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노후의 벗’으로 거듭나라

2017. 10. 11. 16:12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조만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임명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마도 특정 공공기관의 이사장 자격을 대선 공약에 담은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일할 듯하다. 공약집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깨끗하고 개혁적인 인사로 임명”하겠다고 명시했다. 마침 지난달 연금공단이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국민연금이 어느새 한 세대의 역사를 지녔다. 이제는 노후가 막막한 서민들에게 믿음직한 의지처로 자리 잡았을까? 아마도 대답은 부정적일 듯하다. 



현행 국민연금에서는 오래 가입할수록 순혜택이 크다. 고용이 안정된 사람일수록 가입기간이 길기에 불안정 노동자, 영세 자영자보다 혜택을 더 얻는다. 국민연금이 젊었을 때의 격차를 노후에 심화시키는 ‘역진성’을 띤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에 정부와 국회가 불안정계층의 사각지대를 개선하는 여러 보완책을 마련해 왔으나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새 이사장의 취임을 시작으로 연금공단의 혁신적 변화를 보고 싶다. 공공기관은 집행기관이라며 제도 관리에만 머무는 건 곤란하다. 지난 몇 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혁 활동을 본받자. 고소득층에 유리하고 서민 지역가입자에게 불리한 부과체계의 개혁을 선도했다. 


연금공단도 일선에서 현실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조직이다. 현행 제도가 지닌 틈새를 발견하고 해법을 적극 제안하는 활동에 나서야 한다. 물론 쉬운 과제는 아니다. 연금재정도 더 필요하고 의사 결정은 국회 몫이기도 하다. 그래도 사안을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해 국민들과 공유하는 일은 가입자를 직접 접하는 연금공단의 소임이다. 


예를 들어 사업주의 국민연금 보험료 체납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라. 자신은 보험료를 원천 납부했음에도 사업주가 체납해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한 해 무려 100만명이다.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보험료를 체납할 경우 노동자에게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는데 유독 국민연금만 체납의 피해를 노동자에게 전가한다. 이를 호소하는 민원에 연금공단은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 ‘법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한 답변에 머물지 말자. 체납 실태, 유형별 특성, 해법 등을 알려나가야 한다. 


도시 지역가입자의 체납에도 관심을 갖자. 현재 농어업인에게는 보험료가 일부 지원된다. 농어촌의 어려운 형편을 감안한 정책이다. 그런데 가입자의 작년 평균소득을 보면 농어촌은 월 108만원, 도시지역은 129만원으로 큰 차이가 없다. 도시 가입자도 대부분 영세 자영자여서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기 어려운데 지원은 없다. 소득신고자 중 체납자 수가 농어업인은 10명 중 1명이나 도시지역은 4명인 까닭이다. 현재 도시지역 체납자가 약 160만명에 달한다. 노동자는 회사가 절반, 농어업인은 국가가 일부를 보조하듯이, 도시에 사는 영세 지역가입자에게도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소득파악의 한계를 이유로 들었지만 앞으로 건강보험료가 소득 중심으로 부과되고 국세청의 과세인프라도 개선되는 흐름에 맞춰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 


사업장 가입자의 보험료 지원에도 틈새가 존재한다. 현재 월소득 140만원 미만의 저임금노동자의 경우 노사에 각각 본인부담 보험료의 약 절반이 지원되는데 대상이 10인 미만 사업장으로 한정된다. 그 결과 같은 저임금인데도 사업장 규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보험료 지원에서 원천 배제당하는 노동자가 약 160만명이다. 국회에 관련 법안도 제안돼 있으므로 10인 이상 사업장의 저임금 가입자 실태를 꼼꼼히 진단해 입법의 근거를 제공하는 건 연금공단의 몫이다.


아예 가입에서 배제된 사각지대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 대표적으로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택배기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사업장 가입 자격을 얻지 못한다. 현재는 법률적 제약이 존재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특수고용노동자의 권리를 강조하고 국회에서도 입법 논의가 진행되므로 연금공단도 현장의 목소리를 풍부히 전달해야 한다. 


이렇게 찾다보면 크고 작은 제도의 틈새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연금공단이 이미 알고 있는 문제들이다. 400만명에 달하는 납부예외자를 어찌할지, 일용노동자 가입을 둘러싼 사업주와의 다툼을 어떻게 풀지 등 무엇이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눈으로 국민연금을 보자. 사업주 체납으로 불이익을 당한 노동자, 보험료 지원에서 제외된 저임금 노동자와 도시지역 가입자, 가입 자격을 얻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입장에 서면 연금공단이 나서야 할 일들이 분명해진다. 이제 서른 살이다. 대선 공약에도 특별히 명시된 이사장의 임명을 계기로, 연금공단이 서민들의 노후 벗으로 거듭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