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단일화 이후의 단일화

2012. 12. 3. 13:3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김영순 | 서울과기대 기초교육학부 교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나홀로 토론’이 진행되던 26일 밤, 친구와 카카오톡을 하게 됐다. 오십이 코앞인 친구가 발랄하게 말한다. “방송 진짜 쥑인다. 쟤네는 방송 참모도 없나봐.” “난 5분 보고 껐어.” “계속 봐! 실시간 댓글 보면서…진짜 웃겨!” 실시간 댓글에 들어가니 과연 가관이다. “이게 박근혜 토론 시나리온가요? 아카데미 각본상 받겠네.” “오늘 박근혜 토론(?) 후기: MB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러나 안철수 후보의 사퇴 직후인 지난 24일 이루어진 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와는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중앙 선데이’가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전화조사, 신뢰수준 95%, 오차범위 3.1%포인트)에는, ‘각 정책을 어느 후보가 잘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이 포함돼 있었다. 박 후보는 전체적으로 문 후보를 앞섰다. 경제성장에선 박근혜 53% 대 문재인 30.6%,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42.7% 대 문재인 41.1%, 복지는 박근혜 44.3% 대 문재인 40.5%, 통일외교분야는 박근혜 43.8% 대 문재인 41.9%였다.

여론조사 결과와 TV토론에 대한 반응은 왜 이리도 다른 것일까? 젊은 세대의 의견이 과대 대표되는 온라인 공간과 전 세대의 견해가 비교적 골고루 반영되는 오프라인 공간의 온도 차가 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또 단일화 직후의 위의 여론조사 결과는 정책수행능력 그 자체에 대한 판단이라기보다는 그저 후보에 대한 호감도를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특히 ‘토사종팽’이란 말을 남긴 채 형해화된 경제민주화 분야에서마저도 박 후보가 우세한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만 그뿐일까?

총선 이후 오랫동안 대선레이스엔 정책경쟁 실종 상태가 계속됐다. 10월 말까지도 각 캠프에서는 체계적인 공약집을 내놓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의 공약집과 ‘안철수의 약속’이 11월11일쯤에야 나왔다. 새누리당은 11월18일에야 ‘박근혜 후보 비전선포식’에서 ‘3개 분야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도 정책과는 무관하게 흘러갔다. 결선투표제가 있었더라면 두 후보가 정책으로 경쟁하고 유권자들의 1차 심판을 받아볼 수 있었으련만, 그렇지 못했다. 단일화 과정이라도 정책대안과 비전의 경쟁이 되었으면 좋았겠으나, 그렇지도 못했다. 11월3일 문 후보 측은 안 전 후보 측에 공동 국가비전을 만들기 위한 대화를 시작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안 전 후보 측은 10일까지 공약집을 발표하기로 한 만큼 협상을 하더라도 그 이후에 하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공약집이 나오고 나자 시간이 촉박해졌다. 후보 단일화 논의는 가치와 정책의 단일화가 아니라, 게임규칙을 정하는 샅바 싸움으로 축소돼 버렸다.

결국 박 후보의 정책수행 능력에 대한 납득하기 어려운 높은 지지는 장기간 정책경쟁 실종 사태로 지속된 선거판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야권도 이에 명백히 책임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향후 야권이 취해야 할 태도도 분명해 보인다. 민주통합당은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합의했던 안 전 후보와의 ‘공동의 가치와 정책연대’를 완성해야 한다. 안 전 후보가 내세웠던 훌륭한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하여 후보 단일화가 정책 단일화가 되도록 해야 한다. 단일화 이후의 단일화가 아직 남아 있는 셈이다. 이럴 때 안 전 후보도 명분을 가지고 문 후보의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안 전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안 전 후보는 정치쇄신을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안철수 현상’의 진원이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시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이었음을 감안할 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쇄신에 대한 요구가 결국은 민생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구였음을 안 전 후보 진영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박근혜 후보도 가장 높은 지지율을 향유하는 후보답게 적극적 정책 경쟁에 나서야 할 것이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360억원의 혈세가 선거보조금으로 지급됐다는 뉴스를 들으며, 모든 후보들이 구체적이고 체계화된 공약을 제시하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