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국회의원 수와 복지국가

2012. 11. 4. 20:4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경제와 세상]국회의원 수와 복지국가



김영순 | 서울과기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역시 진심만 가지고는 안될 일인가?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안을 두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아마추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부터 프레임 전쟁의 노림수라는 비판까지, 일파가 만파를 부르고 있다. 개혁안의 출발점이 그의 진심이었던 것만은 믿고 싶다. 그러나 과연 국회의원 수와 정당보조금을 줄여 그 돈을 청년실업에 쓰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안 후보의 제안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는데 역행한다는 비판이 넘치니, 여기서는 그것이 그가 대망하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를 해볼까 한다.

정치학자들은 복지태도의 계급별 차이가 나라마다 편차가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컨대 스웨덴의 경우 하층계급일수록 복지확대를 더 지지하고 상층계급일수록 덜 지지하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런 복지태도의 계급적 차이가 스웨덴에 비해 현저히 낮게 나타난다. 그 이유는, 미국의 하층계급이 스웨덴에서만큼 일관되고 강하게 복지국가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층계급의 태도는 큰 차이가 없다.


왜 미국의 하층계급은 스웨덴의 하층계급만큼 복지국가를 지지하지 않을까. 정치학자들은 정당체계를 그 이유로 든다. 비례제를 채택하고 있는 스웨덴의 경우 정책 차이가 뚜렷한 여러 개의 정당이 존재한다. 정당들은 사회경제적 이슈에서 선택가능한 대안과 그것의 계급적 의미를 선명히 집약해 보여주는 초점 구실을 하며, 유권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는 정당을 선택하기 쉽다. 반면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어 양당체제가 수립된 미국의 경우, 자유주의정당과 보수정당이 경쟁하는 구도를 가지고 있어 주요정당 간의 정책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미국의 의원들은 지구당 중심의 당 운영으로 정당기율이 약한 상태에서 교차투표를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정당이 정책 선택의 강한 기호가 되어 주지 못한다. 결국 유권자들은 지역구 현안 중심, 인물 중심의 투표를 하게 되고, 복지나 노동 등 전국적 쟁점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런 정당체계는 결국 시민사회 내 하층의 이해관계가 정치사회에 반영되지 못하게 한다. 교육수준이 높은 상층 및 중간층 유권자들은 이런 제도 속에서도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충실한 투표를 한다. 반면, 대체로 교육수준이 낮은 하층은 인종, 종교, 낙태, 이민 등의 프레임에 이끌려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고의 비논리성과 비통합성을 갖기 쉬운 하층계급은 정당이 지속적으로 이들을 호명하여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지 프레이밍해주고, 실제로 집권하여 그 이익을 실현시켜 줄 때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는 투표를 하기가 쉬워지는데, 미국은 유럽에 비해 이런 기제가 훨씬 약한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한국의 경우 분단체제, 보수적 매스미디어 환경, 취약한 노동시장, 지역주의 정치구도로 계급적 이해를 정치적으로 프레이밍하는 장치가 극도로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독점의 정당체제는 대의 왜곡 문제를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이는 하층계급이 오히려 복지국가 확대에 반대하고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 냈다. 이런 문제의 극복을 위해 여러 정치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비례제의 확대를 주장해왔다. 그리고 국회의원 수를 줄이면서 비례제를 확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에,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도 긍정적 입장을 취했다.

이렇게 본다면 안 후보의 국회의원 정수 감축 주장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복지국가 발전도 저해할 수 있는 위험한 제안이다. 그 돈을 청년실업 대책에 써서 얻는 이익은 대의를 왜곡하는 정당체제의 개혁으로부터 얻는 이익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하다. 논란 증폭 과정에서 나온, 주장의 핵심은 쇄신의 방향이지 숫자가 아니라는 안 후보의 반박 역시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고양이 스스로, 하나도 아니고 줄줄이 목걸이로 만들어 걸어야 한다는, 이 사안의 핵심 측면을 부차적 문제로 보는 현실감각도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