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세입자들의 절규…"주거 없으면, 주거!"

2019. 6. 18. 14:00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제도 도입하라!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엄마, 또 이사가?" 1990년 3월 갓난아이를 업은 엄마가 세입자 대회에 참석해 든 피켓의 문구였다. 불행히도 이 엄마는 언론에 보도된 사진을 본 임대인의 꾸지람과 "방 빼!"소리에 '또 이사가'야 했다고 한다.

"엄마, 또 이사가?"

1989년 12월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계약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개정되었다. 그러나 당시 치솟던 집값과 전월세 폭등으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을 막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이듬해인 1990년 4월 전월세 폭등으로 이사 갈 방을 구하지 못한 일가족 4명이 동반 자살하는 등 그해 봄 17명의 세입자들이 같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 

▲ 1990년 3월 4일 '엄마! 또 이사가?' 세입자 집회 모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박용수)

 

그만큼 당시 무주택 세입자들의 고통은 심각했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경유하며 대규모의 불량 무허가주택에 대한 강제철거가 집행되었고, 88년부터 집값과 전월세 값이 폭등했다. 당시 세입자들은 자신과 처지가 같은 세입자들의 죽음을 보며 희생자들에 대한 합동 위령제와 집회가 열렸고, 임대료 동결 등을 촉구했다. 

1992년 6월 3일 심각한 전월세 폭등의 고통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도시 세입자들과 집 없어 쫓겨나는 철거민 1000여 명이 한데 모였다. 이들은 '더 이상 집 없는 서민들의 고통과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민주사회를 만들자'며, 이날을 '무주택자의 날'로 선언했다. 당시 축사를 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세입자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호화주택을 짓거나 집을 몇 채씩 소유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경고했고, 세입자들은 "이 세상에 집 없는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는 한, 호화주택을 지을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있다면 모든 이를 위해 최소한의 삶의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의무가 있을 뿐이다"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달팽이 보다 느린 세입자 보호 

올해는 '무주택자의 날'이 선포된 지 27년째 되는 해이고,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개정으로 1년이던 세입자의 계약 갱신 기간이 2년으로 늘어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1989년 개정된 2년의 존속 거주기간은 30년째 그대로 머물러 있다. 달팽이가 기어가는 속도만큼이라도 집 없는 이들을 위한 제도가 바뀌었어도 벌써 바뀌었을 시간이다. 보호하지 못하는 임대차보호법은 "방빼!" 한마디에 2년마다 쫓겨나는 법으로 30년째 봉인되어 있다. 

2018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세입자의 평균 거주 기간은 3.4년에 불과하고, 거주 기간이 2년 이내인 가구 비율은 36.4%에 이른다. 우리나라와 민간임대주택 비율이 비슷한 독일의 경우, 세입자 평균 거주기간은 12.8년이고 20년 이상 한 곳에 거주한 세입자도 전체의 22.7%라고 하니, 한국 세입자들의 처지는 '헬조선'에 갇혀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헬조선을 탈출하자며 적폐청산의 촛불이 타올랐던 지난 2017년 2월,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서 홀로 생활하던 40대 남성이 다섯 달 치 월세 약 150만 원을 내지 못해 집을 비우기로 한 날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맸다. 같은 달 신림동 4평방미터(㎡)의 한 평 '쪽방'의 4개월 치 월세가 밀린 60대 남성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역시 월세 15만 원을 내지 못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임대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 70만 원,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 사회에 충격을 줬던 5년 전의 송파 세 모녀 사건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지금도 "미안하다"며 죽어가고 있다. 

"주거 없으면 주거(죽어)" 

'생활고로 인한 자살'이라는 기사들이 나올 때마다 동전의 양면처럼 밀린 월세가 따라붙는다. 이는 그 '사회적 타살'의 한 가운데 마지막 잠자리조차 안정되지 못하는 세입자들의 심각한 주거비 부담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경고이다. "주거 없으면, 주거(죽어)"라는 세입자들의 절규가 30년을 이어오고 있다. 

▲ '주거가 없으면 주거~.' 2018년 1017빈곤철폐의 날 행진 모습. ⓒ최인기


역대 정부마다 '서민·중산층 주거 안정'이라는 수식어로 포장한 주택 공급 대책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하지만 주거권을 보호하기보다는 부동산 경기 대책에 방점을 찍었다. 세입자들은 '빚내서 집사라'고 내몰렸다.  

문재인 정부도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하며 세입자 주거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다주택자의 자발적인 민간임대주택사업 등록으로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장해 전월세 인상률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을 실현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세입자 보호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사실은 세입자가 아닌 임대인을 향한 유인책을 폈다. 결국 민간임대주택 등록을 유도하기 위한 과도한 인센티브를 줘서 임대업자에게 투기의 꽃길을 깔아줬고, 집값 폭등의 결과를 가져왔다. 

전월세 상승폭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와 세입자가 계약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갱신 청구권' 등 핵심적인 세입자보호 대책은, 임대료 문제를 겪고 있는 주요 선진국과 대도시에서 이미 도입되어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를 원할 경우 특별하고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심사 절차를 통해 해지할 수 있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갱신 횟수와 기한의 정함이 없는 계속거주권이 보장돼 있다. 

2017년 유엔 사회권 위원회는 4차 심의에서 '사적 시장에서 치솟는 주거비를 규제하는 메커니즘을 도입하고, 임차인의 더 오랜 계약 기간을 보장하기 위해 임대차 계약 갱신을 제공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올해 3월 유엔 인권 이사회에 제출된 '유엔 주거권특별보고관'의 한국 국가방문 보고서도 한국 정부에 '임대료 인상 상한제와 거주기간 장기화 제도의 도입'을 권고했다.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제도 도입하라! 

▲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제도 반드시 도입하라.' ⓒ참여연대

 

실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은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여・야로 구성된 '서민주거복지특별위원회'에서 수차례 논의되었던 주제이다. 현 20대 국회에서도 다수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관련 연구용역의 결과로 '횟수나 기간의 제한 없는 갱신권 인정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기도 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었고, 구체적인 법안도 발의되어 있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일부 정치권의 말은 '의지 없음'의 숨겨진 표현일 뿐이다. 더 이상 미룰 핑계는 없다. 

30년째 봉인된 세입자들의 권리, 이제는 바꿔야 한다. 이미 오를 만큼 올라 전월세 인상의 압력이 적고, 안정기를 겪고 있는 현시점이 세입자 보호를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할 최적기이다. 1년 남은 20대 국회를 벌써부터 '민생을 외면한 국회'로 끝내서는 안 된다.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전월세인상률 상한제와 갱신청구권 보장 등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집 때문에 죽어 나가는 이들이 울리는 '사회적 타살'의 경계령에 귀 기울여야 한다. 주거비 부담에 짓눌리고 있는, 국민의 절반에 이르는 무주택 세입자들에게, 전월세 안정은 더 이상 포기할 수 없는 우선순위의 복지 정책이다. 

 

*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245340#09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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