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연금 제도, 기초연금 중심으로 다시 짜자"

2016. 10. 9. 19:35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프레시안 books] <내가 만드는 공적 연금>




_ 이대희 기자

대선 즈음만 되면 꼭 나오는 공약이 하나 있다. 연금 제도 개선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저마다 연금 보험료율(내야 할 돈)을 낮추고 급여율(노년이 되어 받는 돈)을 올리는 방향으로 국민연금 개선 방안을 공약으로 내건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한다. 보험료율을 더 올리고, 급여율은 낮춘다. 현 추세대로라면 국민연금이 고갈되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02년 대통령 선거 TV 토론에 참석해 국민연금 급여율을 낮춰야 한다는 이회창 후보를 두고 "용돈 연금 만들 거냐"고 일갈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 취임 후 반년 만에 국민연금 급여율을 낮추는 법 개정안을 냈다.

이명박 후보는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기초노령연금을 20만 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대통령이 되고는? 아예 검토 테이블에도 올리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는 2012년 대선에서 다시금 "모든 어르신에게 20만 원"의 기초노령연금을 약속했다. 역시 그가 대통령이 된 후, 기초연금(기초노령연금) 지급액은 국민연금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깎였다.

심지어 현 노인 복지의 핵심인 기초연금은 황당하게도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줬다 뺐는' 돈이다. 약 40만 명의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노인은 매달 25일 기초연금을 지급받고, 다음 달 20일에는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을 삭감당한다.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는 정부가 정한 생계급여 기준액(중위 소득의 30%)과 수급자 소득인정액의 차액을 보충하는 급여이므로, 늘어난 기초연금만큼 생계급여를 낮춰 지급해야 한다는 이유다.

▲ 현 노인 복지의 핵심인 기초연금은 황당하게도 가장 가난한 노인에게 '줬다 뺐는' 돈이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5월 7일, 노인 단체인 '빈곤 노인 기초연금 보장을 위한 연대'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꽃을 줬다 뺏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빈곤노인연대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 원을 지급한 뒤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을 공제하기로 한 정부의 행태를 비꼬아 이 같은 퍼포먼스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공적 연금, 곧 국가가 관리하는 복지 연금인 국민연금, 기초연금은 언제나 우리 사회의 뜨거운 논쟁거리다. 국민연금 구조 개편을 둘러싼 논란 저변에는 세대 갈등이 존재한다. 현 세대가 미래 세대의 돈으로 노후를 보장받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로, 모든 사회보험 중 가장 높다. 그런데 급여율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져, 목표해인 2028년에는 40%로 가 된다. 현 세대가 돈을 많이 내더라도 예전 세대보다 받는 돈이 줄어든다. 1998년까지 급여율이 70%였음을 고려하면, 젊은 세대에게 불리하다. 이대로라면 국민연금이 고갈되리라는 우려 때문에 이렇게 제도가 바뀌었다. 이 세대 갈등이 정치 논리와 결합해 좌우를 가리지 않는 정치 싸움으로 변질되었다. 

세대 내 갈등도 존재한다. 정규직 노동자는 내야 할 국민연금 보험료의 절반을 회사가 대납해준다.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가정주부 등 정규 노동을 갖지 못한 이들은 사실상 국민연금 사각 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이 비율이 전체의 절반에 가깝다. 시간이 갈수록 노동의 비정규화가 더 심각해지리라고 가정한다면, 은퇴 후 국민연금을 제대로 받는 이가 우리 사회의 윤택한 노년자뿐이리라는 극단적 예상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오랜 기간 연금 제도 개선 방안을 연구한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이 새 책 <내가 만드는 공적 연금>(책세상 펴냄)을 냈다. 대표적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현 상태를 진단하고, 바람직한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현 공적 연금 상태와 그에 따른 문제점, 연금 개편을 둘러싼 각종 주장을 찬찬히 소개한다. 다년간의 연구 결과를 바탕에 둔만큼, 책은 막대한 분량의 통계 자료를 소개해 독자를 설득한다.

저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른 나라와 비교해 공적 연금의 절대적 보장 수준을 높여야 한다며,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한 단계별 연금 개혁 모델을 제시했다. 저자의 제안은 파격적이다. 한국 연금 제도의 출발점이자 모든 논의의 기반인 국민연금 위주가 아닌, 2008년 도입되었고 2014년 기초연금으로 이름이 바뀐 신생 연금 중심으로 우리의 노후 복지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나열했듯, 국민연금은 재정 취약성과 저소득 노동자에게 불리한 여건 등으로 인해 연금의 본래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기 어렵다. 

반면, 기초연금은 다르다.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필요한 재정을 그때그때 마련하는 부과 방식 제도이기에 노인 수, 급여율에 맞춰 연도별로 필요한 재정을 책정해 사용하면 된다. 국민연금처럼 재정 고갈 문제, 기금 운용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없다. 연금관리공단에서 개별적으로 기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과 달리, 기초연금은 매해 필요한 재원을 그 해 세금에서 조달한다. 자연히 노령화가 진행될수록 세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는 보편적 복지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임을 강조한다.



▲ <내가 만드는 공적 연금>(오건호 지음, 책세상 펴냄)ⓒ프레시안

따라서 저자가 제시한 개혁 모델의 첫 번째 개혁 단계는 현재 20만 원(급여율 10%)인 기초연금을 30만 원(급여율 15%)으로 올리고, 독소 조항을 제거하는 것이다. 대신 국민연금은 현행 급여율을 유지하고, 계층 간, 세대 간 격차를 줄이도록 개선해 나가자고 저자는 제안했다. 저임금 노동자의 국민연금과 고용보험료 전액을 정부가 지원하고(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키지 않은 대선 공약 사항이다), 출산·군 복무 크레디트 제도를 강화해 노동 시장 사각지대의 사람에게까지 국민연금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저자는 제시했다.

2단계 개혁 방안은 현재 사적 연금인 퇴직 연금까지 공적 연금 체계에 끼워 넣는 것이다. 자세한 방안으로 저자는 유럽 복지 선진국의 연금 체계를 예로 든 후, 이처럼 연금을 강화하는 데 따른 재원 마련 방안까지 총체적으로 설명했다.

저자는 정부는 물론, 야당, 연금 개혁 운동가 등이 연금 문제를 이념의 차원에서 활용하는 걸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책 곳곳에 제시했다. 대신 <내가 만드는 공적 연금>은 연금 개혁 방안을 찬찬히, 구체적 데이터를 곁들여 설명한 성실한 책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특히 각 정당의 정책 담당자들에게 호소하는 바가 짙다. 다만 내용이 전문적이어서 일반 독자라면 밑줄 그어가며 찬찬히 내용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