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31. 18:13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총선이 다가오는데 복지 의제는 안 보인다. 그동안 복지가 양적으로 확대되었지만 시민들의 복지 효과 체감도는 낮다. 복지의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발전을 이야기할 때가 왔다.
_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총선 투표일이 다가오지만 좀처럼 복지 의제가 떠오르지 않는다. 복지운동을 하는 처지에선 마음이 무겁고 책임감도 느낀다. 공천 파동에 정신이 없는 정당들이 밉기도 하지만 복지 의제를 공론화하는 게 자기 역할인 복지단체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물론 복지정책에 진정성을 가졌는지 의문이 드는 박근혜 정부가 큰 장벽이었다. 그래도 복지 세력이 시대정신과 긴밀히 호흡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복지 바람은 어디서 맴돌고 있는 것일까?
먼저 복지 재정이 과제로 떠오른다. 증세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나는 복지 서비스의 질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지난 몇 년간 복지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무상급식, 무상보육이 전면화되고 기초연금도 도입되었다. 그러면 양적 확대만큼 시민들은 복지 효과를 체험하고 있을까?
보육을 보자. ‘무상’이라지만 특별활동비 명목으로 내야 하는 부모 부담이 가볍지 않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위해 긴 대기 줄을 서는 건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간 보육에서 ‘믿음직한 안심보육’이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고, 종종 아동학대 기사에 가슴이 철렁하기도 한다. 정작 보육교사 처우에 대해 들어보면 아이들을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해달라고 요청하기 민망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하다. 정부 재정은 막대하게 투입되는데, 부모도 교사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당사자인 아이들 역시 그러할 것이다. 심지어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어린이집 반별 정원을 넘을 수 있는 ‘초과 보육’을 허용했다. 초과 보육을 통한 추가 수입을 교사의 처우 개선에 사용하라는 취지인데, 반별 아이 수가 늘어나면 서비스 질은 어찌될까?
복지 서비스의 질은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을 다루는 장기요양 영역에서도 심각하다. 장기요양보험의 지원으로 본인부담금이 낮아졌지만 노인 요양시설을 이용하는 당사자 노인과 가족들은 마음이 불편하다. 부모를 직접 돌볼 수 없는 상황이라 불가피하게 선택하지만 썩 믿음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 서비스도 오래된 숙제다. 병원을 선택할 때 여기저기 수소문해야 하는 이유 역시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가 약해서이다. 의사의 처방에 전적으로 따라야 하는 처지여서 여러 검사를 받았으나 적절한 진료였는지 의문을 지닌 채 병원을 나선다.
복지 서비스의 질은 복지 재정 조달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누리과정 예산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양자 모두 돈이 없기에 중앙정부가 국채에 의존하거나 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하거나 결국 시민 몫이다. 미래 세대에 빚을 넘기지 않고 우리 세대가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복지에 대한 긍정적 체험이 쌓여야 한다.
시민들이 복지 서비스에 만족해야 증세 논의로 나아갈 수 있어
총선 앞에 남은 기간은 약 20일. 정당들이 복지 공약을 계속 내놓겠지만 시민들은 더 이상 부풀려진 양적 공약에 공감하지 않을 듯하다.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은 ‘저복지-저부담’에서 ‘적정 복지-적정 부담’의 한국형 복지 모델을 제안한다. 현재 우리나라 복지 지출이 GDP 대비 10.4%로 OECD 평균인 21.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므로 2020년까지 OECD 80% 수준(GDP 17%)에 도달하겠다는 공약이다. 4년 뒤에는 지금보다 GDP의 6~7%포인트, 금액으로 연 100조원가량을 늘리겠다는 이야기다(GDP 1500조원 기준). 복지 확대가 필요한 일이지만 수치들이 이리 가볍게 다루어져도 되는지 의문이다.
이제 복지의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발전을 이야기하자. 무엇보다 복지 인프라가 점점 민간체제로 굳어가는 건 복지가 상업화 논리에 구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다. 보육·요양 공공 인프라를 적극 확충해야 하고, 국공립 모델을 민간 부문 운영에 결합하는 구조개혁도 필요하다. 의료에선 기존 민간병원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면 주치의제도 논의를 시작하고 비급여 및 과잉진료를 엄격히 관리하는 제도 개혁이 절실하다. 모든 영역에서 복지 이용자가 서비스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운영의 민주화도 요청된다. 서비스 질 개혁은 기존 민간 이해관계 주체들과 협의해야 하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숙제다. 시민들이 복지 서비스에 만족할 수 있어야 복지 체험이 뿌리 내리고 연대 가치도 형성되며 증세 논의도 전향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공천 파동에 난리인 정당들, 선거 기간인데도 떠오르지 못하는 복지 의제를 보면서, 새로운 복지 논의 지형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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