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미얀마 군부 쿠데타 300일, 변하지 않는 한국 정부와 기업

2021. 11. 26. 13:52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미얀마 시민들의 호소…"한국은 군부에 돈 주지 말라"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

 

 

한국 정부 행사에 참석한 미얀마 군부 인사

 

지난 15일, 양곤의 롯데호텔에서는 미얀마 투자청(DICA)과 주미얀마 대한민국 대사관, 재미얀마 상공회의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등이 참여하는 '한국-미얀마 경제협력을 위한 대화'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미얀마 군부가 임명한 미얀마 투자청(DICA)의 우 딴 신 륀(U THANT SIN LWIN) 국장도 참석하였다. 이 행사는 매년 한국 정부와 미얀마 정부가 개최해왔던 행사로 보이지만, 쿠데타 이후에 미얀마 군부와 한국 정부가 공동으로 행사를 개최했다는 점에서 이 행사가 개최된 것이 알려지자, SNS에서는 한국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10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쿠데타 사태 이후에, 미얀마 군부를 국제사회가 정부로 인정하지 말아 달라는 캠페인을 사력을 다해 하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 입장에선 든든한 우군이라 믿었던 한국 정부에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행사가 개최된 롯데호텔 역시 문제이다. 양곤 롯데호텔은 포스코 인터내셔널이 미얀마 군부와 계약을 맺고 롯데가 운영하는 고급호텔로, 한국 기업이 최장 70년간 매년 20억 원의 돈을 군부에게 임대료로 지급해야 한다. 군부 쿠데타 이후에 한국의 대기업들이 미얀마 군부와 합작해서 세운 호텔에서 미얀마 군부와 경제협력을 논의하는 공개 행사를 한국 정부가 개최했다는 사실에서 한국 시민사회는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소한 주미얀마 한국대사관과 코트라는 이 행사가 미얀마 시민들과 국제사회에 어떻게 보일지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게 된 상황이다.

 

한국 기업 노동자들에게 들이닥친 미얀마 군대

 

양곤 인근 공단에 위치한 가산어패럴이라는 한국 기업의 노동자들은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회사에 맞서 일주일 째 파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11월 5일, 군인들을 태운 트럭 다섯 대가 공장으로 왔고, 군인들은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근접 촬영하고 돌아갔다. 노동조합에 따르면 이미 이 회사는 올해 5월에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에 나섰던 노조위원장과 노조지도부 4명을 체포하려는 미얀마 군부대의 공장 진입을 허용한 바 있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군인들이 와서 촬영을 하고 간 것만으로도 회사가 자신들을 위협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쿠데타가 발생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에서 발생한 노사분쟁에 미얀마 군대가 개입되는 상황 자체가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지난 11월 16일 미얀마 노총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과 함께 한국 정부에 서한을 보냈다. 한국 정부가 ILO국제협약을 비롯한 국제인권기준에 의거하여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호하라는 것이었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ILO 사무총장에 입후보한 상황에서, ILO 협약과 결의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일이 발생했는데도 한국 정부는 이 서한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발생하는 동안 주미얀마 한국대사관은 미얀마 군부와 한국 기업의 미얀마 투자를 논의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과 재한미얀마청년연대 주최로 지난 2월 26일 열린 미얀마 민주화 희생자를 위한 추모 기도회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미얀마 군부와 연계된 한국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준 한국 정부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전에도 한국 기업의 미얀마 투자는 국제사회의 지적을 받아왔다. 바로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 학살을 저지르면서 이미 국제사회의 제재대상이 되었고, 미얀마 군부와 협력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문제제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2020년 12월 초, 한국 시민사회는 미얀마 인권단체와 함께 OECD 다국적기업가이드라인 한국연락사무소(이하 한국NCP)에 미얀마 군부와 협력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대한 가이드라인 위반 진정을 제출하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담당하고 있는 한국NCP는 산자부와 고용노동부, 환경부 공무원으로 이뤄진 4명의 정부위원과 4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OECD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의 홍보와 더불어 한국 기업이 세계 어디에서건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는 진정이 접수되면 이 진정이 한국NCP에서 다룰 사안인지를 1차 평가하고 이후에 조정 절차 등을 거쳐 사안에 대해 최종성명을 발표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한국NCP는 설립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한국 시민들에게 생소한데, 그 이유는 그 동안 제 역할을 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NCP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에 군부와 협력한 한국 기업들에 대한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되는 와중에도 진정을 제출한 지 7개월째인 지난 7월에 1차 평가를 내렸다. 1차 평가의 결과를 간단히 정리하면 기업들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더 이상 한국NCP에서 이 진정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한국NCP의 결정은 여러 면에서 부적절한데 그 중 하나는 앞서 언급한 롯데호텔 사업의 경우에, 롯데호텔은 1차 평가 과정에서 아무런 입장도 제출하지 않았음에도 롯데호텔에 대해서도 진정 절차를 종료한 것이었다. 지난 칼럼에 소개했던 이노그룹에 대해서도 이노그룹이 미얀마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근로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한국NCP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관련 기사 : 미얀마 쿠데타 세력이 입은 군복, 한국 기업이 만든다) 한국NCP의 이러한 기업편향적인 결정은 이미 예견되었지만, 쿠데타 이후에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줄지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군부에게 돈을 주지 말라'는 미얀마 시민들의 호소

 

포스코 인터내셔널은 가스개발사업을 통해서 미얀마국영가스석유공사(MOGE)에 올해도 2000억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게 된다. 이 막대한 돈은 그대로 미얀마 군부에게 제공되어 미얀마 시민들을 탄압하는데 쓰이게 될 것이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미얀마에 투자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미얀마 시민들은 한국 정부와 기업에게 '민주주의를 회복할 때까지 미얀마에 대한 투자를 멈춰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쿠데타 이후의 한국 기업 투자 혹은 경제협력 문제에 대해 결론을 지금 당장 내리기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서 쿠데타 세력을 정부가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군부와 협력하는 기업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군부에 의해 고통받는 미얀마 시민뿐만 아니라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해온 한국 시민들을 우롱하는 행위로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유엔 회원국과 OECD회원국에게는 이미 기업의 투자에 있어서 고려할 인권 문제에 대해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과 'OECD다국적기업가이드라인'이 기준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렇게 이미 제시된 기준과 원칙이 있음에도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이를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의 관련 입법 논의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21일에 있었던 국민과의 대화에서 세계 TOP10 국가의 위상을 확보한 것을 임기 중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에 한국 정부와 기업이 보이고 있는 모습이 과연 세계 TOP10 국가 아니, OECD회원국의 위상에 부합은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정부와 국회와 시민사회가 지난 10개월 동안 외쳤건만, 기업투자 문제만큼은 여전히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서는 한국에서의 미얀마 민주주의 연대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300일, 변하지 않는 한국 정부와 기업

한국 정부 행사에 참석한 미얀마 군부 인사 지난 15일, 양곤의 롯데호텔에서는 미얀마 투자청(DICA)과 주미얀마 대한민국 대사관, 재미얀마 상공회의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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