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국민연금공단이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싶다

2016. 11. 16. 22:3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정유라 의혹 관련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 다시 살펴봐야


검찰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9∼10월께 독일에 있는 최순실·정유라 모녀 소유의 코레(Core) 스포츠(현 비덱스포츠)와 10개월 컨설팅 계약을 맺고 35억 원을 보냈다. 이 회사는 별다른 컨설팅 내역이 전무하며, 35억 원은 정유라씨의 말인 '비타나 브이(V)'구입에 쓰였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삼성의 '35억 송금'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문제와도 연결이 된다. 논란이 많았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에 대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공단이 주주총회에서 예상 밖으로 찬성표를 던졌고, 9월 1일자로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에 흡수합병된 것이다. 삼성의 35억 송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마무리된 9월~10월께에 이루어진 것을 고려했을 때, 최순실-삼성-국민연금 간 뒷거래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삼성이 승마협회에 중장기적으로 180억 원을 지원해 정유라씨의 로드맵을 마련하려던 계획도 드러났다. 당시 국민연금공단이 내린 '합병안 찬성' 결정의 문제점에 대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책위원인 홍순탁 회계사의 글을 싣는다.[편집자말]




▲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에서 한 시민이 국민연금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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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최순실' 키워드를 넣으면 과거에 의문스러운 일들이 해석된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에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한 것도 합리적으로는 설명이 잘되지 않던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삼성그룹이 최순실씨 모녀를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지원한 것이 밝혀지면서 의혹이 생기고 있습니다. 즉, 비합리적인 결정과 비상식적인 지원이 연계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입니다(관련기사: 삼성, 최순실 통해 '이재용 승계' 보장 받았나).  

근거 없는 의혹은 실체 규명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순실-삼성-국민연금의 의혹이 나오는 것은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삼성물산 합병에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한 것은 결정의 결과도 납득이 되지 않지만 절차적인 측면에서도 도무지 국민 상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의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그리고 다른 사례와 일관되게 진행되었다면 이런 의혹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국민의 소중한 노후 자산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충분하게 검토하고 결정했더라면 생기지 않을 의혹이기에, 이러한 의혹은 국민연금공단이 자초한 측면이 큽니다. 


이재용에게 삼성물산 합병이 중요했던 이유

많은 국민들이 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배정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에버랜드 이사회는 기존 주주인 삼성계열사들이 포기한 전환사채를 이재용에게 헐값으로 배정했고, 이재용은 이 전환사채를 통해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됩니다. 


삼성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서서히 성장한 에버랜드는 2013년 12월,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를 양수합니다. 그 이후 제일모직은 삼성SDI에 합병되어 자연스럽게 없어지고 에버랜드가 회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변경합니다. 구 삼성물산과의 합병과정에 등장하는 제일모직은 상속과정의 출발점이었던 에버랜드였던 것입니다. 당연히 이재용 일가의 지분율이 높습니다. 2015년 상반기 합병시점에서 이재용, 이건희, 이부진, 이서현 등 4명이 보유한 제일모직 지분은 42% 수준입니다.  

반면, 삼성전자, 삼성SDS 등 삼성그룹의 핵심회사의 지분을 12조 원 이상 보유하고 있어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구 삼성물산에 대한 이재용 일가의 지분은 극히 적었습니다.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은 지분이 아예 없었고 이건희만 1.41%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을 제일모직에게 유리한 비율로 합병한다면 이재용 일가는 합병 후 회사에 대해서도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실질적인 지주회사의 지배권을 확보하게 되니 삼성그룹의 경영권 상속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에버랜드가 구 제일모직을 흡수하여 덩치를 키우고 다시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구 삼성물산을 흡수한 것이 전체의 그림입니다. 20년간 진행된 그룹 경영권 승계를 거의 완성시키는 작업이었기에 삼성물산 합병은 이재용에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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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버랜드 결합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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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일가가 42% 넘게 보유한 제일모직과 1% 남짓 밖에 보유하지 못한 구 삼성물산을 1대1의 비율로 합병하게 되면  합병 후 회사에 대한 이재용 일가의 지분율은 20%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1대 0.35라는 제일모직에 매우 유리한 비율로 합병했기 때문에 합병 회사의 이재용 일가의 지분율은 30%가 넘었습니다. 합병비율에 따라 지분율 10%가 변동되는 것입니다. 합병 후 회사(새로운 삼성물산)의 재상장후 시가총액이 30조 원을 넘었습니다. 30조 원의 10%면 3조 원입니다. 합병비율 결정은 3조 원의 이익이 움직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결정입니다. 

내부 논의만으로 독단적 결정... 비상식적 행태

국민연금공단 입장에서도 이 합병 건은 매우 중요한 안건이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합병과 같이 회사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전체 주주의 1/3 이상, 참석한 주주의 2/3가 찬성하여야 승인이 됩니다. 

국민연금공단이 합병안을 논의할 시점에 이미 외국인 지분 27%가 반대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상태였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이 보유한 11%를 합하면 38%가 되어, 전체 주주가 출석한다고 해도 무조건 부결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투표 후 표결결과를 보면 국민연금이 찬성했기 때문에 간신히 찬성표결이 출석주주의 2/3를 넘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지침에 보면 기본적으로 국민연금 내부에 설치되는 투자위원회의 심의·의결에 따라 결정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결정하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 외부 전문기관의 자문의견을 구할 수 있고, 찬성 또는 반대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외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이 자문의견을 구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명확한 반대의견을 냅니다. 이뿐만 아니라 ISS, 글래드루이스, 서스틴베스트 등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여러 자문기관도 모두 반대의견을 냅니다. 외부 자문기관의 의견이 반대인데, 내부에서는 찬성 의견이 우세하다면 이것이 찬성 또는 반대하기 어려운 사안 아닐까요?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고 그 결정의 금액도 매우 크며 국민연금공단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상식으로 보면 이 사안이야말로 찬성 또는 반대가 어려우니 외부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했어야 마땅한 사안입니다. 그런데, 이 절차를 생략하고 내부 논의만으로 독단적으로 찬성으로 결정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SK C&G와 SK도 합병을 추진했습니다. 당시 국민연금은 SK 합병 건을 외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의뢰했고, 전문위원회에서 반대 의견이 나와 주주총회에서 반대 투표를 했습니다. SK 합병 투표가 2015년 6월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같은 시기라고 볼 수 있는데, SK 건은 외부 전문위원회에 검토를 의뢰하고 삼성 건은 의뢰하지 않는 일관되지 않은 행태를 보인 겁니다.  

이와 관련하여 실제 찬성 결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2015년 국정감사에 출석하여 주식가치 평가 등 여러 가지 사항을 충분히 검토했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정황을 보면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졌다는 말을 믿기 어렵습니다. 홍완성 전 본부장이 말하는 '충분히'와 상식적인 '충분히'가 다른 것 같습니다. 

회의록 공개해서 의혹 해명해야





  검찰 등에 따르면 특별수사본부는 최순실 씨가 딸 정유라 씨와 독일에 설립한 '비덱스포츠'에 280만 유로의 삼성 측 자금이 넘어간 흔적을 발견했다. 삼성그룹이 최씨가 독일에 세운 회사에 280만 유로(약 35억 원)를 보낸 정황이 발견됐으나 대한승마협회는 "우리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사진은 2014년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 출전해 경기를 펼치는 정유라 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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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찬성 결정을 한 회의록을 공개하여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졌는지를 밝히면 됩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검토가 이루어졌고 그 근거가 합리적이라면 최순실 연계 의혹은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우선, 외부 전문위원회 검토를 요청하는 것과 내부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 중 어떤 것이 합리적일지에 대해 충분히 논의했는지가 확인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근거에 의해 전문위원회 검토절차를 생략한 것인지, 두 방안의 장단점을 비교하여 결정을 한 것인지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 당시 전문위원회는 국민연금공단의 요청이 없음에도 별도 소집을 하여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검토를 의뢰하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시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문위원회의 검토절차를 생략해야 할 불가피한 사유가 없었다면 졸속 검토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 결정에 참여한 위원들의 전문성이 충분했는지, 외부 전문기관의 자문내용을 충분히 검토하고 결론을 내렸는지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식투자와 별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위원으로 들어와서 내용 파악을 못 하여 질문도 제대로 못 한 채 찬성한 것은 아닌지 확인되어야 합니다. 

외부 전문기관들은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적정 가치를 분석한 결과, 구 삼성물산 주주입장에서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구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삼성SDS 등의 주식을, 제일모직은 삼성생명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 회사의 적정 가치는 영업가치와 보유주식의 가치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M&A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분석틀로 그 합리성이 인정되는 방식입니다. 그 검토보고서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의견을 뒤집을 만한 구체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렸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또한, 합병과 관련된 다양한 시나리오 분석을 했는지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 합병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서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한번 부결되었다고 하더라도 삼성 입장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합병비율을 좀 수정해서라도 재차 합병 시도를 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합병 1차 부결 시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분석도 하지 않은 채 찬성을 결정했다면 역시 졸속 결정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연계한 분석이 충분히 이루어졌는지도 의문이 드는 사항입니다. 두 회사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지배주주는 전체 주주의 이익이 아니라 지배주주만을 위한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지배주주 일가에 유리한 합병비율이 결정될 경우 일반주주의 부가 지배주주에 이전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검토가 이루어졌는지도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 당시 '구 삼성물산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제일모직에서 만회를 할 수 있다'라는 의견이 있었다는 보도도 있는데, 실제로 그런 근거 없는 주장이 있었는지 확인되어야 합니다. 합병이 논의되던 당시 국민연금공단은 두 주식을 각각 1조 원 정도씩 가지고 있었는데, 지분율로 보면 구 삼성물산을 대략 10%, 제일모직을 대략 5% 정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양쪽 모두에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한쪽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다른 쪽에서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은 비전문가적인 접근입니다. 지분율이 높은 쪽에서 본 손해를 지분율이 낮은 쪽에서 벌충할 수가 없습니다. 지분액수가 아니라 지분율이 중요합니다. 1조 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10%, 5%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분율이 높은 구 삼성물산에 유리한 합병비율이 나와야 국민연금한테 유리한 것인데, 이건 투자업계에서는 상식입니다. 국민의 막대한 노후자산을 관리하는 국민연금공단이 기본을 망각한 검토를 했는지 확인해봐야 합니다.  

또한, 그 당시 보도를 보면 '합병 시 시너지가 엄청나게 크다, 그러니 합병에 찬성하는 것이 이득이다' 이런 식의 의견이 국민연금에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는데 합병을 1대 0.35로 하든 1대 0.5로 하든 합병 시너지는 동일합니다. 합병 비율을 좀 올린다고 합병 시너지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합병 비율을 구 삼성물산에 유리하게 수정하게 했다면 국민연금의 지분율이 올라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노후자산이 그만큼 늘어나게 됩니다. 언론에 보도된 것과 같은 근거 없는 주장이 있었는지 그러한 주장이 찬성 표결에 영향을 주었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최순실-삼성-국민연금 의혹을 푸는 열쇠는 국민연금공단이 가지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검토한 내용이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면 의혹은 해소될 것입니다. 국민들은 궁금합니다. 내 노후자산을 관리하는 국민연금공단이 선량한 관리자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 건지 아니면 삼성그룹의 경영권 상속을 위해 배임을 하였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국민들은 지난 여름에 국민연금공단이 한 일이 너무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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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현관에서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박상진 사장,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 씨에 대해 제3자 뇌물공여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 뇌물수수죄 등으로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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