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지금도 군에는 '변희수들'이 있다

2021. 10. 14. 15:3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트랜스젠더 군인이 복무 중이라는 전제에서 국가적·사회적 논의 시작돼야…"

 

장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10월 7일 오전 9시 40분 대전지방법원 별관 332호 앞. 초조한 기운이 감돌았다. 10분 후 고(故) 변희수 하사가 생전 제기했던 육군의 강제전역처분 취소 소송의 선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변희수공대위')는 승소를 전제로 한 기자회견문만을 작성했고, 기각 혹은 각하의 상황은 선고 이유에 따라 변수가 너무 많기에 작성하지 않은 상태였다. 차분히 선고 직후 있을 기자회견의 발언자 순서를 정리하였다. '혹 패소한다면' 보태어질 발언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런 불길한 말 한 마디로 이미 작성이 완료되었을 판결문이 바뀌기라도 할까 극도로 말을 조심했다. 선착순 11명만 들어갈 수 있다는 법원의 단호한 조치로 현장에 찾아간 대다수의 사람들은 법정 문 밖에서 초조히 기다렸다. 9시 50분, 55분, 보통 서너 마디로 선고가 끝나는데 시간이 길어지는 걸 보니 선고 이유도 간단히 발표하는 듯했다. 좋은 징조인가 나쁜 징조인가 짧은 시간, 수백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10시가 조금 안 되었을 때, 법정 문 앞쪽에서 "이겼답니다" 하는 잔잔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제야 사람들은 참았던 숨을 내쉬고 '패소할까 봐 간밤에 잠을 설쳤다'와 같은 말을 입 밖에 꺼낼 수 있었다.

 

 

▲故 변희수 하사의 육군 강제전역처분 취소 소송 선고가 있었던 10월 7일 오전 대전지방법원(필자 제공)


곧바로 법원 앞에서 승소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4명의 발언 이후 동료 활동가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기로 하여 열심히 연습을 했다. 번번이 "지난 시간, 살얼음판을 걷는 마음으로 재판을 지켜봐 온 이 땅에 남은 또 다른 변희수들에게 오늘 하루가 깊은 위로이자 희망으로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빈다"라는 마지막 줄을 울음 없이 읽는데 실패했다. 그 글을 소리 내어 읽자 그제야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변희수가 승리했는데 변희수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변희수 하사가 제기한 소송의 결과는 육군이 그녀를 내쫓은 지 624일, 고인이 소를 제기한 지 423일 만에 나왔다. 변희수 하사는 생전에 재판 기일이 잡히는 것조차 보지 못하고 떠났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보를 책임질 자격이 없는 육군과 국방부

 

이 소송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소송의 당사자인 변희수 하사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 소송을 유가족이 승계할 수 있는가. 둘째 성확정 수술은 복무를 계속하기 어려운 심신장애에 해당하는가. 이 두 쟁점에 대하여 법원은 모두 변희수 하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전역심사 당시 변희수 하사는 여성이고 성확정 수술, 법원에 성별정정 신청 등을 모두 군에 보고하여 군 당국은 알고 있었으니 '당연히' 여성의 기준에서 심신장애를 심사하였어야 마땅하다고 정확히 지적했다. 한마디로 변희수 하사는 군에서 강제전역 당할 타당한 이유가 없었고 여성이며 군인인 그녀는 쭉 군에서 복무했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육군의 결정이 위법하다는 판결이 난 이날, 지난 6월 성폭력 피해 끝에 세상을 떠난 공군 이 중사 사건에 대한 국방부의 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사건을 은폐하고 2차 가해를 일삼은 핵심 가해자 0명이 기소되었다. 0명이 말이다. 국방부는 군인으로 계속 복무하기에 아무 문제가 없는 변희수 하사를 내쫓았고 군대 내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고 집단의 묵살과 2차 가해로 이 중사가 세상을 떠나도록 방치했다. 얼마 전 해군에서도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여군 중사가 세상을 떠났다. 자기 식구의 목숨조차 지키지 못한 군이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보를 지키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육해공을 막론하고 아군의 목숨을 놓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이다. 뼈아픈 성찰,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 당연히 쏟아졌어야 할 이 과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재판 과정 내내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발언 수준의 변론을 펼쳐 온 육군은 여전히 변희수 하사에게 사과 한마디 없다. 

 

 

▲국방부 앞 故 변희수 하사 추모행동 사진 (필자 제공)

 

 

우리 사회에 남은 과제 

 

10월 7일 법원 앞 기자회견에 함께 서지 못한 그녀를 떠올리며 우리 사회에 남은 과제를 꼽아본다. 쏟아지는 변희수 하사의 승소 관련 보도에서 몇몇 기사들이 눈에 걸렸다. '트랜스젠더의 군복무 길 열리나?'와 같은 제목도 그 중 하나였다. 트랜스젠더 군인은 지금도 복무 중이다. 변희수 하사가 자신의 존재를 세상을 드러내기 전에도 그녀가 복무 중이었듯 말이다. 심지어 판결문에도 유가족들이 이 소송을 이어가는 것을 인정하며 그 필요에 대하여 '성정체성의 혼란, 성별불일치의 인식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므로 이 사건 처분과 동일한 사유로 위법한 처분이 반복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미 트랜스젠더 군인이 복무 중이라는 전제에서 논의가 시작되도록 토론의 방향을 잘 설정하여야 한다. 지금도 군에는 '익명의 변희수'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판결문에는 궁극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성소수자의 기본적 인권과 국민의 여론 등을 고려하여 입법적, 정책적인 결정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군대 내 성소수자 처우 문제, 트랜스젠더의 군복무 문제 등 우리가 인권의 원칙에서 살피고 정비할 문제가 산더미이다. 나아가 군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한 번도 제대로 논의해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시작할 때이다. 

 

판결문은 "성전환자의 '성정체성'을 이유로 차별을 하는 것으로서 헌법, 양성평등기본법, 국가인권위원회법, 국제법 등에 위반된다"며 이 같은 처분이 차별이라고 정확히 명명하였다. 우리의 가장 큰 숙제는 이처럼 부당한 차별로 또 누군가를 잃지 않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군, 정부, 국회 어느 곳 하나 시민의 감시 없이 저절로 변화할 리 만무하다. 우리는 그 쇄신을 끝까지 지켜보고 닦달하며 온당한 제도적 정비까지 나아가도록 지켜볼 의무가 있다.

 

그녀가 명예롭게 되찾은 그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 군인이고자 했던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지금도 군에는 '변희수들'이 있다

10월 7일 오전 9시 40분 대전지방법원 별관 332호 앞. 초조한 기운이 감돌았다. 10분 후 고(故) 변희수 하사가 생전 제기했던 육군의 강제전역처분 취소 소송의 선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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