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9. 12:33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_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총선이 다가오지만 복지 의제가 부각되지 않는다. 정치권의 내부 갈등 탓도 있지만 복지 공약에선 재원 방안이 마땅치 않은 것도 주요 이유이다. 어느 당도 2012년 총선·대선 공약에서 더 나아간 약속을 제시하기가 만만치 않다. 박근혜 정부 내내 복지 재원을 둘러싸고 홍역을 치른지라 유권자들이 재원 방안을 꼼꼼히 따질 것이다.
여기 ‘매력적인’ 돈이 있다. 500조원의 적립금을 가진 국민연금기금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공공임대주택과 보육시설을 대규모로 건설하기 위해 국민연금기금 전용 특수채권을 발행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사실 국민연금기금의 공공투자는 오래된 논쟁 주제이다. 찬성 측은 공공투자가 복지서비스 내실화, 일자리 확대 등 사회적 편익을 창출하고 저출산 문제까지 개선해 장기적으로 연금 재정에도 긍정적이라고 옹호한다. 반대 측은 노후예탁금인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이 침해돼 미래 재정불안이 심화되고 기금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용인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모두 근거를 지닌 주장이다. 그래서 또 평행선을 달리듯 논란만 되풀이할까 걱정이다. 이제는 합리적 취지를 살려 실행 프로그램을 만들어갈 때이다.
우선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 공방을 반복하지 말자. 전통적으로 공공투자 논란의 핵심은 ‘수익률 희생’이었다. 국민연금기금이 직접 임대주택이나 보육시설에 투자할 경우 다른 자산 운용에 비해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논란을 피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은 국채 수익률이 보장되는 특수채권을 제안한다. 국민연금기금에는 기존 국채 매입의 연장이어서 새로운 투자도 아니고 수익구조에도 변화가 없다. 엄밀히 따지면 이 방안의 핵심은 ‘국민연금기금의 공공투자’라기보다는 정부가 이미 운용하는 국민주택채권에 추가로 국민연금기금 전용 국채를 발행하자는 ‘공공투자용 국채 확대’이다. 조연격인 국민연금기금이 주인공으로 소개돼 논란이 증폭되었을 뿐이다.
그러면 논점은 정부가 공공투자를 위해 국채에 의존하는 게 적절한가로 이전한다. 물론 최선의 길은 우리 세대의 세금으로 공공투자 재정을 충당하는 일이다. 시장가격 이하로 서비스를 제공해 민생을 지원하는 게 재정의 고유한 역할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재정이 이를 감당하기엔 너무 취약하다. 지금 국민연금기금 활용이 등장한 이유이다. 국채 증가에 대한 비판을 피해보고자 더불어민주당은 공공투자사업이 국채 금리 이상의 수익을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하나 공연히 소모적 논란만 초래할까 우려된다. 정부가 국채 발행을 통한 공공투자에서 그러한 수익을 올린다면 그만큼 임차인이 공적 혜택을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여서 애초 공공투자 취지와 충돌한다. 국채 발행은 공공투자를 위해 국가채무를 늘리는 일이고 사업에서 적자가 나면 재정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자.
나는 이번에 제안된 공공투자 방안이 생산적인 정책 논의로 이어지길 바란다. 과거 공방과 비교하면 국민연금기금과 공공투자를 결합하려는 노력이 깃든 방안이다. 현재 서민들이 전·월세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공공임대주택은 턱없이 부족하고, 무상보육이 실시되건만 보육시설 대다수가 민간이라 보육의 공공성 달성에 장벽이 존재한다. 아직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수준이고 공공투자는 자산을 남기면서 사회적 효과가 큰 미래지향적 사업이라 긍정적인 성과가 나오리라 기대한다.
더 중요한 건 우리 세대가 져야 할 책임이다. 지금 재정이 빈약해 불가피하게 국채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복지 확대가 시대적 물결이라지만 누리과정으로 지방채가 늘어나고 공공인프라 확충으로 국채가 증가하는 건 미래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은 ‘공공투자로 출산율이 높아지면 연기금의 고갈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비약해 잘 만든 공약의 진정성을 스스로 훼손한다. 출산율 개선은 필요하나 이것이 미래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낮은 조세부담률, 급여에 못 미치는 보험료 등 제도 개혁 과제를 직시하자. 그렇지 않아도 고령화에 따른 미래 부담은 커가고만 있다. 우리 현실이 어렵지만 미래 아이들은 더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
복지 확대든 공공투자든 모두 재정이 수반되고 현재 세대 책임이 요구되는 일이다. 국민연금기금의 공공투자를 전향적으로 추진하되 이제부터 재정을 채우는 노력이 절실하다. 복지를 누리고 국채를 늘리는 만큼 진지하게 증세를 논의해야 한다. 우리 세대가 감당해야 할 재정 몫은 여전히 무겁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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