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대통령을 허위사실 공표죄로 고발한 이유

2016. 11. 16. 22:21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_ 오건호 | 내가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국정 사유화로 퇴진 압박에 직면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과정은 정당했을까? 나는 2013년 9월 복지단체 동료들과 함께 대통령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기초연금 공약을 유권자에게 사실과 다르게 알리고 당선되었다는 ‘허위사실 공표’가 고발의 이유였다.

                     

‘기초연금 20만원’은 박근혜 후보의 대표적 복지공약이었다. 야당도 내걸었기에 순조롭게 추진되리라던 기초연금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부터 파동을 겪었다. 인수위원회가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동해 기초연금액을 깎는 방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당선자가 인수위원회 국정과제 토론회에 직접 나와 자신의 공약을 상세히 설명했다. ‘국민연금 미가입자에겐 기초연금을 20만원 전액 지급하고, 국민연금 가입자는 국민연금 급여 안에 있는 균등 몫과 기초연금을 합해 20만원을 만들어 주겠다’는 복잡한 내용으로, 결국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에겐 기초연금을 감액 지급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이후 국민행복연금위원회가 발족했지만 공약 위반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자 공약을 설계했다고 알려진 안종범 당시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이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공약을 어긴 게 아니라 애초 공약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그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공약집에 정확하게 문구가 나오고, 대통령이 후보 시절 TV토론을 할 때도 ‘통합해서 연계한다’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국민연금과 통합·연계해서 기초연금 지급 금액을 정하기로 한 건 공약을 만들 때부터 전제된 거다. 공약집에도 정확하게 문구가 나오고, 대통령이 (후보로) 텔레비전 토론할 때도 말했다”고 거듭 역설했다.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애초 기초연금 공약이 ‘국민연금과의 연계’였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새누리당 공약 소요재정 자료를 보면 20만원을 지급하기엔 크게 부족한 금액이 적혀 있다. 선거 직전에 홈페이지에 올라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약의 실체를 검증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공약집을 보자. “현행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화하고 국민연금과 통합 운영”한다는 문구가 존재한다. 여기서 ‘통합 운영’의 의미가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한 기초연금액 삭감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박근혜 후보의 TV토론 발언도 보자. “(이전부터) 기초노령연금을 두 배 정도 올려야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런 정도가 아니라, 기초노령연금이 아니라, 그것을 국민연금 체제에 아주 포함을 시켜서 그렇게 되면 더, 또, 여러 가지 비용도 줄일 수 있고….” 시청자들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 퍼즐을 맞춰보니 기초연금을 감액해서 소요재정을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분명 대통령은 공약의 핵심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김무성 의원이 “거짓말 못하는 사람이 박 대통령인데 ‘당선되면 어르신 여러분께 한 달에 20만원씩 드리겠다’고 참모들이 써준 공약을 그대로 읽었다”고 비판하자 안 부위원장은 “제가 당시 기초연금을 논의한 사람으로서 (말하는데), 박 대통령이 이 문제는 어느 누구보다 전문가”라고 항변하며 대통령이 전모를 꿰고 있음을 강조했다.


선거 현수막과 언론 보도에서 ‘기초연금 20만원’ 약속을 수없이 접했던 국민들로선 어리둥절한 일이다. 과연 기초연금 공약을 ‘국민연금 연계 삭감’으로 이해하고 투표한 사람들이 있었을까? 박근혜 후보는 유권자들이 자신의 공약을 국민연금과 별도로 받는 ‘기초연금 20만원’으로 인식하도록 홍보하고 표를 얻었다. 자신들만 공유한 암호였던 ‘통합 운영’ 문구가 관리체계 수준을 넘어 기초연금액 삭감임을 제대로 알린 건 인수위원회 단계였다. 선거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심각한 일임에도 불편함도 부끄러움도 없는 자세로 말이다. 안 부위원장은 “현수막과 구호를 통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이라고 공약이 잘못 알려진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그 부분은 내가 코멘트할 수 없다”며 회피했다. 유권자에게 정직하지 못했음을 인정한 셈이다. 


검찰은 우리의 고발을 기각했다.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가 지났고 ‘장래에 대한 의사표시’(공약)를 법적으로 다룰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고발인 조사도 없이 고발장의 기본 요지조차 무시한 통보였다. 공약을 후퇴시키거나 어겼다고 고발한 게 아니다. 애초 공약의 실체를 유권자에게 허위로 알린 것을 조사하라는 요구이다. 기초연금 사건은 대통령 당선의 정당성마저 묻는 중대한 일이다. 이제라도 명백히 규명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영상 고발장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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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152100035&code=990308#csidxdb109d85ccfcc79bd058df2369d06a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