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한전, 포스코 전기 요금 연 1600억 원 깎아 줬다

2016. 8. 17. 20:59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전기 요금 누진제 대폭 완화에 반대한다





 [강은주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덥다. 몇 번의 샤워에도 그때뿐이다. 몇 번을 고민하다 결국 돌아다니며 집안의 문을 닫고 에어컨 리모컨을 누른다. 손가락 하나에 참으로 쉬이 집안은 시원해졌다. 끈적해진 몸뚱이가 진정을 찾을 때 즈음 나도 혹여 '요금 폭탄'을 맞는 것 아닌가 슬쩍 걱정이 앞선다. 주변의 적지 않은 이들이 한국의 가혹한 누진제를 이야기한다. 더위에 사람들의 마음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사람들은 누진제의 불합리함에 대한 집단 소송까지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정치권이 응답했다.

새누리당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주택용 전기 사용료의 누진 배율 완화와 단계 축소를 담은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민의당도 거리에 현수막을 붙이고 가정용 전기 요금에 대한 누진제 완화 목소리를 높였다. 오히려 정의당은 정치적 타이밍을 놓치고 최근에서야 긴급 간담회에서 전기 요금 개편의 '원칙' 정도만 내놓았다. 뜨거운 여론에 정치 영역과 원칙 사이에서 오히려 진보 정당은 서성거렸고, 정부 여당은 '한시적 할인'이라는 손쉬운 답변을 내놓았다.

누진제 한시적 할인의 문제점

신임 여당 대표의 취임과 함께 정부는 재빨리 7~9월 한시적 요금 인하를 결정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인하책은 서민들의 삶에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며, 향후 우리 사회가 나아지는데 도움이 안 되는 '포퓰리즘' 정책의 전형이다.

가정용 요금의 누진제는 6단계다. 우리의 요금 제도가 외국에 비해 가혹한 가정용 전기 요금 제도라는 말은 일견 맞고 일견 틀리다. 70%의 가정에게는 그다지 가혹하지 않다. 상위 1.4%의 다소비 가구에게는 가혹하다. 대다수의 가구는 1~3단계인 300킬로와트시 이하의 전력을 사용하고 있다. 이번 할인은 70%의 가구에게는 그리 큰 영향이 없다. 오히려 전기를 많이 쓸수록 혜택을 받는 방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 할인 혜택으로 인해 가계부가 속 시원해질 일은 그다지 없다는 것이다.


 
▲ [그림 1] 가정용 전기 누진 구간에 따른 가구 비중(2016년). ⓒ에너지정의행동


누진제를 아예 없애거나 대폭 완화하자는 주장 역시 위험하다. 전기를 더 많이 사용하는 사회로 가자는 주장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여름철 혹서기 한 달을 위해 나머지 11개월간의 요금까지 조정해야 하는지는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혹서와 혹한기를 제외한 봄과 가을에는 분명 전기가 남는다. 전력거래소의 자료에 의하면 올해 최대 전력 사용량과 최소 전력 사용량(5월 평균)간의 차이는 2987만 킬로와트 가량이다. 핵발전소 30기 정도의 격차다. 남는 전기를 봄과 가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더위 한 달 정도를 위해 전기를 더 쓰고 그를 위해 또 발전소를 짓자고 할 것인가. 결국 핵심은 전기 사용량이 최대치가 되는 기간에 대한 '피크 관리'다.

꼬인 전기 요금 제도의 핵심은 산업용 전기

55%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 요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전기 요금의 복잡함은 산업용 전기에 그 핵심이 있다. 경제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용 전기에 대한 원가 이하의 공급 정책은 물론 여기에 심야 전기 할인과 계약 전력 제도까지 존재한다. 한국 정부의 해외 공장 유치의 핵심 홍보 포인트는 (안정적 전력망과 재난이 별로 없다는 것 외에) 싸디 싼 전기 요금이었다.

감사원이 2013년 발표한 <2010년 각 국가의 산업용 전기 요금 비교> 자료를 보면, 한국의 산업용 전기 요금을 100이라고 보았을 때 일본은 244, 독일은 214, 영국은 174였다. 한국산 열연강판에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물리겠다고 한 것에 대해 단지 중-미 간 무역 분쟁의 유탄을 맞은 것이라고 투덜거릴 이유가 없는 이유다. 박주민 의원실 자료를 보면, 2014년 기준 한국전력공사가 포스코로부터 할인한 원가 부족액은 약 1596억 원에 달했고, 현대제철은 1120억 원, 삼성전자는 925억 원, 삼성디스플레이 635억 원이었다. 한전은 손실을 보면서 대기업에 퍼주고 있다.

출력을 조정할 수 없는 핵 발전은 전기가 남는 심야에도 꾸준히 전기를 생산한다(기저 부하). 물론 이런 전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과도한 핵발전소로 인해 기저 부하 용량이 늘어났고 밤에는 전기가 남으니 심야 시간에 전기를 싸게 팔고 있다. 철강, 자동차, 중공업의 24시간 공장 가동과 3교대 노동의 바탕에는 이 싸디 싼 심야 전기 요금 제도가 포함된다. 24시간 마트 영업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살인적 노동 시간 뒤편엔 싼 전기와 핵발전소가 있는 것이다. 심야에는 잠을 자자.

상용 자가 발전이라는 것이 있다. 전기를 많이 쓰는 공장은 자체적으로 발전소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말 그대로 자신의 공장 가동을 위한 발전소를 말한다. 한국전력거래소 자료를 보면, 이 상용 자가 발전의 비중은 2014년 기준 3.8%다. 2005년에는 8.5%였다. 일본의 경우 약 20%에 달한다. 전기 요금이 싸니 굳이 자가 발전 설비를 할 필요가 없고 그 비중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한전과 정부는 산업용 전기의 원가 회수율이 109%에 달하고, 최근 전기 요금 인상은 대부분 산업용에 집중되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질문 하나. 도대체 전기 요금의 원가는 얼마인가. 한전 외에 원가에 대해 아는 이는 없다. 아마도 원료의 가격과 발전소의 가동 비용과 송배전에 대한 다양한 비용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 그 비용에 밀양 할매들의 눈물이나 강제 이주의 역사를 가진 고리 주민들의 삶은 포함되었는가. 수천 년, 수만 년 뒤 미래 세대의 안전에 대한 비용, 아니 매시간 생산해내는 핵폐기물에 대한 우리 세대의 안전은 포함되었는가. 화력 발전소에서 쏟아내는 미세 먼지로 인한 국민 건강에 대한 권리는 포함되었는가. 그 원가 산출 방법 한번 공개해 보면 안 될까.


 
▲ 2013년 10월 2일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에 반대하며 주민들이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렇다면 어떻게 고칠 것인가

비정상적으로 싼 산업용 전기와 비교하니 가정용 전기 요금이 더 불합리해 보인다. 하지만 분명 전기의 수요 관리에 있어 누진제는 대단히 중요한 제도다. 그렇다면 요금 제도는 어떻게 바꿔야 할까?

몇 가지 원칙을 생각해보자. 일단 사회적 정의에 부합해야 한다. 사회적 형평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고, 소득에 따른 '에너지 복지'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지속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다.

가장 먼저 요즘 이슈가 된 가정용 전기 요금에 대해 생각해보자.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김치냉장고는 이제 가정의 필수품이 되었고, 가스레인지 대신 인덕션을 쓰는 집도 적지 않다. 드럼 세탁기와 에어컨은 이제 신축 빌라의 필수 옵션이 되었다. 도시에는 1인~2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최소 필요 전력량은 누진 1단계를 넘었고, 기초 생활 수급자의 평균 전력 사용량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세상이 달라진 만큼 요금제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더 많이 쓰는 가구에 대해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이 나쁜 제도라 말할 수 없다. 어찌되었든 우리 사회가 전기를 더 많이 쓰는 사회로 가는 것은 적절한 방향이 아니다. 에너지 복지, 즉 인간다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전기 사용량은 얼만큼일까? 전기 요금 논의에서 에너지 복지를 빼놓을 수 없다. 구간의 일부 조정은 필요할 수 있고 그 기준도 논의가 다양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누진제는 유지하면서 많이 사용할수록 누진율을 세게 적용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용 전기에 대해 말해보자. 산업용 전기가 싸니 우리도 싸게 쓰자가 아니라 산업용 전기를 올리자는 논의가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앞서 언급했듯 심야 전기 할인을 없애고 3교대 노동이나 24시간 가동 산업/상업은 줄이자. 폭염으로 인한 전력 피크가 문제라면 차라리 공장 가동을 대폭 줄일 수는 없을까. 폭염주의보 재난 문자에 휴일에는 외출을 자제하라고 하면서 왜 평일에 출근을 자제하라는 말은 하지 않을까. 프랑스처럼 유급 휴가 5주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더우면 그냥 휴가를 주면 안 될까.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너무 많이 일하고 있다. 반드시 중공업과 철강 공장을 24시간 가동해야 하나.

전기 요금을 인상하면 생산 원가의 인상으로 인해 결국 물가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전기 요금이 제조업의 생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4% 수준에 불과하다. 문득 대기업에 쌓아놓은 사내 유보금 생각이 난다. 한켠에서는 수출 산업의 약화를 우려하기도 한다. 한국의 수출 기업은 싼 전기 요금 외에도 환율 정책으로 이중으로 지원과 혜택의 당사자다. 오히려 반덤핑 관세의 무역 보복을 당하는 수준이라면 인상해도 괜찮다. 전기 사용량의 55%인 산업용 전기 사용량만 줄여도 더 많은 발전소를 지으며 핵폐기물이나 미세 먼지를 걱정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다른 용도의 전기 요금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사용량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전기 중에는 농업용이 있다. 농업 부분에 대한 지원 차원이다.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자료를 보면 조금 당혹스럽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3년 발표한 <전력 가격 체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보고서를 보면, 전체 농가 계약 전기 요금 할인 지원액의 45.3%를 차지하는 호수는 0.6%에 불과하다. 규모가 작고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보다는 대규모 기업농이 이 혜택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산업용 요금 혜택의 대부분이 대기업인 것처럼 농업 부분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대기업과 대농에 대한 할인 혜택은 줄이고, 중소기업과 영세자 영농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적합해 보인다.

장기적인 정책을 고민하자

다음으로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기후 변화로 여름은 점점 더 더워진다고 한다. 어쩌면 내년이나 내후년 여름은 더 더울 수 있다. 이 엄청난 더위를 해결할 방법이 궁극적으로 '에어컨' 밖에 없는 것일까. 문만 좀 열어도 선들선들 바람이 들어온다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텐데. 한겨울 집안 단열만 좀 잘되어도 전기 장판에 오그리고 잘 일은 없을 텐데.

그렇다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나서서 저소득층부터 집수리 사업을 해주면 안 될까. 옥탑방이나 쪽방의 현장 취재 뉴스는 왜 해마다 보아야 하는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주택 수리 사업을 차근차근 해가면 일자리도 창출하고 좋지 않을까.

예산은? 한전이 아무리 상장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2대 주주로 21.7%정도다. 한국정책금융공사가 29.94%다. 주주 배당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이익을 국가가 회수해서 에너지 복지 차원의 예산으로 돌릴 수 있지 않을까?(에너지 부분 세제 개편과 전력 산업 기반 기금의 개편을 통한 예산 확보 방안도 있다.) 기왕이면 재생 가능 에너지 사업 투자도 좀 하면 금상첨화겠다.

마지막으로 이 도시의 온도를 낮추는 장기적 방안을 고민하면 좋겠다. 1994년보다 분명 더 덥다고 느껴지는 것은 도시의 골목골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어컨 열기와 더불어 뜨거운 아스팔트가 발산하는 열 때문이다. 도시의 거의 모든 도로는 불투수층이라 빗물은 땅속이 아니라 하수도로 흘러가 버린다. 비가 와도 시원해질 리가 없다. 도시의 초록 공간은 고작해야 앙상한 가로수가 대부분이다. 무분별한 고층 빌딩은 바람길을 막았으니 도시는 지구의 온도와 상관없이 점점 더 더워지는 중이다. 건물 옥상 녹화만 해도 건축물이 뜨거워지는 것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 도시와 건축물의 온도를 낮추는 도시 계획을 고려해보자.


 
ⓒ연합뉴스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

당장 소송을 통해 열기의 분노를 삭히거나 요금의 일시적 인하로 다음 달 가슴을 쓸어내리는 요금 고지서를 받을 수는 있겠으나 이 도시의 온도는 낮아지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더 많은 전기를 쓰고 더 많은 발전소를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 누진 제도를 없애라고 주장하기 앞서 정책의 우선 순위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도대체 전기 요금의 원가는 얼마인지, 사회적 비용까지 넣어서 함께 머리를 맞대보자. 그리고 누가 가장 에너지 복지의 우선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달라진 주거 형태와 삶의 패턴에 따른 전기 사용량과 요금은 어떻게 책정되어야 합리적인지, 산업용 전기의 복잡한 제도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조금 혼란하더라도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왔다. 민심 회복용으로 던지는 청와대의 메시지에 몇 몇 행정 관료의 땜질 처방이 여름마다 반복되거나 포퓰리즘 형태의 인하 방안이 나오는 일은 너무 단시안적이다. 전기와 발전소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도 없을 것이며 숱한 사회적 갈등만 낳을 것이다. 더 많은 발전소가 아니라 더 시원한 삶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정치가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해야 할 일이 여기에 있다. 유권자의 표심에만 당론과 정책이 오락가락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국가의 정책은 관료가 일방적으로 다루는 것도, 정치인들의 표심 해바라기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어야 한다. 전기 요금은 그저 공공 요금에 대한 일부의 불만이 아니다. 소득 격차와 공공 요금의 형평성 문제, 에너지 세제 개편, 나아가 한 사회의 지속 가능성까지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다. 그저 몇 달 전기 요금 인하해주는 인기영합 정책으로 해결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정치는 이 더위와 서민의 삶과 기후 변화, 전기와 발전소, 이해 당사자간의 갈등, 에너지의 지속 가능성을 모두 고민해야 한다. 왜 우리의 정치는 이런 단어를 먼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하는가. 여론에 휘둘려 단시안적 정책을 발표하거나 입장도 내지 못하고 서성이는 모습은 우리 정당의 정책적 부실함을 일깨워 줄 뿐이다. 몇 번의 국정감사나 한시적 법안 발의만으로 정치의 역할을 다했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일이 아닌가. 어쩌면 지금이 전기 요금 사회적 공론화의 최적기일지도 모른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반핵 집회에서 시민들은 '콘센트 너머에 핵발전소가 있다'고 외쳤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갈등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 갈등의 본질을 찾고 그에 대한 책임 있는 해답을 모색하는 것이기도 하다. 콘센트 너머의 밀양이 있고 고리가 있다. 그 너머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를 논의의 장으로 끌어오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유례없는 더위에 정치까지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