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국일고시원 화재참사 희생자 49재 기자회견

2018. 12. 27. 16:25내만복 자료(아카이빙용)/내만복 사진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가 있은지 49일이 되는 27일 오후, 화재 현장에서 주거, 빈곤, 복지 단체 회원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한 낮 기온이 영하 7도를 오르 내려 올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습니다. 


많은 취재진이 모인 가운데 기자회견은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의 진행으로 홈리스행동, 서울세입자협회,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유가족 대표 등의 발언으로 이어졌습니다. 국일고시원 생존자의 생생한 증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들은 이번 참사를 추모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과 재방방지대책을 요구했습니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에서는 최창우 운영위원(집걱정없는세상 대표) 등이 함께 했습니다. 






<기자회견문>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로 일곱명의 생명을 잃은 지 49일이 지났다. 죽은자들은 내세로 떠나고, 살아남은 자들은 슬픔을 거두고 탈상을 해도 좋을 시기다. 이렇듯, 산자와 죽은자 모두 변화하기 충분한 시간을 보냈으나, 우리의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피해생존자들의 회복은 아직도 요원하다.

참사 발생 직후 국토부, 행안부, 복지부 등 관련 부처와 종로구는 각각 보도자료를 내고 저마다의 지원책을 발표하였다. 화재로 거처를 잃은 피해생존자들에 대해 단계별 주거를 제공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등 피해자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 공언하였다. 그러나 32명의 피해생존자 중 임대주택에 입주한 이들은 열 명 남짓에 불과하다. 국토부의 발표와 달리, 종로구는 최장 20년 입주 가능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을 안내하지 않은 채, 6개월을 기한으로 하는 ‘이재민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만을 물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6개월 후 반납해야 하는 임대주택에 들어가리라 작심하고, 그에 맞춰 세간을 장만하겠는가?

재발방지 대책은 아무것도 마련되지 않았다.

국일 고시원 참사를 만든 근본원인은 ‘화재’가 아니라, 이처럼 열악한 곳에 사람이 살도록 용인했던 우리의 주거 현실이다. 화재로 인한 사망처럼 가시적이지 않을 뿐, 바람도 빛도 스밀 수 없는 네모난 독방에서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주거가 곧 안전한 주거다. 오직 화재라는 현상에만 매몰돼 소방·안전 대책만 강구한다면 비주택의 주거수준은 나아질 수 없다. 바깥으로 난 창 하나 없는 방에서 탁한 공기만 마시며 살던 이들은 화재시 유독 가스를 피할수도, 탈출할 수도 없다. 그러나 현행법은 오래 된 고시원 등 다중생활시설에 대해서는 안전시설을 설치하지도, 건축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하여 안전과 주거의 사각지대를 방치하고 있다. 단지 지난 6일과 18일, 안전시설 설치를 소급적용하도록 하는 다중이용업소법 개정안과 준주택의 건축기준을 법률에 명시하도록 한 건축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을 뿐, 그 진로를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비주택에 대한 최저주거기준 도입하라.

사람 사는 곳이라면 그곳이 주택이든 그렇지않든 최저주거기준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다만, 현행 최저주거기준이 구체적이지 않고 비주택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별도의 최저주거기준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미,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여러나라에서 이런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국내에도 수원시의 사례에서 유사한 정책 시도를 찾아볼 수 있다. 현재와 같이 비주택에 대한 정책적 방임을 멈추기 위해서는 신속히 비주택에 대한 최저주거기준을 설정하고, 이에 도달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과 관리감독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적절한 주거를 보장받는 것이 인간의 권리인 것은 그것 없이는 삶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일고시원 화재 희생자들의 49재를 맞는 오늘에 닿기까지 우리사회는 집이 없어, 집 답지 못한 곳에 살아 생기는 죽음을 막을 장치를 아무것도 구비하지 못했다. 삶의 터전이어야 할 집이 죽음의 이유가 되어야 하는 비극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희생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게, 희생자들의 넋이 더 이상 좁고 답답한 고시원에 매이지 않도록, 오늘을 기점으로 비주택 거주자의 주거권을 되찾는 싸움을 새롭게 조직하자.


2018년 12월 27일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희생자 49재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