고용보험위원회에서 퇴장하며 격한 규탄성명을 발표했다. 고용보험에서 지급되는 육아휴직급여를 정부가 일반예산으로 맡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고용보험 급여를 올릴 수만 있다면 제도의 주소가 그리 중요한 문제일까? 지금도 일반 복지사업들이 예산 부족으로 허덕이는 상황에서 그나마 고용보험 재원을 가진 육아휴직급여 사업에 일반예산이 투입되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이런 방식으로는 실업급여나 육아휴직급여 인상도 힘들어진다. 일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면서도 그리한다.

정년 연장, 고용보험 모두 제도는 보편적 성격을 띠지만 하위계층이 사각지대 문제를 안고 있다. 대기업의 성과가 중소기업에 흘러갈 것이라는 게 대자본의 낙수효과 주장이라면 임금 하향 없는 정년 연장이 저임금 노동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건 중심 노동자의 비슷한 논리이다. 이 비판에서 벗어나려면 저임금 노동자의 정년 연장과 임금 유지가 판단의 우선 근거여야 하고, 상위 노동자 임금 양보를 통한 노동자 계층별 연계방안이라도 내놓아야 한다. 또한 실업급여, 육아휴직급여를 강화하고 싶으면 고용보험료 인상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 노사가 절반씩 임금에 비례해 조성하는 고용보험료는 소득재분배를 지닌 재원이고, 고용보험 수혜가 대부분 불안정한 노동자에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기꺼이 고용보험료를 더 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노동자 연대를 선보이는 활동 사례도 있다. 끝없는 애정과 헌신으로 민주노총을 지키는 노동자, 간부들도 종종 본다. 이제는 이들이 참신한 주역으로 나섰으면 좋겠다. 노동운동 선배의 벽을 과감히 넘어서야 할 때이다. 이들은 불안정 노동자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풀어가는 문제해결 능력과 책임윤리를 지닌 사람들이다. 이익집단으로 내몰려 있는 동료들과 마음을 터놓고 다시 노동자의 자부심을 세우는 노동정치를 펼칠 활동가들이다. 민주노총이 민주노조운동 시대를 대표했다면 앞으로는 노동자 내부 계층화를 넘어서자며 ‘사회연대노총’을 주창해 나갈 혁신가들이다.

지금까지 명분에 안주했던 사업 목차를 만드는 데서 시작해 보자. 이것은 ‘관성의 보고서’이고 재탄생을 위한 실천 프로그램이다. 원칙의 훼손이라 두려워 말자. 사람들은 돌멩이를 던지는 대신 기대를 보낼 것이다. 노동의 권리를 위해 쓰러져간 앞선 노동자, 전태일의 정신을 다시 민주노총에서 찾고자 할 것이다. 희망과 열정이 가득한 노동절을 맞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