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복지목적세

2016. 10. 13. 18:3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지난 복지 논쟁에서 선별복지가 물었다. 보편복지는 진보 쪽의 입장인데 왜 부잣집 아이들, 재벌 회장님까지 복지를 제공하려 하느냐고. 보편복지가 답했다. 이제 복지는 모든 시민의 권리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래야 복지재정도 늘려갈 수 있다고. 스웨덴 사회학자 발테르 코르피의 ‘재분배의 역설’에 근거한 응답이다. ‘재분배의 역설’은 가난한 사람에게 복지를 집중하기보다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이 더 재분배 효과를 거둔다는 주장이다. 단위예산당 복지 효과는 선별복지가 크겠지만 보편복지가 재분배에 더 기여하는 까닭은 ‘재정 규모’가 매개되기 때문이다. 복지를 권리로 제공하는 보편복지가 상위계층에게 재정 책임을 더 강력히 요구할 수 있고 실제 서구 복지국가에서 그렇게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민생은 어렵고 복지 확충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은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올리자고 약속했고, 최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12세 이하 아이들에게 월 10만~30만원을 지급하는 아동수당을 제안했다. 청년 복지 확대를 두고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경쟁도 뜨겁다. 주거난 개선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이야기도 다시 등장하고 어린이부터라도 병원비를 국가가 보장하자는 운동도 퍼지고 있다. 재정 장벽은 높기만 한데 복지를 더 늘려가야 하는 상황에서 뾰족한 수가 없을까.우리나라는 어떨까? 지난 몇 년 무상급식, 무상보육, 기초연금 등 보편 혹은 준보편 방식으로 복지가 늘었다. 반면 세입은 제자리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가계부까지 내놓으며 호기를 부렸지만 재정적자만 고착화되고 있다. 그 결과 중앙정부, 지방정부 모두 늘어난 복지 지출을 충당하느라 오히려 기초생활보장, 장애인복지, 지자체 자체 복지 등 어려운 사람을 위한 복지가 압박을 받는다. 사회보험에서도 노동시장의 격차가 그대로 반영돼 불안정 노동자 상당수가 사각지대 주변에 계속 머문다. 서구의 ‘재분배의 역설’이 한국에선 애초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근래 복지 논의에서 눈에 띄는 주제가 복지목적세이다. 아동수당 도입을 위한 재원방안으로 아동수당세 신설이 제안됐다. 대략 연 15조원이 소요되므로 현행 기초연금보다 약 1.5배 큰 새로운 복지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청년 일자리 창출과 학자금 지원을 위한 재원으로 청년세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기본소득쪽 일부에선 재원 방안으로 기본소득세 도입을 내놓는다. 세금은 아니지만 공공임대주택 확충을 위해 국민연금기금이 제안된 것도 내용의 찬반을 떠나 재원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 어린이 병원비 역시 국민건강보험의 누적흑자액이 재원이고 혹 더 필요하면 보험료를 더 내겠다고 시민들이 말한다.


사실 복지목적세 논의는 지난 19대 국회에서 시작됐다. 정의당이 ‘복지에만 쓰는 세금’으로 사회복지세법안을 제출했고, 복지단체들도 비슷한 법안을 청원했다. 지방재정을 다루는 학자들도 지방복지재정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지역복지세 도입을 토론해 왔다. 정부도 복지목적세를 검토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2014년 처음 발표된 1차 사회보장기본계획(2014~18)은 안정적인 중장기 재원 확보 방안으로 프랑스와 일본의 사회보장세를 무게 있게 소개한다. 복지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일반적인 증세가 힘겨운 상황에서 복지목적세가 “국민부담과 국민 혜택을 동시에 제시해 정책 수용도를 제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복지목적세는 어딘가 재원이 있다는 선언적 가정을 넘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전향적이다. 세금 정책에선 거두는 자와 내는 자 사이의 신뢰가 관건이다. 복지목적세는 사용처가 명시돼 있기에 정부 지출에 대한 불신을 우회할 수 있고 납세자가 어떠한 복지혜택을 되돌려 받을 건지 예측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사용처에 따라 명칭은 다르지만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 누진도를 지닌 직접세와 상위계층에 주로 적용되는 개별소비세에 세금을 부과해 부자증세 효과도 염두에 둔다.


이미 우리나라는 일반 세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국가 대사에 대응하기 위해 목적세를 선택해 왔다. 자주국방을 위해 방위세를 도입했었고, 미래 세대 육성을 위해 교육세, 무역개방으로 어려움에 처한 농어민을 돕기 위해 농어촌특별세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재정이 간절히 요청하는 세금이 있다면 복지목적세이지 않을까. 내년 대선에 선보일 후보들의 증세 공약체계 중심에 복지목적세가 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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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112047005&code=990308#csidx916d00bf0215299a696966a66f7f11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