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S] 국민연금 해부 - ‘기금운용본부’ 전횡 막아라

2016. 12. 11. 17:05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국민연금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지난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삼성 오너일가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합병에 찬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머니S>는 국민연금의 민낯을 살펴보고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우리 국민이 낸 소중한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곳이다. 이곳이 독립적이고 투명하며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우리 국민의 노후도 편안해진다. 우리가 국민연금공단에 주목하는 이유다. <편집자주>




국민연금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삼성그룹 로비를 받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지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서다. 국민연금은 자율적인 결정을 통해 국민이 낸 돈을 성실히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나의 노후를 어느 정도 책임져야 할 국민연금의 불합리한 경영상태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국민연금기금실무평가위원회,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을 만나 공단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과 연금제도 개혁의 방법론을 들어봤다.

◆기금위 영향력 커… 공사화 ‘시기상조’

지극히 비상식적. 오 위원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두고 정의한 문장이다. 그는 이번 결정을 두고 절차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사회적인 이목이 집중되는 사안의 경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산하에 구성한 외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에 결정을 요청했지만 이번엔 그 관행이 깨졌습니다. 또 공단이 삼성물산의 지분을 11% 이상을 보유한 상태여서 합병에 찬성하면 공단이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공단의 재산은 국민의 재산입니다. 국민의 노후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공단은 합병에 반대해야 했지만 이번 결정처럼 지극히 비상식적인 결과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오 위원장은 공단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공단 거버넌스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공단의 핵심본부다. 이곳에서는 국민의 돈 512조원의 투자처를 결정한다. 당연히 500조원을 주무르는 운용본부장의 힘이 막강하다. 공단 이사장조차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다. 여기서 불균형이 발생한다.

“국민연금공단은 크게 제도영역과 기금영역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기금영역의 힘이 너무 셉니다. 최광 전 이사장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의 갈등에서 드러났듯 공단 이사장이 기금영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기금운용본부장은 각 부처 장관, 청와대 측과 직접 만나 거래합니다. 상대적으로 제도영역의 힘이 너무 약합니다.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거버넌스 자체가 확립되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오 위원장은 기금운용본부 내 의사결정권 자체의 문제도 크다고 지적한다. 보통 기금운용에 대한 전략적 의사결정은 가입자대표까지 참여하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한다. 반면 실제 종목 선택, 의결권 행사 등 전술적 의사결정은 국민연금본부 안에 있는 기금운용본부가 수행한다. 본부에서 의결권 행사를 검토할 때 기본적으로는 기금운용본부 내부 자체 기구인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되 결정하기 어려운 부분은 의결권 전문위에 부의해 결정한다. 하지만 이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을 보면 사실상 기금운용위가 모든 권한을 쥐고 흔들었다. 전문위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이 구조를 깨기 위한 움직임도 있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 찬성과정에서 드러난 국민연금의 불투명한 의사결정을 막기 위해 전문위는 지난해 9명의 전문위원 중 3명 이상이 요청하면 의결권 행사안건을 전문위에 의무회부하는 내용의 제도개선안을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1년째 묵묵부답이다. 제도를 고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제가 국민연금 기금실무평가위원회에 5~6년가량 몸담고 있었지만 기금운용위가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자산을 운용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라 하지만 실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금운용위가 결정하는 자산군별 지분 배정 과정에는 투자위험률을 정하는 산식, 목표수익률을 정하는 산식이 있습니다. 이 기계치를 통해 자산군별 위험한도를 정하고 그 가이드라인 내에서 전략적 비중이 도출됩니다. 전략적 심의를 하기보다는 사실상 기계만 돌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동안 여러차례 거론된 ‘기금운용본부 공사화’에 대해서도 그는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공사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이해합니다. 과거에 비해 기금 사이즈가 많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금운용본부가 독립했을 때 과연 정치적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살펴보면 의문이 커집니다. 또 기금운용본부가 독립하면 복지부 소관이 아닌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소관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연금가입자의 목소리를 크게 반영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금공사가 되면 이런 문제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봅니다. 장기적으로는 고려할 수 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라 생각되는 이유입니다.” 

◆수급불균형 문제, 제도보완으로 해결해야 

우리는 매달 급여에서 9%에 달하는 국민연금을 납부한다. 급여가 200만원일 경우 국민연금 보험료는 월 9만원(절반은 회사가 부담)에 달한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국민이 국민연금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불신이 심하다. 국민연금이 지금과 같은 수급체계를 유지했을 때 2060년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는 수년 전부터 제기됐다. 최근 불거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논란은 국민의 공단 불신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지난 9월 발표된 연기금 소비자만족도 조사에서 2년 연속 꼴찌에 머물렀다. 

오 위원장은 그동안 자신의 저서 <내가 만드는 공적연금>과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의 수급불균형체계를 해결하려면 제도 자체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이면 연금 소진은 불가피한 실정입니다. 정부는 기금운용이나 출산장려 등 외적인 요소에서 이를 해결하려 하지만 그보다는 제도 자체에서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좋습니다. 장기적으로 보험료의 점진적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국민의 저항이 심할 겁니다. 따라서 공적연금을 강화하려면 결국 기초연금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 위원장은 기초연금을 올리는 만큼 국민연금을 낮출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기초연금 급여율을 현행 10%에서 20%로 인상하고(40만원), 국민연금 급여율은 현행 40%에서 30%로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것.

“이 유형은 기초연금의 급여율을 올리고 국민연금의 급여율을 낮춰 우리나라의 공적연금체계를 기초연금 중심으로 재편하는 겁니다. 기초연금의 급여율 인상으로 소득재분배 기능이 강화돼 국민연금에서 균등급여의 비중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또 국민연금의 급여율이 낮아지는 만큼 보험료율의 인상 폭이 작아져 장기적으로 다른 유형에 비해 기금규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는 사적연금이지만 법정제도인 퇴직연금이 커가는 상황에서 기초연금·국민연금·전환연금(퇴직연금을 공적연금으로 전환)의 3원체계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퇴직연금은 사적연금이지만 제도의 성격은 공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비용도 국민연금과 비슷한 비율인 월급의 8.3%를 매달 냅니다. 이것을 제2의 공공연금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급여율 효과가 20%가량 됩니다. 20%의 급여율을 가진 퇴직연금이 공적연금으로 전환돼 3원체계가 되면 연금체계가 보다 두터워질 수 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국민연금은 우리의 노후를 함께할 동반자임에 틀림없다. 국민연금공단은 한시라도 빨리 의혹을 털고 원래의 목적인 ‘복지’에 집중해야 한다. 오 위원장이 외치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를 넘어 국민과 정부가 함께 만드는 복지국가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