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강도영 비극', 국가는 '간병 살인' 책임 없나

2021. 11. 19. 11:0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밥벌이도 힘겨운 이에게 복지 신청주의란…

 

강지헌 내만복 사무국장

 

 

 

강도영 부자의 비극은 다음 문단에 모두 함축되어 있다. 최근 항소가 기각되고 존속살인죄를 선고받은 청년 돌봄자 강도영의 1심 판결 일부다.

 

"피고인은 민법상 피해자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피해자의 아들로서, 더 이상 치료비를 부담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인하여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던 피해자를 퇴원시켜 2021. 4. 23.경부터 피고인의 주거지에서 홀로 피해자를 돌보게 되었다. 피고인은 퇴원 과정에서 ○○○병원의 의료진으로부터 소변통을 비우는 방법, 경관으로 물, 음식, 약을 주입하는 방법, 기저귀를 갈아주는 방법 등을 안내 받았다. 그와 같이 안내 받은 사항들을 잘 이행하여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를 돌볼 책임은 피고인에게 만 전적으로 맡겨진 상황이었다."

 

강도영의 2심 재판부에 보내는 선처 탄원에 시민 수천 명과 국무총리와 장관, 대선후보들이 함께했다. 전 사회적 통감이었다. 그러나 항소는 기각되었고, 유기치사죄가 아닌 존속살인죄가 유지되었다. 부작위 살인. 법률상 '보호 의무가 있는 자', 즉 가족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적용되는 살인이 그대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강도영 유죄 선고의 근원에는 한국 사회의 강고한 가족 부양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다.

 

 

▲ 뇌출혈로 쓰러져 누워 생활한 강 씨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부를 때까지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셜록> 11월 3일 자) ⓒ오지원

 

 

가족부양의 굴레부터 벗어야

 

가족부양 의무를 지탱하는 강고한 사회 인식은 강도영의 패륜을 주목하고 지탄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22세 어린 청년이 직면했을 고립과 막연함과 무력함을 바라봐야 한다. 자포자기한 아들을 바라보며 굶어 죽어간 아버지의 참담함을 바라봐야 한다.

 

"세상이 너무 막막했고 집에 쉽사리 들어가지 못하고 집 앞에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당장 기저귀와 소변줄 교체 등 나갈 돈은 많은데, 막막하고… 좌절감, 또 무능력한 저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너무 컸습니다."

 

강도영은 편의점 폐기물로 끼니를 때우며, 아버지의 똥과 오줌을 받아내는 삶을 견디며 살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없었다.

 

강도영은 사법 판결로 인해서 그가 져야 할 몫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강도영의 유무죄를 놓고서 갑론을박하며 단죄의 무게를 더하기보다, 이 순간에도 숨죽인 채 꾸역꾸역 살아가는 '강도영들'을 호명해야 한다.

 

간병살인과 돌봄위기로 인한 동반자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5일 전남 담양에서 40대 가장이 발달장애 자녀와 노모를 살해하고 자살했다. 돌봄위기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사회가 가족부양을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돌봄위기를 불운한 가정의 비극 정도로 여기는 동안, 수많은 '강도영들'이 지옥과 같은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버티거나, 동반 자살을 선택하거나, 간병살인을 강요받는다. 돌봄에 대한 국가 책임이 절박하다.

 

개선되어야 할 신청주의 장벽 

 

복지 '신청주의'는 한국 복지 제도의 오랜 과제다. 2심 판결에는 삼촌이 몇 가지 복지 제도를 알려주었음에도 강도영이 게을러서 신청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사자 입장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강도영 아버지가 장애연금이나, 노인성 질환에 따른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적용 받을 가능성은 있었지만, 신청하더라도 본인이 아니면 발급 불가능한 서류가 대부분이고, 서비스를 받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재난적의료비지원제도 또한 당사자가 우선 의료비를 완납하고 사후 돌려받는 구조이며, 이조차 50~80%정도 밖에 지원하지 않는다. 제도가 있는 것과 그 제도가 적용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복지 신청주의를 현장의 상황에 맞게 보완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신청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있는데 신청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지만, 이는 하루 밥벌이도 힘겨운 가난한 사람에 대한 기만에 가깝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선정기준과 신청과정으로 복지 수요자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담당 인력의 부족도 고질적인 문제다. 강도영은 단가스, 건강보험료, 통신비 체납가구로 위기 가정 발굴 대상이었지만, 발굴 시차로 인해 적시에 도움을 받지 못했다. 

 

담당공무원 증원과 의료사회복지사 확보로 위기가정 발굴 및 관리 인력을 확보하고, 지역 커뮤니티를 육성하여 대리인, 지인 등 가까운 이웃의 정보망을 활성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위기에 빠진 취약계층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촘촘한 돌봄 안전망을 지역사회에 뿌리 내려, 국가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가 상시적으로 돌보도록 해야 한다. 돌봄사회, 돌봄국가 비전이 필요하다. 

 

병원비 재앙 상한제로 극복해야 

 

병원비 부담 구조도 전면 개편해야 한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 치료에 청구된 병원비 중 건강보험 적용은 일부에 불과했다. 문재인 정부는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주창하며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되었다고 자부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와 간병비가 강도영이 직면한 현실이다. 의학적인 필요가 있는 비급여와 간병비를 포함해 환자 본인 한 해 최대 100만 원까지 부담하고 나머지는 건강보험이 책임지는 '병원비백만원상한제' 도입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위기가정 병원비는 국가가 우선 책임지고 사후 조정하는 국가우선책임제도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환자가 우선 완납해야 하고, 비급여 부분의 보장이 취약한 재난적의료비지원제도도 대폭 개편해야 한다.

 

우리 모두 돌봄자가 된다 

 

청년 돌봄자 강도영의 비극은 어쩌면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져 있었던, 수많은 돌봄자의 고통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강도영의 삶이 빠진 법리적 판단이 황량하게 느껴진다. 강도영은 아버지에게 국가와 사회가 제공하지 못한 최후의 안전망이었지만, 결국 비극에 짓눌리고 말았다. 제2, 제3의 강도영이 나타나도록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가족부양 굴레를 벗고, 모든 국민의 돌봄과 병원비를 국가가 책임지도록 만들자. 우리 모두 언젠가 돌봄자가 된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강도영 비극', 국가는 '간병 살인' 책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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