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25. 16:16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논쟁] 의료비 부담 완화, 해법은 어디에?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연간 의료비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 전면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다. 여기엔 중증질환, 선택진료비, 간병 등 건강보험의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동시 전환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국가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책임짐으로써 의료비 부담으로 인한 가계 파탄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제도의 도입을 지지하는 쪽 주장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 제도의 도입을 지지하면서도 현실적인 재정여건을 고려했을 때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부터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반론을 내놓고 있다. 양쪽의 견해를 들어봤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본인부담상한제 전면 도입 서둘러야
본인부담상한제 전면 실시하면
민간의보 부담 덜어 가계에 도움
유럽 복지국가들에서 효과 입증
많은 사람들의 걱정거리 중에 빠지지 않는 게 의료비 불안이다.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있지만 전체 의료비 중 약 60%만을 보장해 나머지가 본인부담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민간의료보험을 찾게 되는데, 현재 가구당 평균 3~4개 보험상품에 가입하고, 보험료도 월평균 약 20만원으로 국민건강보험료 가구당 약 8만원의 3배에 달한다. 미래 병원비 불안에 대응하는 데 현재 가계비 지출이 너무 크다.
의료비 본인부담 상한제를 주목하자. 이는 한 해 환자 한 사람이 내야 하는 본인부담액의 상한을 정하고 그 금액을 넘는 의료비는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다. 한 해에 의료비가 100만원을 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서 의료비 불안은 사실상 해소된다고 볼 수 있다. 유럽 복지국가가 그렇다. 프랑스·스웨덴·네덜란드·호주 등은 연간 상한액이 20만~50만원이고 독일은 연간 총소득의 2%(장기 만성질환은 1%)이다. 아시아에선 대만이 연간 160만원 수준의 본인부담상한제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명목상으론 본인부담 상한제가 있다. 2004년 시작되어 현재 소득수준에 따라 상한액이 200만~400만원이다. 그런데 심각한 짝퉁이다. 본인부담 상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비급여 진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부담 상한제가 존재함에도 국민들의 병원비 불안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비 국가 책임을 4대 중증질환에만 한정하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공약도 짝퉁 해결책이긴 마찬가지다. 전체 500만원이 넘는 고액의료비 가운데 4대 중증질환 환자가 15%에 불과해 나머지 85%는 방치된다.
이와 비교해 시민단체와 야권 후보들이 주창하는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는 비급여 진료를 포함한 전체 의료비를 기준으로 상한액을 100만원으로 정하자는 제안이다. 이를 위해선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대폭 늘어나야 하고 보험료 인상도 필요하다. 지금 자신이 내는 국민건강보험료의 30%, 평균 금액으로 1인당 약 1만원, 가구당 약 3만원을 더 내면 여기에 사용자와 정부의 법적 기여금이 더해져 ‘100만원 상한제’가 가능해진다. 현재 불합리한 국민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해 얼마라도 재원을 마련하면 보험료 인상액은 더 작아질 수 있다. 월평균 20만원을 내고 있는 민간의료보험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총 가계지출도 절약된다.
본인부담금이 줄어들면 의료지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만약 지금까지 의료비 부담 때문에 병원을 찾지 못했던 사람들의 의료 이용이라면 이는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일부 생길 수 있는 과지출의 경우는 제도 보완으로 막을 수 있다. 우선 ‘100만원 상한제’가 실시되면 의료비 낭비의 산실인 비급여 진료가 공적 심사 대상인 급여로 전환되어 기존 무분별한 과잉진료가 줄어들 수 있다. 병·의원들이 환자한테 전액을 직접 받던 비급여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라는 공적 기구의 심사를 받은 뒤 국민건강보험에서 수령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질환별 정액제’인 포괄수가제를 확대해 나가면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진료 증가 개연성도 제어할 수 있다. 그래서 본인부담 상한제는 이미 선진 복지국가에서도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더 미룰 이유가 없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비급여 항목 급여화 전략 먼저 고민해야
비급여 진료 포함 본인부담상한제
곧장 실시하면 재정부담 감당 못해
비급여 항목부터 줄이는 게 현실적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와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의 동시 추진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비급여의 급여화란 간병비, 선택진료비 등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항목을 건강보험의 급여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와 결합한 100만원 상한제는 ‘급여’ ‘비급여’ 구분 없이 환자가 연간 100만원까지만 의료비를 내는 방식이다. 정말 꿈에 그리는 세상이 된다.
의료보장은 결국 의료 이용의 금전적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본인부담 상한제는 ‘참 좋은 제도’다. 보장성 확대 정책의 꽃이다. 현재 상한액은 소득수준에 따라 200만~40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세밀히 살펴보면 맹점이 있다. ‘법정 본인부담’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비급여 항목은 상한액에 포함되지 않는다. 비급여 항목이 큰 우리의 경우 실효성이 크지 않다. ‘비급여의 급여화’가 더 급한 이유다.
우리와 같이 사회보험 방식을 쓰고 있는 독일과 일본도 본인부담 상한제도를 갖고 있다. 독일은 연간 본인부담이 2%를 넘어서면 약제비 등의 본인부담이 면제되고 치과 보철과 의치에 대한 비용분담액이 경감된다. 일본은 동일 의료기관에서의 월간 본인부담액이 일정 금액(소득에 따라 50만~200만원)을 초과하면 보험조합에서 초과분을 지급하는 ‘고액요양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월간 기준이다 보니 우리보다 상한 금액이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고액요양비’ 제도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비급여의 급여화’와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의 동시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울 정도로 건강보험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커졌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꿈은 당장의 현실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다른 모든 복지지출을 줄이고 이 제도에만 전념한다는 비정상적인 조처를 취해도 차기 정부 5년 안에는 이루기 힘들다. 연간 10조원이 넘는 비급여를 급여화하고 연간 상한액을 100만원으로 낮추면, 이를 위해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연간 8조원은 될 것이다. 5년이면 40조원이다. 건강보험과 의료급여를 위해서 국가와 공단이 매년 지불하고 있는 41조원 외에 추가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규모가 그렇다는 것이다. 의지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이것으로 끝난다면 그런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다. 비급여의 급여화에 따라 ‘억제됐던 수요가 현재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간병 본인부담을 포함해서 연간 의료비가 100만원이라면, 가족·친지의 간병 대신 건강보험에 간병서비스를 요구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비급여 항목이 급여화된다면 본인부담 상한액의 크기는 조금 높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급여화의 구체적 전략이다. 예를 들어 간병을 급여화하되 초기에는 본인부담률을 80~90% 정도로 높게 정한 다음 단계적으로 낮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본인부담 상한액을 현재보다 높게 하거나, 이러한 항목의 본인부담은 일정 비율만 상한액으로 포함하든지 해야 한다. 본인부담 상한액의 크기도 소득에 따라, 의료이용액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 일본 건강보험에서는 본인부담액이 늘면 고액요양비의 상한액도 늘어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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