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국민연금 개혁] ②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8월 17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8년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제도 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 앞서 국민연금 개편 논란을 각성하라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국민연금 개혁은 풀기 쉽지 않은 고차방정식이다. 한겨레는 좀더 생산적인 논의에 보탬이 되고자 ‘논쟁의 장’을 마련했다. 두번째 순서로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이 진보 진영에 던지는 직설을 싣는다.
기금 고갈 예측이 굿판?
‘덜 내고 더 받는’ 현 방식으론
기금 소진은 피할 수 없는 미래
더 빨라질 거란 진단 외면해서야
국민연금만으론 난제 못 풀어
가입기간 갈수록 혜택 커지는 구조
소득대체율 올리면 중상위층 더 유리
그해 지출 그해 조달하는 ‘부과방식 전환’은
대체율 낮추지 않고는 현실성 떨어져
‘다층연금체계’로 미래 대비를
사각지대 취약층엔 기초연금 강화
중상위층은 퇴직연금 활용해 뒷받침
국민연금 재정 지속가능성 확보해야
국민연금 문제는 보장성, 사각지대, 지속가능성을 풀어야 하는 3차방정식이다. 어떻게 해결할까? 나의 대답은 ‘풀 수 없다’이다. 포기하자는 게 아니다. 국민연금을 넘어서야 답이 보인다는 이야기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보장성.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생애소득 대비 연금 수급액)을 올리자고 한다. 민주노총, 참여연대, 정의당도 그렇고 문재인 정부도 같은 방향이다. 그러면 어느 계층의 순혜택이 가장 클까? 국민연금이 재분배제도라 알려져 있기에 하위계층이? 수익비에선 그렇다. 애초 ‘납부한 보험료’인 분모가 작으니 ‘받는 연금액’인 분자의 배율은 높게 나온다. 반면 순혜택, 즉 낸 것에 비해 더 돌려받는 절대액은 가입 기간이 길수록, 즉 대체로 중상위 계층일수록 많다. 국민연금의 독특한 급여 구조와 낮은 보험료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국민연금액은 자신의 소득과 연동된 ‘비례급여’가 절반,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과 연동된 ‘균등급여’가 절반이다. 현재의 보험료 수준에선 모든 가입자가 비례급여만으로 자신이 낸 보험료를 돌려받는다(기금 수익도 보험료 몫으로 계산). 결국 균등급여가 보너스인 셈인데, 가입 기간만큼 제공되기에 노동시장 중심권일수록 많다. 이러한 구조에서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누구에게 혜택이 더 갈까?
사각지대. 불안정 계층의 가입 기간을 늘리자고 한다. 같은 생각이다. 앞으로 형편이 어려운 지역가입자에게도 보험료를 지원하고, 출산·실업·군복무 크레딧(연금 기간을 늘려주는 것)도 늘리고, 특수고용노동자도 포괄해야 한다. 그럼에도 한계는 분명하다. 국민연금이 노동시장의 격차 구조를 피해갈 수는 없고, 사각지대 개선에 전력을 다하더라도 여기에 속한 사람들의 연금액은 적을 것이다.
지속가능성. 오래전부터 ‘빨간불’이다. 이번 4차 재정계산에선 기금 소진이 더 앞당겨졌다. 애초 급여를 충족하기 위한 보험료(16~18%)의 절반 남짓만 걷는 구조에서 인구·경제 변수가 악화했기 때문이다. 현세대의 각성이 절박한 때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기금 고갈론의 굿판을 걷어치우’란다. ‘논쟁-국민연금 개혁’ 첫번째 글을 쓴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소진 상태의 재정 평가지표인 ‘부과 방식 필요보험료율 30%’를 난센스로 치부한다. 당황스럽다. 불편한 수치이지만 ‘진단 결과’를 직시하지 않고 어떻게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가?
심지어 기금이 소진되면 부과 방식으로 운영하면 된다는 주장도 등장한다.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미래 부담이 커져도 부과 방식이라는 대안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 독일은 한달치 적립금만 가지고도 대체율 48%의 연금제도를 잘 관리한다.
관건은 현세대의 책임 몫이다. 독일 사람들은 소득의 18.7%를 보험료로 낸다. 스웨덴도 받는 것과 내는 것이 독일과 비슷하다. 한국만큼 연금에서 수지불균형을 지닌 나라가 없다. 부과 방식 전환은 앞뒤 세대의 보험료 차이가 크지 않아야 논의될 수 있다. 대체율을 대폭 낮추지 않는 한, 아주 오랫동안 한국에선 실행될 수 없는 상상도이다. 서구 공적연금의 소중한 성과인 부과 방식이 한국에선 현세대의 책임을 회피하는 담론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국민연금 문제는 국민연금을 넘어서야 풀릴 수 있다. 보통 국민연금 강화를 주장하면 친복지, 사회연대, 진보적이라 여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선의를 존중하지만 한국적 상황에서는 거꾸로 흐를 수 있음을 유의하자. 국민연금을 향한 일면적 인식이 낳은 역설이다.
나의 제안은 국민연금에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포괄하는 다층체계이다. 사각지대에는 기초연금이 가장 효과적이다. 또한 임금의 8.3%로 조성된 퇴직연금을 이대로 방치할 이유가 없다. 기초연금을 더 강화하고, 퇴직연금을 연금 형태로 발전시키자. 두 친구가 있기에, 앞으로 국민연금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주력할 수 있다. 중하위 계층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중상위 계층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중심으로 노후를 대비하는 ‘한국형 다층연금체계’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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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858467.html?_fr=mt2#csidxe8f185ab1e4776a81c9b44774eb42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