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아동 생명권, 정치권에 달려 있다

2019. 7. 18. 12:32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성남시 '아동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의 성과와 과제

 

김혜미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간사

 

 

2016년 '아동의 생명을 모금이나 사보험에 의존하지 말고, 국가가 책임지자'는 목소리가 세상에 나왔다. 이들은 시민사회, 사회복지, 보건의료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58개 단체 구성원들로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이하 어린이병원비연대)'를 출범시켰다. 

2016년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 출범


어린이병원비연대는 지난 3년 동안 아동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국가에서 책임지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운동의 성과로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국민이 만든 10대 공약을 발표하며, 1순위를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을 꼽았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성남시장에 출마한 은수미 후보가 어린이병원비연대와 정책 협약을 맺었고, 성남시장으로 당선된 이후 어린이병원비연대와 함께 정책 연구, 조례 제정 등을 진행하며 공약을 실행에 옮겼다. 

▲ 2016년 2월 어린이 병원비를 민간모금 대신 국민건강보험으로 해결하자며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가 출범했다.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


마침내 성남시는 보건복지부와 지난한 협의 끝에 2019년 7월 전국 최초로 '아동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를 시행했다. 중앙정부에서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자체가 아동부터라도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의지가 맺은 결실이다. 

성남시 '아동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에 남는 아쉬움 

그럼에도 이번 성남시의 '아동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에는 아쉬운 부분이 남는다. 첫 번째는 보장 범위이다. 성남시 아동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 정책은 '비급여만 보장'한다. 그동안 의료비 정책들이 '비급여'를 보장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 성남시 정책은 한 걸음 앞서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문재인 케어'로 비급여가 대부분 '예비급여'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비급여만 보장하는 성남시 정책이 가진 한계는 명확하다. 한편 예비급여의 경우 50~90%라는 높은 환자 본인 부담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남시와 보건복지부가 협의한 '비급여만 보장'은 환아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 주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보장 연령이다. 어린이병원비연대와 함께 계획했던 원안의 경우 '18세 미만 아동'이 대상이었으나, 이번에 시행된 성남시의 아동 의료비 정책은 '0~12세'로 크게 축소됐다.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동일 질환의 경우에도 투약량, 합병증 발생 등으로 연령과 본인 부담률 상승률은 비례하는 경향이 있어 보장 연령 축소는 정책 실효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째는 소득 기준 적용이다. 중위소득 50% 초과 가구의 경우 본인 부담 10%를 적용한다. 어린이병원비연대와 성남시가 함께 설계한 '어린이 병원비 100만원 상한제' 정책은 모든 아동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한 보편적 성격을 가진 정책이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협의 이후 정책 실행단계에서 자산조사를 시행하는 일부 선별주의적 정책으로 변경된 것이다. 

이렇듯 '어린이 병원비 100만원 상한제'는 성남시에서 여러 한계를 지닌 채로 시행되었다.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을까? 전국 최초 '아동 의료비 상한제'라는 타이틀을 건 성남시의 정책이 아쉬움을 가득 안고 출발한 원인에는 보건복지부의 책임이 크다. 

▲ 지난 6월 은수미 성남시장과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 간담회. ⓒ성남시


보건복지부의 몽니 부리기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사회보장 협의 기간에 성남시 아동 의료비 지원 정책에 대한 입장을 계속 바꾸어가며 정책 시행을 더디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로 혼란만 가중시켰다. 이 과정에서 보건복지부가 유일하게 고수한 원칙은 성남시의 아동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가 원안대로 시행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었다고 밖에 판단할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문재인 케어'로 2022년이면 거의 모든 비급여는 건강보험으로 편입될 예정이다. 고급의료서비스나 의학적 효과 수준이 낮은 비급여 항목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예비급여로 전환된다. 따라서 보건복지부와 성남시가 협의한 대로 '아동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의 보장을 비급여로 한정한다면, 3년 뒤에는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비급여는 거의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비급여 항목들은 예비급여로 전환되어 다시 '본인 부담'이라는 이름으로 환아들에게 돌아온다.  

분명히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것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남시 사업을 비급여로만 제한하도록 요구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문재인 케어'의 보장성 범위를 넘어서는 지자체 정책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의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영국의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에 의하면, 이런 상황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유지는 되지만 국민들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도달하려는 목적에 대해 선출된 정부가 배신하는 역설적인 '포스트 민주주의' 상태로 해석될 수 있다. 포스트 민주주의의 특징이자 가장 큰 문제점은 정치적·경제적 엘리트들이 입법국가에서 부여받은 합법성을 근거로 권력 수단을 독점하고 정치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2017년 통계에 따르면, 한 해 질병으로 사망하는 19세 이하 아동·청소년이 2294명이다. 적어도 아동·청소년들 중에서 의료비가 없어 사망하거나 의료비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지향한다. 그런데도 어린이 병원비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지자체의 정책까지 막아서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완전한 아동 의료비 해결을 위하여 

이번 성남시의 정책은 아쉬움이 크게 남지만,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초기의 목적을 온전히 달성할 수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지켜보아야 한다. 이제 21대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았다. 18세 미만 850만 어린이 '병원비 100만원 상한제’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4020억 원이면 충분하다. 국가가 충분히 조달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결국 정치적 의지의 결집 여하에 아동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달려있다.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49396#09T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