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방 말고 집'을 요구합니다!

2021. 11. 5. 21:4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주거약자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주거기본법 개정안'

홍주희 정의당 방말고집네트워크 대표호스트

 

 

개미집에는 개미가 살고 주택에는 사람이 산다. 사람이 개미집에 산다고 개미집이 주택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택은 안전성·쾌적성 등을 확보해야'하기 때문이다. 이 '뻔한 말'은 무려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주거생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주거기본법이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명시한 '최저주거기준'의 내용이다.

 

쪽방, 쪼갠 방, 지하방, 반지하방, 옥탑방 등 수많은 방들

 

주택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미완의 집은 '방'이라고 부르면 되는 것인가. 쪽방, 쪼갠 방, 지하방, 반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원룸 등 이미 우리는 수많은 방들을 알고 있다. 2011년 이후 개정되지 않은 최저주거기준은 현실의 삶을 담지 못할 뿐더러 이행강제력이 없어 미완의 '방'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집값 폭등으로 분노한 무주택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1가 보신각 앞에서 촛불을 들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지난 10월 29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는 3차 무주택자공동행동 촛불집회가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무주택 시민들은 슬퍼하지 않았다. 분노했다. 2200만 무주택자들의 삶은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었고, 220만 최저주거기준 이하 가구의 삶 역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발언 한마디마다 분노로 떨리는 숨이 느껴지는 그 목소리들에 뜨거운 눈물로 함께 했다. 아무리 마주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이 평범한 시민들의 삶, 주거약자들의 위태로운 현실은 고장 난 나침반 같이 허우적대다가 결국 집부자들을 감싸고야 마는 정부의 부동산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법이 없는 것일까. 법 만드는 국회는 화천대유에서 일하며 50억을 퇴직금으로 받는 삶이 차지해버렸다. 온갖 종류의 방을 전전하거나 집 같지 않은 집을 표류하는 삶들에게 대장동은 무엇인가? 공공이 51% 지분과 100% 강제수용한 토지에서 임대아파트는 7%만 짓고서도 단군 이래 최대의 공익사업이라고 호도하는 말을 들으면서 늘 그렇듯 다음 방으로 이사를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

 

'방 말고 집'을 위한 주거기본법으로 

 

지난 7월, 주거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방 말고 집'에 살자는 법 개정안이다. 주거약자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법안이다.

 

정의당 6411민생특별위원회(이하 민생특위)는 주거약자인 2030청년세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1월부터 청년주거 현실고발 프로젝트 '#방말고집에살고싶다'를 진행했고 이를 모아 3월에 간담회 '#듣고있나_방말고집에살고싶다'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청년주거모임 '#방말고집네트워크'는 기자회견,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며 현행 최저주거기준에 대한 청년들의 문제의식과 최저주거기준 상향을 민생특위에 제안하였다.

 

정의당 민생특위와 부동산투기공화국해체특위는 주거의 질적 개선에 오랜 목소리를 내온 시민주거운동단체(민달팽이유니온, 빈곤사회연대, 주거권네트워크, 참여연대, 한국도시연구소)와 류호정 의원실과 함께 6월 최저주거기준 상향을 위한 입법토론회 '#방말고집에살고싶다'를 열어 머리를 맞대었다. 그 결과 정의당은 심상정 의원의 대표발의로 최저주거기준을 상향하는 주거기본법 개정안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 최저주거기준 상향 토론회 '#방말고집에살고싶다'가 지난 6월 23일 국회에서 열렸다. 정의당 부동산 투기공화국해체 특별위원회, 정의당6411민생특별위원회, 정의당 류호정 국회의원, 주거권네트워크, 민달팽이유니온, 빈곤사회연대, 참여연대, 한국도시연구소 등 주거약자의 주거권에 오랜 목소리를 내온 시민주거운동단체들이 함께했다. ⓒ정의당 부동산투기공화국해체특위

 

 

나는 이 개정안을 '방 말고 집' 법안이라고 부른다. 당신이 어디에 살든 닿아 있을 개정안이다. 법안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인간다운 주거환경을 위한 강력한 국가의 의지

 

최저주거기준을 상향하겠다는 의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이미 있는 기준도 지키지 않는데 상향이 가능하겠냐는 우려를 표했다. 그 우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10년 전인 2011년의 마지막 개정 때 기준위반에 대한 구속력 있는 규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에 머물러있는 현행 최저주거기기준조차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최저주거기준 미달 조사를 실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임대인과 임차인이 신청하는 경우나 주거급여를 신청할 때도 최저주거기준 미달 여부를 조사하도록 하였다. 주거문제는 양적 공급과 더불어 강제력 있는 규제를 통한 주거의 질적 강화가 함께 되어야 개선된다. 터무니 없는 주거환경에 과한 주거비를 부담하는 상황은 228만 주거빈곤가구의 열악함을 고착화하기 때문이다. 

 

■ 1인 가구 

 

1인 가구는 소수가 아니다. 2020년 통계청의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중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로 31.7%(664만 3,354가구)이며 그 중 서울은 34.9%, 대전은 36.3%에 육박한다. 부동산 정책과 주거정책이 전통적인 가구 구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현실부정을 넘어선 무능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여 이번 개정안은 '도심 지역에 건설되는 1인 가구 등을 위한 소형주택'에 대한 최저주거기준 적용 예외 규정을 삭제했다. 도심생활주택 확보를 명분으로 마련된 이 예외 규정은 역설적으로 31.7%의 1인 가구의 삶을 합법적으로 최저주거기준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위태로운 삶으로 떠밀었다는 점에서 '처리 0순위'였다.

 

■ 사람이 거주하는 모든 거처

 

최저주거기준 적용대상을 사람이 거주하는 모든 거처로 명문화했다. 이 당연한 문장의 부재로 지금까지 고시원, 쪽방, 컨테이너, 비닐하우스 등 비주택, 준주택으로 분류된 39만 가구(2015년 기준)는 최저주거기준이 제일 절박했음에도 최저주거기준 조사대상에서조차 누락되어왔다. 

 

사실 이번 개정안이 '최저주거기준 상향'인 것이 최대의 블랙코미디이다. 그동안의 '최저주거기준'은 누구를 지키고 있었나. 50억을 퇴직금으로 받는 이의 주거는 기존의 최저주거기준이 지켰을 것이다. 혹시라도 이 개정안을 후퇴시키려는 이들이 있다면 차라리 위선 덩어리인 기존의 최저주거기준을 아예 없애라. 그리고 내친김에 헌법에 보장된 주거기본권도 없애는 개헌을 해보시라. 이번 개정안은 최저주거기준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 방음, 환기, 채광 등 주거 환경기준의 구체화 

 

위에서 살펴본 주거의 질을 확보하는 구속력 있는 규제와 직결되는 채광, 환기, 방음, 진동, 악취, 대기오염 등의 환경기준이 작동하도록 한 것도 이번 개정안이 불러올 큰 변화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동안 이러한 기준은 추상적인 표현에 그쳐 있어 최저주거기준이 유명무실해졌던 이유였으나 이번 개정은 계량 가능한 구체적 판정기준을 정립해 실효성 있는 조치로 작동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 최저주거기준에 따르면 주택은 내열·내화·방열 및 방습에 양호한 재질이어야 한다. 과연 모든 주택이 그러한가? 쪽방과 옥탑방을 포함한 다수의 주거형태는 여름에는 폭염으로 고생하고 겨울에는 우풍으로 난방이 어렵고 수도동파도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햇빛 없는 지하방과 반지하, 창문 없는 방, 창문이 있어도 열지 못하는 방, 창문이 있어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은 곰팡이의 주요 서식지가 되곤 한다. 제대로 말리지 못한 빨래에서 나는 눅눅한 냄새와 관련한 이야기는 영화 '기생충'에서도 언급되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요리는커녕 즉석식품을 먹어도 환기가 어렵다.

 

우습게도 적절한 방음·환기·채광 및 난방설비도 현행 최저주거기준에 이미 명문화되어있다. 다만 기준은 '적절한'이다. 무엇이 어떻게 적절하다는 것인가. 이 불분명한 성능기준과 주거환경기준은 '방말고집에살고싶다'프로젝트로 제보한 사연에서 제일 많이 토로된 내용과 이어진다. 기존의 시민주거운동단체들도 꾸준히 문제제기한 부분임은 물론이고 무주택자공동행동에서도 언급되었다. 소음은 또 어떠한가. 합판으로 공간을 분리한 쪽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파트 층간 소음문제도 심심치 않게 언론에 나오곤 한다. 이웃끼리 얼굴을 붉히지 않고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적절한' 방음 설비의 구체적 기준을 마련할 이 개정안을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함께 환영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만큼 흔한 고충이다. 기준이 있어야 규제를 할 것 아닌가. 이번 개정안은 기준과 강제력을 마련할 두 마리 토끼로 주거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면서 사각지대를 촘촘히 메워 나갈 것이다.

 

■ 기준미달 가구에 대한 정부의 우선지원 

 

'주택공급과 개량자금 우선지원'이라는 현재의 모호한 규정을 공공임대주택 공급, 주거비 보조, 주택 수리비 지원으로 세분화했고, 지원대상 선정 시 아동이 포함된 주거빈곤가구가 최우선으로 고려하도록 했다.

 

■ 1인당 면적기준 확대와 다양한 주거문화 반영 

 

1인당 최소면적기준을 14㎡에서 25㎡로 상향했다. 약 4.2평에서 7.5평으로의 큰 변화다. 기존 전통 표준가구 중심의 면적 계산법을 벗어나 경제수준과 국제 수준 등 다양한 변화를 반영한 면적 공식이 나온 것도 성과이다.

 

또한 공유주택 등은 주거유형별로 별도 기준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1인당 최소면적은 10제곱미터 이상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한 것, 10세 이상 아동·청소년에게는 독립공간 부여를 원칙으로 삼는 등 방 개수와 방 사용기준 또한 현실화한 점, 최저주거기준 타당성을 5년마다 재검토하는 변화는 다양한 가구구조와 주거문화의 변화 양상과 사각지대 발생을 막고자 한 촘촘한 의지의 반영으로 평가한다. 

 

'방 말고 집'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자! 

 

주거기본법의 '일부'를 개정하는 내용이지만 기존 현행법이 놓쳐온 '대다수' 시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주거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왜 당사자들은 언론에서 이런 희소식을 접하지 못했을까. 

 

올해는 특히 부동산과 관련한 사건 사고가 많았다. LH투기사건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공직자가 연루되어 시끄러웠다. 관련하여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이 뒤늦게 법안발의 8년 만에 통과되었지만 소급적용은 되지 않았다. 서울시장 후보는 땅 투기 의혹과 명품 구두브랜드와 생태탕을 각인시키며 당선되었다. 집부자를 위한 종부세 인하는 속전속결 담합으로 진행되었다. 야당 대권주자는 자신을 세입자라고 정체화하며 주목을 받았으나 가족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세입자 간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사퇴하였다. 거대 기득권 양당은 국감과 대선 공론장마저 화천대유와 50억 퇴직금을 쏟아내 민생의제에 비추어야 할 한줄기 관심도 허락지 않는다. 

 

'방 말고 집'에 살고 싶은 당신의 목소리를 담은 '주거기본법 개정안'은 이 틈바구니에서 발의되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구석에 계류되어 있다. 최저주저기준을 상향하는 '주거기본법 개정안' 통과가 시급하다. 찬바람이 분다. 주거약자에게 더욱 잔인한 계절이 오고 있다. 무주택자 시민들의 분노의 촛불에 정치는 입법이라는 책임으로 응답해야 한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방 말고 집'을 요구합니다!

개미집에는 개미가 살고 주택에는 사람이 산다. 사람이 개미집에 산다고 개미집이 주택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택은 안전성·쾌적성 등을 확보해야'하기 때문이다. 이 '뻔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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