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15. 15:49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 발표를 앞두고 여론이 뜨겁다. 일부에선 국민연금 폐지 의견도 나오고 정치권은 벌써부터 책임 공방이다. 앞으로 논의가 생산적이길 바라며 국민연금 개혁에서 주목할 다섯 가지를 꼽아본다.
첫째, 우리나라 국민연금 재정이 지닌 특수성을 직시하자. 오랜 연금 역사를 지닌 선진국에서 연금 개혁의 주요 이유는 저출산과 수명 연장이다. 이들 나라에선 인구 변화에 적응하도록 연금을 다듬는 게 과제다. 반면 우리나라 국민연금 재정에서 불안의 원인은 중층적이다. 빠른 고령화와 함께 국민연금 제도 자체의 수지불균형이 공존한다. 예를 들어, 독일은 공적연금의 대체율이 약 48%, 보험료율은 거의 19%이다. 스웨덴도 급여율과 보험료율이 독일과 엇비슷하다. 대체율 40%, 보험료율 9%인 우리나라와 크게 대비된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대체로 수지균형을 확보했고 이후에는 제도 외적 변수인 인구 변화에 대응하면 되지만 우리는 제도 내부의 수지 격차까지 풀어야 한다. 국민연금의 처지가 무척 힘겹다.
셋째, 국민연금 개혁에서 관건은 연금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현세대와 후세대가 책임질 몫을 정하는 일이다. 일부에선 기금이 있기에 당분간 문제가 없고 소진되어도 그해 보험료를 거두어 지출을 충당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면 된다고 말한다. 한달치 적립금만 가지고도 연금제도가 잘 운영되는 독일 사례도 소개하면서. 귀가 솔깃하지만, 왜 독일 사람들이 내는 보험료 수준은 말하지 않는 걸까. 선진국에서 부과방식이 작동하는 건 현세대가 받는 만큼 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현세대가 내는 보험료가 낮기에 이대로 그냥 가면 후세대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 현세대가 지금보다 더 책임을 감당해야 공평하다. 물론 서민들의 가계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보험료가 힘겨운 사람을 위한 보완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연금개혁은 후세대, 즉 지금 어린아이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테이블 저편에서 우리와 마주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사안임을 잊지 말자. 대통령이 말한 사회적 합의가 우리 세대의 이해에 국한되어선 곤란하다.
둘째, 국민연금은 장기를 내다봐야 하는 제도이다. 국민연금에 적립금이 존재하고 지금도 당해 수입과 지출에선 흑자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당해 지출만큼 예산을 마련하는 일반적 복지제도와 다르다. 비유하면 축구경기와 같이 전후반을 가진 제도이다. 가입자가 전반전에는 보험료를 내기만 하고 후반전에는 연금을 받기만 한다. 20세에 가입하여 전후반을 뛰고 90세에 사망할 때 비로소 연금제도와 맺은 재정이 결산된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향후 70년을 전망하는 이유이다. 이리 먼 미래를 알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중요한 건 미래 재정의 추세이다. 5년 주기로 계속 70년을 전망하면서 현재 우리가 택할 개혁의 각도를 설정하고 또 조정하자는 취지이다.
넷째, 연금개혁의 시야를 국민연금에서 다층연금체계로 넓히자. 우리는 용돈연금이라 부르지만, 정작 국민연금은 억울하다. 낮은 보험료, 짧은 가입기간에도 이 금액을 지급하려고 허리가 휘는데도 조롱을 받으니. 국민연금이 지닌 중층의 과제를 생각하면 국민연금만으로 노후를 보장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포기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행히 10여년 전까지는 국민연금 하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법정연금으로 기초연금이 자리 잡았고, 퇴직연금도 있다. 기초연금은 더 키우고, 기여금이 월급의 8.3%로 국민연금 보험료와 비슷한 퇴직연금에선 연금 형태 수령을 정착시켜야 한다. 다층연금체계의 시야에서 계층별로 노후보장을 설계하자는 제안이다. 연금개혁 논의의 출구이다.
다섯째, 국민연금 논란은 우리나라에서 노후 재설계를 절박하게 요구한다. 지금은 고령화 비중이 선진국보다 낮지만 이후 빠르게 높아져 인구 10명 중 4명이 노인이 된다. 이러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결국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 지역공동체의 사회적 경제 등 이모작 환경을 구축해 초고령사회의 연금 의존도를 완화시켜야 한다. 또한 노인이 많아질수록 기초연금, 의료비 지출도 늘기에 국가재정의 확충도 필수이다.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구성된 국민부담률을 높여 복지재정의 토대를 갖추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 참 어려운 주제다. 솔직히 너무 무거워 회피하고픈 사안이다. 그래도 곧장 걸어가야 한다. 이번에 국민연금이 지닌 수지불균형을 놔두고, 다층연금체계를 세우지 않으며, 노후 재설계의 계기로 삼지 못하면, 연금개혁은 난도가 더 높아진 숙제로 뒤로 넘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면으로 대면하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142046045&code=990308#csidx2bf3c3c442b32f7a8bdab4f2d87bcaa
'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 > 언론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JTBC] 밤샘토론 - 97회 - 국민연금 불신 사태, 어떻게 풀까? (2018.08.24) (0) | 2018.08.25 |
---|---|
[한겨레]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높이자고만 하면 진보인가” (0) | 2018.08.21 |
[경향] 건강보험 재정 정상화 묘수 (0) | 2018.07.18 |
[SBS-이슈톡톡] 국토부, ‘공시가 현실화’ 손 본다…세금 인상 신호탄 될까? (0) | 2018.07.13 |
[시사인] 가난한 이들의 눈으로 보면 (0) | 2018.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