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대형 병원, 뭣이 두려운디?

2016. 8. 15. 13:2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산별 교섭 완성 향한 보건의료 노조의 발걸음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2004년부터 산별 교섭을 진행해온 보건의료 노조가 지난 7월 20일 올해 산별 교섭을 타결했다. 지난 5월 1차 교섭을 시작한 이후 6차 교섭 만에 노사 합의에 이르렀다. 교섭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쟁의 절차를 밟지 않고 원만한 타결에 이른 것은 그만큼 노사 신뢰 관계가 축적되고, 노사가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한 공감대가 긴밀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보건의료 노조 산별 교섭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올헤 보건의료 노조 산별 교섭에서 가장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부족한 병원 인력을 확충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또한 병원의 열악한 근로 조건을 개선하고 병원 내 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이번 산별 교섭의 성과와 한계를 살펴보자. 

간호 인력 부족 해결하기로 

먼저, 노사는 올바른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 제도화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 제도는 간병인을 고용하거나 가족이 직접 환자를 간병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의 간호 인력이 간호와 간병을 모두 책임지는 제도이다. 당연히 이는 더 많은 간호 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간호 인력 기준이 낮아 힘든 업무량 때문에 양질의 간호 간병 서비스 제공이 힘든 게 현실이다. 양질의 간호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아 간호 인력 쏠림 현상과 수급난이 심각하다. 실제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 병동을 운영하고 싶어도 간호 인력을 구하지 못해 운영하지 못하는 병원도 많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올바른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 제도를 운용할 수 있도록 노사가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인력 기준 상향,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 수가 현실화, 간호 인력 수급난 해결,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 병동 운영에 필요한 시설 개선비 지원 등 산별 교섭에서 합의한 노사의 공동 요구가 정부 정책에 제대로 반영된다면 환자 가족들에게 떠맡겨진 간병 부담을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산별 교섭에서 노사 양측은 부족한 병원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도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의료법상 인력 기준 준수 △산전 산후 휴가 및 육아 휴직으로 인한 상시적 결원 인력을 정원으로 책정 △임신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 여성 근로자에게 1일 2시간의 근로 시간 단축 △보건의료 인력 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동 노력 △보건의료 산업에 50만개 일자리 창출을 포함 보건의료 인력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노사정 태스크포스(TF)팀 구성 추진 등이다. 

병원의 인력 부족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은 간호사 1명이 돌보는 환자가 5.3명인데 우리나라는 간호사 1명이 평균 환자 17.7명을 돌본다. 간호사 1명이 입원환자 40명~50명을 담당하는 병원도 있다. 인력은 부족하고 업무량이 많아 밥 먹을 시간도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해야 하는 현실이다.  

보건의료노조 실태 조사에 따르면 법에 보장된 월 1회 생리 휴가는 연 평균 4.9일밖에 못쓰고, 육아 휴직 사용 비율도 41.3%밖에 되지 않는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임신도 순번을 정해서 해야 하는 임신 순번제까지 있다. 이러다 보니 간호사 이직률이 20% 수준이다. 5년마다 전체 간호사가 바뀌는 셈인데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병원 업무상 필요한 전문성, 숙련성, 연속성 등이 보장될 수가 없다. 의료법상 간호 인력 기준을 지키는 병원은 전체 병원 중 14%밖에 안 된다. 

노사는 이같은 심각한 인력 부족 문제가 곧바로 환자 안전과 생명의 문제, 의료 서비스의 질 문제임을 공동으로 인식하고, 병원 인력 문제를 제도적·정책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20대 국회에 보건의료 인력 지원 특별법이 발의되어 있는 만큼 노사 합의를 바탕으로 올해 안에 법통과를 위한 노사 공동의 활동이 이어질 예정이다.

▲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6월 29일 '보건의료 인력 지원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국회의사당 앞 민주노총 파업 투쟁 결의대회 현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비정규직 차별 해소하기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합의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병원에서도 비정규직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청소, 식당, 주차 업무 뿐만 아니라 안내, 기계, 시설, 예약, 환자 이송, 외래 진료 등의 부서에도 외주화나 단기 계약직 고용이 늘어나고 있다.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50~80% 수준이고, 여러 복리 후생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올해 산별 교섭에서는 이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가지를 합의했다. △비정규직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는다 △상시적·지속적 업무에는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현재 상시적·지속적 업무에 사용하고 있는 비정규직을 정원으로 책정하고 정규직화 방안을 마련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단체 협약 및 복리 후생상 차별 항목을 조사하여 차별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단계적 방안을 마련한다 △올해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합의를 통해 병원 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원칙적 방향과 실질적인 출발점이 마련됐다. 남은 과제는 산별 교섭 이후 이어지는 현장 교섭에서 실제로 얼마만큼 구체적인 비정규직 문제 해결 합의가 마련되느냐는 것이다.  

보건의료 노조는 2007년 산별 교섭에서 임금 인상분의 1.5%~1.8%를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사용하기로 합의한 후 현장 교섭에서 2400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기로 합의한 전례가 있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서 비정규직 확대는 단지 비용 논리로 접근할 것이 아니다. 이후 환자안전 위협, 의료 서비스 질 저하, 이직률 증가 등 악순환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를 더욱 넓혀내면서 비정규직 해결의 모범적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남은 과제이다.  

3대 존중 병원 만들기: 환자, 직원, 노동 존중 

올해 산별 교섭에서 가장 특징적인 합의 내용은 ‘환자 존중, 직원 존중, 노동 존중 등 3대 존중 병원 만들기’이다. 병원별로 노조가 참여하는 환자 안전위원회를 구성하여 연2회 환자 안전 위협 요인을 조사하여 해결 대책을 마련하고, 병원별로 환자 안전을 위한 전담 인력을 1~2명씩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병원 노동자들의 높은 이직 요인이 되고 있는 야간 교대 근무제와 관련해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 사업을 노사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폭언, 폭행, 성희롱 등 의료기관 내 폭력을 근절하고 감정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기관 내 폭력에 대한 규정 △의료기관 내 폭력 문제 해결 원칙 △의료기관 내 폭력 예방을 위한 사용자 의무 △의료기관 내 폭력 예방을 위한 조치, 대응 조치 △의료기관 내 폭력 발생 시 사후 조치 △직원 간 상호 존중을 위한 약속 등 세부적이고 종합적인 매뉴얼을 마련한 것도 중요한 성과이다.  

또한, 의료기관 내 폭력 근절을 위한 경고 문구도 노사가 공동으로 마련하여 병원 곳곳에 게시하기로 했다. 병원은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와 환자·보호자들에 의한 폭언·폭행이 빈번하고, 아픈 환자를 대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감정 노동 수행 정도가 높다. 올해 노사가 합의한 의료기관 내 폭력 근절을 위한 종합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면 병원 내 폭력을 대폭 줄이고, 병원 조직 문화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 공공성에 역행하는 임금·고용 제도를 도입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도 중요한 성과이다. 현재 정부가 성과 연봉제와 저성과자 퇴출제와 같은 노동 개악을 강행함에 따라 노사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보건의료 노조는 올해 산별 교섭에서 인사 고과와 근무 평가를 역량 강화, 교육 훈련, 조직 문화 개선에 활용하는 선순환 인사 평가 제도를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임금 격차 해소와 보건의료 산업 노동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산별 임금 체계 연구 TF를 노사 공동으로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노동 개악의 초점이 되고 있는 성과 연봉제와 강제 퇴출제를 도입하는 대신 보건의료 분야에 지속 가능하고 미래 지향적인 대안적 인사 평가 제도, 대안적 임금 체계 마련을 위한 출발점을 마련했다.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이 빠진 산별 교섭 

산별 교섭에서 가장 큰 한계점은 사립대학교 병원, 국립대학교 병원과 같은 대형 병원들이 산별 교섭에 참가하지 않은 점이다. 올해 보건의료 노조 산별 교섭에 참가한 병원은 지방의료원 20곳, 민간 중소 병원 19곳, 특수 목적 공공 병원 4곳 등 모두 43곳이다. 2004년~2007년 산별 교섭에는 국립대학교 병원과 사립대학교 병원과 같은 대형 병원을 포함해 100여개 의료기관이 참가했으나 2008년 산별 교섭이 파행으로 치달은 이후 이들 대형 병원들은 산별 교섭에 참가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대형 병원들이 산별 교섭에 불참함에 따라, 산별 교섭의 소중한 합의들이 실행되는 곳이 매우 적고, 보건의료 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 산별 노조가 요청하는 산별 교섭에 해당 병원들이 의무적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산별 교섭을 제도화하는 것과 함께 이들 대형 병원들이 산별 교섭에 참가하도록 현장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나가는 것이 보건의료 노조의 과제이다.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 산업 최저 임금 논의 틀 구축 

산별 교섭에서 임금 인상에 합의하지 못하고, 현장 교섭에서 다루기로 합의한 것도 한계이다. 보건의료 노조는 물가 인상, 표준 생계비 확보, 생활 임금 보장, 소득 분배 개선을 위해 임금 총액 7.4% 인상을 요구했으나 산별 교섭에서 합의하지 못했다. 병원별 조건이 천차만별이고, 임금 피크제와 성과 연봉제, 통상 임금 범위 등을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통일적인 임금 인상률을 합의하기가 어려웠다. 산별 노조의 역할이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줄이고, 통일적인 임금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보건의료 노조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최저 임금과 관련해서는 심도 깊은 논의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합의를 이룩하기보다는 상징적 인상 수준에 머물렀다. 노사 양측은 2017년 보건의료 산업 최저 임금을 '2017년 법정 최저 임금 + 100원'으로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2017년 법정 최저임금이 6470원으로 결정됨에 따라 보건의료 산업 최저 임금은 6570원으로 확정됐다. 이 합의는 병원 내 간접 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적용된다. 법정 최저 임금에 무턱대고 따르기보다 노사 합의를 통해 법정 최저 임금보다 100원 높은 금액으로 타결했다는 상징적 의미는 있으나, 최근의 생활 임금 인상 등의 흐름에 발맞춰 보건의료 산업 최저 임금에 대한 심도 깊은 접근이 필요하다.

산별 교섭의 완성을 위한 노력 계속될 것  

메르스(MERS.중동 호흡기 증후군) 사태 이후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 제도화, 의료 전달 체계 개선 방안 마련, 원격 의료 확대, 의료 서비스 육성, 환자 안전법 시행 등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임금과 고용, 근로 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임금 피크제, 성과 연봉제, 저성과자 퇴출제, 공공 기관 기능 조정, 단체 협약 시정 등도 추진되고 있다.  

보건의료 노조의 산별 교섭은 이러한 보건의료 정책과 노동 정책 속에서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고 확대하는 과제만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올바른 보건의료 정책과 제도를 확립하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중한 그릇이다. 이 그릇을 더 크게 더 튼튼하게 만들고, 더 알차게 채워내기 위한 과제가 보건의료 노조 앞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