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모두의 1시간이 평등한 '타임뱅크'를 아십니까?

2019. 7. 10. 14:45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급속한 고령화·4차 산업혁명 앞두고 주목

 

손서락 타임뱅크코리아 대표

 

 

지난해 9월 8일 중국계 사업가 출신인 앤드류 양(Andrew Yang)은 2020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선거 공약으로 전 미국인에게 월 1000달러 보편적 기본소득 보장과 함께, 타임뱅크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디지털 통화(Social Digital Currency)'의 도입을 주장하였다. 그의 기본소득에 대한 캠페인과 타임뱅크에 대한 생각은 국내에서도 번역된 그의 책 <보통 사람들의 전쟁(The War on normal people)>(장용원 옮김, 흐름출판 펴냄)에 잘 드러나 있다. 

'노동'의 개념을 넓히자 

▲ <보통 사람들의 전쟁(The War on normal people)>(앤드류 양 지음, 장용원 옮김, 흐름출판 펴냄). ⓒ흐름출판

 

기본소득에 대한 인식은 이미 국내에서도 연구와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지만, 타임뱅크는 아직 국내에서 다소 생소한 용어이다. 이 글은 타임뱅크에 대한 소개에서부터 타임뱅크를 둘러싼 최근의 논의를 소개한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 전개되는 기본소득, 더 적절하게는 참여소득에 관한 논의에서 타임뱅크의 역할이 좀 더 구체적으로 힘을 얻기를 바란다. 

앤드류 양은 무인자동차의 도입으로 인하여 약 350만 명, 그리고 트럭운전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텔, 주유소 등의 연관 산업 종사자 500만 명 등 전체 800여만 명의 생계가 직접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월 1000달러 보편적 기본소득(UBI)의 도입을 주장하였다. 그는 대선후보 출마 당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노동'(Work)에 대한 개념을 훨씬 더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아내가 두 어린 소년과 함께 지금 집에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시장 가치로는 0에 해당하며 직업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녀가 다른 누군가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고용되었다면 그것은 직업이 될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노동'이라는 개념은 시장을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당신은 일자리를 통해 보상을 받지만 일자리가 아니면 보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시장이 인간 노동력을 점점 더 가치 없게 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회적 통화(Social Currency)'는 우리가 노인을 돌보고, 어린이를 양육하고, 지역 사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것과 같은 더 많은 것을 장려하고 싶은 다양하고 긍정적인 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이 아이디어는 수년 동안 미국 내의 수백 개 공동체에서 효력을 발휘해온 '타임뱅킹(time banking)'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도움을 제공하는 행동을 인식하고 강화시키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모두의 1시간은 평등 

▲ 타임뱅크 운동의 창시자인 미국 인권변호사 에드가 칸 박사. ⓒ서울시

 

여기서 제안한 타임뱅크란 누군가를 위해 한 시간 동안 봉사나 노동을 하면 그 시간만큼 저축이 되었다가 자신이 원하는 봉사나 노동으로 되돌려 받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한 어르신이 옆집 아이를 위해 붓글씨 쓰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돌봄 봉사를 한 시간 하였다면 그 어르신의 집에 문제가 생겨 수리가 필요할 경우 누군가로부터 1시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는 내가 도움을 준 사람에게 바로 돌려받는 1대 1의 관계일 필요는 없으며 모든 종류의 봉사나 노동이 동등하게 인정을 받는다. 전문가의 자문 1시간이나 아이나 어르신의 1시간은 동등하다.

타임뱅크에서는 전통적으로 구분되는 봉사나 복지의 제공자와 수혜자 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서로 주고받는 호혜성을 기본으로 하는 순환적인 흐름이 일어난다. 바로 이런 순환적이고 지속적인 교환을 통해서 우리는 공동체 안의 '관계'라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함으로써 커뮤니티를 복원하고 강화시킬 수 있다.  

이런 타임뱅크 운동은 1980년대 미국의 인권변호사인 에드가 칸 박사에 의해 처음 '타임 달러'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최근 아시아 각국들이 속속 도입할 정도로 대중적인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정부의 실패나 시장의 실패를 경험한 서구 사회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공동체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러한 커뮤니티를 복원하고자 하는 흐름이 탄력을 받고 있다. 

특히 타임뱅크 운동이 영국에서는 풀뿌리로서의 성격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정부가 도입을 하면서 공공서비스의 혁신 모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최근 대만·태국·싱가폴·말레이시아에서는 급속한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타임뱅크 도입을 서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4차 산업혁명과 '참여소득' 

이러한 타임뱅크 운동은 급속한 고령화 문제와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서 더더욱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은 절대적으로 시장경제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수를 늘린다. 노인을 위한 각종 일자리를 만들고 있으나 그 일자리들이 생계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며 또한 육체적 한계로 그런 일자리마저 나가기 힘든 사람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한 고실업은 구조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을 해도 빈곤하고 불안한 층이 청년계층부터 만연화되어 있다.  

이처럼 시장경제에서 배척당한 사람들은 지역사회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이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냐라고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도 가족과 이웃을 위해 기여하고 헌신을 한다. 아이들이나 장애인을 돌보기도 하고 독거노인을 위해 봉사도 할 수 있다. 또한 자연환경을 지키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가치 있는 일을 장려하고 지속가능하기 위한 보상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시장경제의 화폐는 늘 이런 종류의 일들에 대해 싸구려 노동으로 평가하고 아주 적은 금액을 지불하게 되거나 아예 무상의 자원봉사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정부가 예산을 들인다 하더라도 이런 헤아릴 수조차 없는 노동들에 대해 모두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바로 이러한 노동에 대해 새로운 지불 수단이 필요하다. 타임뱅크는 그런 측면에서 새로운 지불수단이 될 수 있다.  

타임뱅크는 또한 지금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도 확장해나갈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우리 사회에는 가사노동을 비롯해 '지불받지 못하는 노동'들이 넘쳐난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이러한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들에 화폐적인 방법을 통한 보상방법 중 하나가 되리라 본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소득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으나, 여전히 실업 이후 노동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한다고 볼 수 는 없다. 인간이 돈만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굉장한 유의미성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위에서 앤드류 양이 언급한대로 노동이라는 개념을 확장하고, 확장된 노동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을 장려하고 보상하는 방법으로는 타임뱅크가 유력하다. 이처럼 "사회에 유용한 활동을 수행한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지급되는 소득(Atkinson)"이 참여소득(Participation Income)이라고 정의된다. 앤드류 양이 말한 "사회적 통화"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사용되는 화폐를 의미한다.  

참여소득에 대한 논의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이어져 왔으나 초기에는 양자 중 어떤 정책을 우선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로 논쟁한 반면에 지금은 어떻게 상호 보완할 것인가의 방향으로 진척되고 있다. 기본소득과 참여소득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해선 경기원구원 김정훈 박사가 쓴 '지역공동체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략 연구:타임뱅크를 중심으로'(2018)를 참고하기 바란다.  

▲ 타임뱅크(Time Bank)를 활용한 복지서비스 혁신(김정훈 경기연구원)


참여소득 실행 플랫폼으로서 '타임뱅크' 

지금까지 참여소득에 대해 그 인정범위나 대상에 대해 다소간의 논란이 있어 왔다. 또한 그에 따른 과도한 행정비용의 발생에 따른 우려 섞인 목소리도 존재한다. 그러한 논란에 대해서 경기연구원의 김정훈 박사는 위 보고서에서 타임뱅크를 통해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타임뱅크를 통해 지방정부나 지역공동체의 목표, 회원들의 서비스에 대한 자발적 공급과 수요 등을 통해 사회적 필요에 기초하여 참여소득의 인정범위를 설정함으로써 참여소득의 인정 범위와 리스트를 정부가 하향식으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설정할 수 있다". 또한 자발적 교환체계로서의 타임뱅크는 중앙정부에 의한 과도한 관리나 재정투입을 필요로 하지 않기에 행정비용의 발생을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다고 언급한다. 이를 통해 참여소득의 실행 플랫폼으로서의 타임뱅크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아직 타임뱅크 방식의 참여소득에 대한 논의는 초보단계이다. 풀뿌리 운동으로 성장해온 미국에서마저도 앤드류 양의 제안은 타임뱅크 운동을 하는 사람들 안에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그가 타임뱅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한 단계 끌어올렸으며, 향후 활발한 연구와 실험이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맞추어 국내에서도 다양한 도전을 꿈꿔 본다.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48220#09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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