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초과세수를 넘어 복지증세로

2017. 11. 8. 20:4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내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시작되었다. 올해 본예산 400조5000억원에서 429조원으로 7.1% 증가한 예산안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이끌기 위해 적극적 재정정책을 담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특히 복지예산이 눈에 띈다. 내년부터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도입 등으로 16조7000억원이 늘어 증가율이 12.9%이다. 앞으로도 문재인케어, 부양의무제 기준 개선, 사회서비스 공공화 등이 본격화되면 복지는 더 커갈 것으로 전망된다. 


초과세수는 반갑지만 한편 우려도 생긴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려면 그에 걸맞은 재정 기반을 갖추어야 하건만 조세제도 개혁 밖의 초과세수에 안주하는 경향이 보여서다. 지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부터였다. 이 문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보고서 성격이라 대선공약의 실행프로그램을 기대했으나 재정방안이 대선공약과 너무 달랐다. 공약재정 178조원이라는 수치는 동일했으나 구성물은 전혀 딴판이었다.


예산안을 볼 때마다 문재인 정부는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세법개정안이 연 5조5000억원 수준의 핀셋 증세에 그치지만 초과세수 덕택에 주요 복지공약의 내년도 몫을 예산안에 담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복지사업은 중앙정부가 복지를 확대하면 지자체의 대응예산도 늘어나는 구조이다. 이 비용마저도 내년은 초과세수에 따른 지방교부세의 자연증가로 충당될 듯하다. 집권 첫해부터 세수가 예상에 못 미쳐 재정 부족에 허덕이고 지방정부와도 갈등했던 박근혜 정부와 확연히 대비된다.


대규모 초과세수가 새로운 카드로 들어왔다. 세법 개정과 탈루세금 과세를 통한 세입확충이 대선공약에선 61조원이었으나 17조1000억원으로 급감하고 대신 초과세수 60조5000억원이 추가되었다. 공약재정의 3분의 1을 경기 효과로 충당하는 셈이다. 또한 기금여유자금 등을 활용한 재원도 20조원에서 35조2000억원으로 늘렸다. 이는 사실상 전임 정부가 넘겨준 재정을 공약 이행 비용으로 사용하는 꼴이다. 물론 초과세수는 환영할 일이고 여유자금도 필요 이상으로 쌓였으면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에 크게 의존하면서 복지는 제도를 통해 확대되지만 이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증세개혁은 주변으로 밀려버렸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진행될 재정분권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시·도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자치분권 로드맵(초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현재 8대 2인 국세와 지방세 비중을 7대 3을 거쳐 6대 4로 전환하는 강력한 재정분권이 담겨 있다. 이미 행정안전부에선 지방소비세와 지방소득세의 인상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가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재정분권을 위한 세금 수치는 담겨 있지 않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결국 ‘제로섬’이라며 재정분권에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앞으로 중앙권한의 지방 이양 정도를 봐야겠지만, 중앙정부도 임기 말 연 44조원의 재정적자를 예상하는 상황에서 국세를 쉽게 넘겨줄 수 없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재정분권을 위한 재원은 어디에 있는 걸까?


올해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GDP 19.3%로 전망된다. 초과세수 호조가 지속되면 실제 수치는 더 오를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임기 첫해인 2013년에는 17.9%였다. 담뱃세 인상으로 서민증세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 고소득자 소득세 강화, 대기업 세금감면의 축소 등 박근혜 정부의 증세 조치도 조세부담률 상향에 한몫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의하면 2021년에도 조세부담률이 19.9%에 머문다. 마치 20% 선을 레드라인으로 여기는 듯하다. 근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25.1%와 비교하면 약 5%포인트,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90조원이나 부족한 선이다. 


내년은 초과세수로 재정을 충당하지만 항상 날씨가 맑은 건 아니다. 복지국가를 위한 조세제도 기반을 구축하고 지방재정 분권까지 달성하려면 임기 초반부터 적극적인 증세 로드맵을 준비해야 한다. 아직은 증세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아니라고? 그나마 경기가 호전되는 시기가 좋은 때이다. 또한 복지가 빠르게 증가하는 지금이 더욱 적기이다. 실제 ‘복지가 늘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많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문재인케어 등 복지가 확대되는 만큼 관련 세금 공제를 줄여 소득세 실효세율을 높이고, 한발 더 나아가 ‘복지에만 쓰는 목적세’인 사회복지세 도입도 이야기하자. 대통령이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위해 소득에 따라 누진적으로 세금을 더 냅시다’라고 말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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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072120035&code=990308#csidx4d01bfbf3d34caf974b7e8243b19a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