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증세하면 대선 필패? '복지 선거'로 가야 승산"
2012. 12. 3. 13:29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증세하면 대선 필패? '복지 선거'로 가야 승산"
[오마이공약-대선쟁점인터뷰⑥]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정책실장
▲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 |
ⓒ 조재현 |
"우리가 아무리 증세 얘기하면 뭐해요. 안철수가 증세하자, '건강보험 만 천 원씩만 더 내자'고 했다면 폭발력이 엄청났을 거예요. <안철수의 생각>대로만 했다면 점진이 아닌 도약 방식의 보편 복지도 가능했을 텐데."
지난 23일 오후 홍대 앞 사무실에서 만난 오건호(48)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른바 '복지 증세'에 반대하는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생각>과 <약속>(공약집 '안철수의 약속')이 거꾸로 간다며 "사기죄로 고소해야 한다"는 뼈있는 농담도 서슴지 않았다.
공교롭게 이날 저녁 안철수 후보는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대선 후보에서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오 실장 역시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오 실장은 이날 밤 10시 추가 인터뷰에서 "<약속>은 캠프 전문가들이 만든 공동 작품이고 증세 반대도 캠프 내 중론에 따라 한 것"이라고 선을 긋고 "(안 후보가) 다시 <생각>으로 돌아가 보편 증세나 '건강보험 하나로' 등을 얘기한다면 재원 문제로 발목 잡힌 복지 논쟁에 다시 물꼬가 트고 복지국가 건설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꺼져 가던 '보편 복지 논쟁', 양자 대결에선 불붙나
오건호 실장은 '야권 단일후보'로 확정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 대해서도 "지금까지는 중간 복지를 내세운 안철수 후보를 상대하느라 복지 정책 역시 수세적이고 소극적이었던 것을 인정한다"면서 "이제 단일후보가 됐으니 복지 소신에 따라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하고 필요한 재원은 국민에게 요청하라"고 당부했다.
"지난 총선처럼 복지 정책을 피하거나 재원 방안이 명확하지 않으면 박근혜 후보와 기획재정부에 공격을 받을 것이다. 오히려 적극적인 복지 공약을 내서 박근혜 후보의 빈약한 복지를 공격하고 복지국가 후보는 문재인이다, 박근혜는 복지국가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차별화해야 한다."
과연 박근혜-문재인 양자 대결에선 지금까지 실종됐던 복지 논쟁이 되살아날 수 있을까? 문재인 후보가 공약한 '건강보험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 원조인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내만복)' 공동위원장을 맡아 '보편 복지' 논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오건호 실장을 만나 그 해답을 들어봤다. 2001년 민주노총 정책부장을 시작으로 심상정 의원 보좌관, 사회공공연구소 등을 거친 오 실장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복지·재정통'이다.
- 지난해까지 '보편 복지' 논쟁이 뜨거워서 대선에서도 큰 쟁점이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까 복지 논의가 자취를 감췄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대선을 20여 일 앞둔 지금 시점에선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쟁점이어야 하는데 단일화 지형이 두 의제를 잡아먹었다. 그나마 경제민주화는 대선 국면까지는 왔지만, 복지국가는 이미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실종됐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만 해도 무상 급식을 둘러싼 '복지 선거'였다.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 싸움에선 보편 복지가 이겼지만 '복지 재원 확충'이라는 2라운드에서 발목이 잡혔다. 아직도 증세할 거냐 말거냐는 아주 원론적인 얘기만 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도 '부자감세 철회' 얘기만 하다 이제 겨우 '증세'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이 제시한 조세개정안에 따르면 부자 감세 철회해 봐야 연간 5조 원밖에 안 된다. 재정지출이나 조세 감면을 낮추는 것보다 구체적인 재정 개혁과 증세 논의가 필요하다. 4월 총선 당시 '보편적 복지국가' 정도로 커진 복지 민심에 맞춰 민주당에서도 적극적인 복지공약을 냈지만, 재원 방안이 없다보니 기획재정부에서 검증 공세를 펼친 것이다."
'복지체험' 앱에 담긴 민심은 "복지 증세 찬성"
▲ 복지체험 앱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 |
ⓒ 내복만 |
"정치권에만 요구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은 증세는 선거에서 독배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그들의 인식을 바꾸는 건 시민사회의 몫이다. 복지 체험 앱을 만든 것도 시민들 스스로 세금 낼 의지가 있고 조세 저항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걸 정치권에 보여주자는 거였다."
그렇게 만든 '내만복' 앱이 요즘 뒤늦게 뜨고 있다. 오 실장이 지난 14일 김미화, 우석훈 등이 진행하는 딴지일보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꼽사리다>(나꼽살)에 출연한 뒤다. 지난 1주일 사이 애플과 구글 앱스토어에 달린 댓글만 400여 개에 이른다. 반응도 무척 호의적이다. 만 원 더 내고 이런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보편 증세'에 찬성하겠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실제 지난 10월 초 <경향신문> 대선 여론조사에서 '복지 증세'에 찬성하는 의견이 55.2%로 반대 의견(44.3%)보다 10% 포인트 이상 높게 나타났다. 20, 30대 젊은 세대나 야권 지지자일수록 찬성 의견이 높았다. 오건호 실장은 복지를 저소득·소외계층을 위한 '선별 복지'로만 여겨오던 많은 중산층들이 '무상급식'이나 '무상보육'을 계기로 '보편복지' 혜택을 맛봤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사람들에겐 '증세는 착취'라는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과 자식 세대가 복지국가에 살게하려면 증세가 필요하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함께 가지고 있다.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에 못 박으려는 건 박근혜 후보다. 지금은 그 기대 쪽을 더 부추겨야 한다. '증세 정치'는 역사적인 사명이다."
"복지국가 성공은 '보편 증세' 지지하는 복지 세력에 달려"
▲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이 23일 오후 홍대 앞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 |
ⓒ 조재현 |
내만복은 '사회복지세' 신설, 건강보험료 인상 등과 같은 '보편 증세'를 제안했다.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이나 법인세율 인상 같은 '부자 증세'만으로는 복지 증세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 것일까?
"보통 부자 증세만 갖고 안 되니까 보편 증세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보편 증세를 주장하는 이유는 복지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주체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가 의료봉사 나가서 약을 공짜로 줬더니 아이들이 약으로 공기놀이를 했지만 100원 주고 파니까 약으로 받아들이더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다. 복지가 지속가능하려면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들부터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오건호 실장은 최근 펴낸 <나도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다>(레디앙)에서도 '증세 정치'를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복지국가가 되는데 필요한 건 경제력이 아니라 정치력, 바로 증세 정치를 이끌 '복지 세력'이라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만들 세력이 필요한데 우리나라에선 노조와 진보정당처럼 조직화된 '경성 권력 자원'의 힘이 약하다. 대신 쇠고기 촛불,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희망버스,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내만복'처럼 의제별로 구성된 풀뿌리 네트워크 같은 '연성 권력 자원'이 필요하다. 보편 증세가 가능하려면 이들 연성 권력 자원들의 힘을 모으는 활동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보편 증세'를 지지하는 풀뿌리 조직은커녕 정치권의 '증세 정치'마저 실종된 이번 대선에서 '복지 선거'는 불가능한 것일까?
"정치권에서는 국민들을 핑계로 증세를 꺼내지 않고 있다. 대선이 20여 일 밖에 안 남았지만 복지 공약에 대한 복지 재정 소요 규모가 얼마인지도 제대로 안 나와 있다. 문재인 후보 쪽은 숫자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복지 요구액과 충당 가능한 금액 사이에 괴리가 있다 보니 국민들에게 자신 있게 내놓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래서 가능하면 늦게 내려 한다는 의구심까지 들 정도다."
- 문-안 단일화 이후 복지 정책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보는가.
"복지 공약이 단일화 때문에 하향 조정될 가능성은 낮다. 복지는 급여 확대와 강도 문제여서 로드맵은 달라질 수 있어도 급여 수준 자체를 낮추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후보가 제시한 복지 공약 수준과 재원 규모를 일치시키는 것인데 안철수 쪽 안을 받아들이면 강력한 증세가 어려울 수도 있다."
실제 두 후보는 지난 21일 TV토론에서도 일종의 '보편 증세'에 해당하는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을 놓고도 상반된 입장을 나타냈다. 문 후보는 가구당 월 5천 원 정도 추가 부담해 2017년까지 본인부담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를 도입하자는 입장인 반면 안 후보는 보험료 인상에 반대하면서 중증 질환, 입원환자 급여항목을 확대하자는 입장을 내놨다.
"복지 민심 강해... '증세 필패' 안 통할 것"
▲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 |
ⓒ 조재현 |
오건호 실장은 복지국가가 되는 과정을 증세 없이 지출 개혁만으론 일단 복지 체험에서 출발하는 '점진 경로'와 부자증세, 보편증세 등을 통해 집권 초기부터 복지를 대폭 확장하자는 '도약 경로'를 제시했다. 오 실장은 '도약 경로'쪽에 무게를 실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박근혜 후보는 '점진 경로'에 해당하고 문재인 후보 역시 '도약 경로'를 장담할 수 없다.
"작년 말에는 '도약 경로'가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복지 민심의 역동성만 보면 다른 나라 20, 30년 걸린 것도 우리는 2, 3년에 안에 끝낼 수 있다고 봤는데. 지금은 좌절 상태다."
하지만 오 실장은 복지 공약 낮추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증세를 공론화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증세 물꼬는 틔었다. 문재인 후보도 '부자 증세'를 얘기했고 건강보험료도 올리자고 했다. 복지 민심이 있기 때문에 조세 저항에 방점을 두기보다 적극적인 증세를 추진해도 '증세 필패'라는 통념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 앞에 자신의 적극성과 의지를 보이는 방향으로 재정 확충도 가능하다. 우리가 제안한 사회복지세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워도 법인세 추가 인상은 필요하다. 복지 민심을 믿고 전향적인 복지 재정 공약으로 차별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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