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대통령님, 어르신들께 이럴 수 있나요

2016. 4. 6. 13:02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이번 총선에서 꼭 해결되기를 바라는 문제가 하나 있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다. 현재 기초생활 수급 노인의 통장에는 매달 기초연금 명목으로 20만원이 입금된 후 다음 달 생계급여에서 같은 금액이 삭감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만원을 드렸다’고 여기겠지만 보건복지부 안에서 기초연금과가 20만원을 지급하고 기초생활보장과가 20만원을 공제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14년 5월 기초연금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당시 아무도 이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다. 70% 노인에게 제공한다고 했으니 당연히 기초생활 수급 노인들도 기대가 컸다. 기초연금법 5조도 여러 감액 방식을 다루면서 감액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 대상으로 기초생활 수급 노인을 열거했다. 어떤 경우든 수급 노인에겐 기초연금을 전액 보장하겠다는 확인 조항이다.


막상 7월에 기초연금이 시행되자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기초생활 수급 노인들이 기초연금법대로 20만원을 받았으나 다음 달에 같은 금액이 생계급여에서 차감됐다. 왜 생계급여가 줄었느냐고 주민센터에 문의하면 정부 시행령에 의해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당사자 노인들이 청와대 앞에서 상소를 올리고 복지단체들은 “대통령직도 줬다 뺏을까요?”라며 항의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심지어 2014년 추석에 노인복지관을 방문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개선하겠다”고 약속하고, 2015년 2월 이완구 국무총리도 국회 본회의 질문에 “보완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답변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다.


총선이다. 그나마 정당들이 민생에 귀를 기울이는 때다. 주요 정당에 어찌할지 물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녹색당 모두 해결하겠다며 공약으로 응답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그럴 의사가 없다고 답신했다. 생계급여는 최저생계비와 가구별 소득인정액의 차이만큼 지급하는 보충성 원리에 따르는데 기초연금만큼 소득이 늘었으니 생계급여를 깎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기초연금 도입으로 다수 노인의 소득이 20만원 늘지만 가장 가난한 노인의 소득은 제자리에 머물고, 오히려 기초연금만큼 수급 노인과 일반 노인의 소득 격차가 커져도 어쩔 수 없다는 논리이다.


새누리당이 보충성 원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나 이 원리가 절대 법칙은 아니다. 이미 양육수당, 장애인연금 등은 소득인정액에 포함되지 않고 별도로 보장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의 소득인정액 범위에서 기초연금 4글자만 삭제하면 된다. 설령 보충성 원리가 그리도 소중하다면 노인가구 최저생계비를 기초연금만큼 올리면 된다. 정책 설계에 시간이 필요하다면 새로운 최저생계비 모형이 완성되는 시기까지 과도적으로 기초연금을 보장하는 절충도 가능하다. 길이 있는데도 가지 않고 탁상만 맴도는 행정이다.


지난 일요일 새누리당이 “실효성 있는 맞춤형 복지” 이름의 공약을 발표했다. 야당의 기초연금 30만원 공약에 맞서 선택적으로 ‘노후대책이 없는 계층’을 위해 복지제도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겠다는 내용이다. 새누리당이 주창해온 복지 노선이라 존중한다. 그래서 더욱 의문이 든다. 노인복지에서 기초생활 수급 노인들의 설움을 해소하지 않고 어찌 맞춤형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


재정 때문일까? 기초생활 수급 노인이 무려 40만명에 달하니 한해 1조원이 필요하다. 재정만 보면 손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리도 많은 노인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혹시 표의 무게 때문일까? 기초생활 수급 노인들은 발언권이 약하다. 사회적 관계도 취약해 동네 경로당에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굳이 모른 체해도 표를 모으는 데 지장이 없을 거라 판단하는지 모르겠다. 오산이다. “나는 받는데 왜 나보다 어려운 친구가 받지 못하느냐, 부자 노인은 못 줘도 수급 노인은 꼭 챙겨야 한다”는 게 주변 어르신의 이야기다. 절반이 빈곤 상태에 있고, 자신도 수급자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 대한민국 노인들에게 ‘줬다 뺏는 기초연금’은 남의 일이 아니기도 하다.


“대통령님, 우리 수급자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구요…” 시민단체들이 만든 동영상 인터뷰에서 공원에 앉은 할머니의 하소연이다. 오늘 경로당을 방문한 새누리당 후보들은 이 질문에 어찌 답할 것인가? 일주일 남았다. 투표장에 가기 전에 새누리당이 ‘줬다 뺏는 기초연금’ 해결을 약속했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