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나는 꼰대다> 히트다 히트!

2016. 9. 1. 12:35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마을 미디어, 마을 공동체와 함께 가라



이상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




얼마 전 무더위를 뚫고 100여 명의 서울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서울 북쪽 끝 도봉산 입구에 위치한 '도봉숲속마을'에서 1박 2일 동안 연 '서울 마을 미디어 네트워크 워크숍'에 참여했다. 워크숍을 찾은 이들은 서울 시내 마을 곳곳에서 라디오 방송, 영상, 신문과 잡지 등 미디어로 이웃 주민들과 소통하는 사람들이다. 서울 마을 미디어 네트워크는 지난 2014년 발족해 올해로 3기를 맞고 있다. 이들은 워크숍에서 지난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5년 이상을 내다보는 마을 미디어 발전 전략을 함께 고민했다. 

마을 미디어는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과 함께 시작한 마을 공동체 복원 사업의 하나로,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 이웃과 소통하는 미디어다. 지난 2012년 '우리 마을 미디어 문화 교실'을 시작으로 올해 5년째 이어가고 있다. 

미디어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마을 미디어는 양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5년 전 5개에 불과했던 마을 미디어 매체 수는 31개로, 한 해 마을 미디어 제작 건수는 138개에서 2400여 개로 늘었다. 그동안 이 사업에 참여했던 주민 수는 2만1338명에 달한다. 서울시가 지원하는 다양한 마을 공동체 사업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성장이다. 

▲ 서울시 마을 미디어 사업 현황(출처 : 서울 마을 미디어 지원 센터). ⓒ프레시안


이 사업은 미디어가 신문이나 방송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니란 걸 보여줬다. 이날 워크숍에서 소개한 사례들만 보아도 그렇다.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라디오 방송, 창신동 라디오 <덤>을 비롯해 결혼과 함께 사라진 방송인의 꿈을 이룬 <강서 F.M>, 그리고 청년들, 이주민 방송까지…. 누구나 마을에서는 기자가 되고, 방송인이 될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서울시 마을 미디어 사업의 미디어 교육과 지원으로 성장한 주민들이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만든 미디어를 보거나 듣기만 하는 소비자였다면, 이제는 직접 미디어를 제작하는 생산자가 되었다. 
 

▲ 마을 미디어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미디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서울 마을 미디어 네트워크 워크숍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시민. ⓒ이상호


또 중앙 일간지나 공중파 방송이 잘 전하지 않는 마을과 주민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충분히 방송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부터 동네 맛집, 마을에서 가볼 만한 곳, 마을 축제, 아이들과 이웃들이 이야기 등 모두 커다란 미디어가 다루지 않는 소소한 일상들이다. 여기에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이나 사고, 구청과 구의회 소식, 비리를 고발하거나 감시하는 등 '마을 민주주의'를 키우는 데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

양적 성장 둔화 추세, 정체성 다시 고민해야 

그럼에도 서울 마을 미디어가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던 마을 미디어는 최근 들어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고 있다. 정체된 서울시의 예산 지원도 문제지만, 지속적으로 주민들이 마을 미디어 활동을 이어가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 이날 워크숍에는 '마을 미디어 10인의 제안, 100인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다. 고가의 미디어 장비 확보 문제부터 공간, 구심점이 될 마을 활동가, 미디어 유통망, 각 자치구별 지원 센터, 서울시 마을 미디어 활성화 조례 제정까지 다양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마을 미디어가 발전하기 위해 '서울시 마을 미디어 지원 센터'가 2020년까지 '마을 미디어 비전 2020'이라는 중기 종합 계획을 내놓았다. 종합 계획은 '마을 미디어를 통한 마을 공동체 복원과 소통의 활성화'라는 목표로 다섯 가지 핵심 과제를 담고 있다. 마을 미디어 참여자 확대 전략, 지속적으로 마을 미디어를 생산하는 '매체'나 마을 방송국 확대 전략, 콘텐츠 확대와 마을 공동체 변화, 수용자 확대, 서울시 마을 미디어 종합 지원 센터 설립을 포함한 인프라 조성 등이다. 모두 지속 가능한 마을 미디어를 위해 꼭 필요한 내용들이다. 

나는 여기에 마을 미디어가 주체와 소재 면에서 시야를 넓힐 것을 주문하고 싶다.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마을 미디어는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안팎의 비판을 받았다. 쉽게 말해 마을 미디어가 주로 먹고살 만한 중산층 주민들의 여가와 문화 활동에 머물고 있다는 의미다. 소재도 자신들의 신변잡기나 한 때 꿈꾸었던 음악 방송, 간단한 마을 소식이나 말랑말랑한 주변 이야기가 다수다. 물론 이는 비단 마을 미디어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문학이나 요가, 목공예 등 취미 활동 수준을 넘어 마을의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는 서울시의 다른 마을 공동체 사업도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르신 팟캐스트 모델, <나는 꼰대다> 

이럴 때일수록 마을 미디어 본연의 정체성을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마을 미디어는 마을 공동체 '가치' 회복을 위한 소통의 매개체다. 마을 미디어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한 '도구'에 가깝다. 여기서 마을 공동체 가치란, 소외된 이웃과도 나누면서 마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다. 따라서 마을 미디어는 중산층이 소외 계층과 함께, 또 여가와 문화를 넘어 마을 복지와 주민 자치 등 마을공동체 가치를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좋은 예로 어르신들이 만드는 팟캐스트 라디오 방송 <나는 꼰대다>를 들 수 있다. 이 방송에 고정 출연하는 '키 큰 꼰대' 김모 씨는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80대 실향민으로 고시원에서 혼자 산다. 기초 연금 20만 원과 어르신 일자리 수입 20만 원을 포함한 40만 원 중 25만 원을 고시원비로 내고, 나머지 15만 원으로 한 달을 지낸다. 

함께 출연하는 '캡틴 꼰대' 또 다른 김모 씨는 전직 교장 선생님으로 매월 안정적으로 연금을 받아 생활하며 노후 걱정이 별로 없다. 쉽게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두 노인이 출연해 직접 체험한 역사 이야기부터 꼰대 탈출법, 존엄사 등 노인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기초 연금 같은 주제로 당사자인 노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유력 중앙 일간지와 방송사에서도 이 방송을 소개했다. 지금은 매회 청취자수도 7000여 명을 넘는 인기 방송이 되었다. 중산층과 소외 계층 노인이 공동체 가치를 이야기하는 방송의 모델로 삼을 만하다.  

▲ 중산층과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이 어울려 만드는 라디오 방송 <나는 꼰대다> 녹음 장면, 내가 만드는 복지 국가 지원으로 제작하고 있다. ⓒ이상호

  
마을 미디어, 마을 공동체 사업과 함께 기획하자  

그렇다고 억지로 시야를 소외된 이웃과 마을 공동체 가치로 돌리라는 말은 아니다. 처음부터 다른 마을 공동체 사업과 같이 기획해 그 활동을 잘 소개하는 방송을 할 수 있다. 1단계 사업을 마치고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이야기를 담은 마을 미디어를 만들어도 좋다. 마을 미디어 따로, 마을 공동체 따로 가기보다는 같이 하는 기획을 고민해 보자.

은평구 갈현1동에는 마을 주민들이 취미 삼아 만든 '수의'를 홀로 사는 어려운 노인에게 선물하는 모임이 있다. 또 장례식장에 수의를 팔아 남긴 수익금으로 다시 독거노인을 돕는데 쓴다. 이렇게 좋은 사례를 잘 전하는 일에도 마을 미디어가 역할을 하면 좋다. 서울 마을 미디어 지원 센터와 네트워크는 이러한 기획에 더 좋은 평가를 주어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서울 마을 미디어, 지난 5년은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이 제기된다면 정면으로 극복할 필요가 있다. 이제 양적 성장을 넘어 마을 공동체 가치 회복에 본격적으로 기여하는 질적인 변화를 고민해 보자. 



(이상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은 마을 미디어 도봉N 편집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