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세금 정책, 시민들을 믿어라

2017. 8. 9. 13:32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문재인 정부에 세금이란 무엇일까? 자신이 주창한 ‘포용적 복지국가’를 구현하는 핵심 자원으로 여기고 있을까? 근래 몇 달 세금정치를 보면 평가는 부정적이다. 대선 공약에서 세입개혁은 미약했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선 ‘증세 없는 복지’가 등장했다. 이번 세법개정안에 증세안이 보완되었지만 ‘핀셋증세’에 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조세부담률에 도달하려면 거의 연 100조원이 필요하건만 세법개정안의 세수는 연 5조5000억원이다. 임기 첫해 작품이 이렇다면, ‘준비된 대통령’이라지만 조세 분야에서 국정전략이 있었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물론 세금은 불편한 주제이다. 정치권에, 특히 집권세력에는 건드리고 싶지 않은 뜨거운 감자일 수 있다. 그럼에도 여러 사람들이 아쉬움을 드러내는 까닭은, 대통령과 같은 심정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에 필요한 재정 목표와 세입 방안이 문재인 정부에서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종종 여권에서 조세 저항을 이유로 제시한다. 과연 이는 시민들이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표현일까, 제발 공평하게 세금을 내자는 요구일까. 둘 다라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여기가 갈림길이다. 양자 사이에서 적당히 머무는 정부와, 시민의 조세정의 열망을 북돋으며 조세개혁에 온 힘을 쏟는 정부.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촛불시민이 만든 정부라면 그 시민을 믿어야 한다. 이제는 복지를 권리로 인식하고 나와 자식들이 복지국가에서 살기를 원하는 시민들이다. 복지로 되돌아온다면 세금을 더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다. 핀셋증세가 슈퍼리치를 향한 불편한 마음을 조금 달랠 수는 있겠으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엔 부족한 조치라는 사실도 아는 시민들이다. 

우선 대통령이 세금 담론을 진취적으로 주도하기 바란다. 앞으로는 부자증세, 서민증세의 이분법을 넘었으면 좋겠다. 보편증세에 대한 이해도 넓혀가야 한다. 공제 제도가 존재하기에 보편증세라고 모두가 세금을 내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보편증세 용어가 부담된다면 ‘누진증세’라 불러도 좋다. 누진구조에서는 보편증세도 자연스럽게 부자증세 성격을 지니게 된다. 


또한 세금을 더 내더라도 새 정부에서 복지로 돌아오는 몫이 훨씬 크므로 ‘복지증세’이기도 하다. 복지증세 담론을 활용하면 담뱃세에 포함된 개별소비세 몫을 과감히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이전해 논점을 ‘인하’에서 ‘사용처’로 전환하는 공세적 국정운영도 가능하다. ‘5년 내내 중산층과 서민에게는 증세가 없다’보다는 ‘시민들과 함께 누진증세, 복지증세로 대한민국 복지국가를 만들겠다’는 말이 촛불대통령에게 어울리지 않는가.

문재인표 조세 비전과 로드맵도 나와야 한다. 5개년 계획은 물론 두 번 집권할 포부로 10년 시간표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우리가 도달할 복지재정과 조세부담 수준이 명시되고, 소득세, 법인세는 물론 부동산세, 소비세까지 포괄하는 개혁 청사진이 담겨야 한다. 복지지출에서 분명한 확신을 주고 싶다면 복지목적세 방식으로 주요 세목의 세율을 인상하는 사회복지세 도입도 검토하자. 이래야 ‘대한민국에서도 세금정의가 바로 서겠구나’ 하는 기대가 시민 마음속에 싹틀 수 있다. 

세금에 대한 긍정적 이야기도 듣고 싶다. 역사적으로 세금은 착취의 상징이었지만 점차 공동체를 유지하는 필수재로 자리 잡아 왔다. 근래 복지 체험도 진행되므로 자신 있게 세금의 의미있는 사용을 부각시킬 만하다. 또한 더디고 부족하지만 과세체계 개선의 성과도 알려나가자. 주식양도차익, 금융종합소득, 임대소득, 종교인소득, 자영자소득 과세뿐만 아니라 지역가입자를 힘들게 했던 국민건강보험료 부과체계도 변화를 시작했다. 모두 시민들의 조세정의 요구가 이룬 결과이기도 하다. 이를 밑거름으로 삼아 더 힘차게 과세 틈새를 정비해 가자. 

앞으로 세금교육도 시작하고 세금문화도 바꿔가야 한다. 공교육 과정에 세금 주제를 비중있게 배치하자. 납세가 헌법적 의무이건만 세금에 대한 기본 교육이 빈약하다. 우리나라의 세금 실태는 어떻고 핵심 과제는 무엇인지, 세금에서 사회연대가 어떻게 구현되는지 등을 배우게 하자. 청소년 때부터 세금에 대한 전향적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이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탈세 문화에 익숙한 부모들에게도 뜨끔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위 제안들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 몇 달 세금 논란이 문재인 정부에 쓴 약이었길 바라며 꼽은 과제들이다. 

진정 시민들의 조세정의 열망을 믿고 나가는 담대한 세금정치를 보고 싶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도 계속 에너지를 얻으며 새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원문보기: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708082106005&code=990308&med_id=khan#csidxbc12ba4abdae74aa3a72505bd5bde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