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두 달 방치된 공적 연금 기구, 남은 석 달은?

2015. 8. 4. 11:14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적 연금 기구, 흐지부지 만들지 마라



남재욱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팀장




3일 여야가 모여 '공적 연금 강화와 노후 빈곤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특위')를 구성했다. 지난 5월 29일 여야가 구성하기로 합의한 이후 두 달이 넘어서야 말이다. 활동 기간 5개월 중 2개월을 그냥 보낸 것이다. 지금부터 열심히 활동한다 해도 고작 3개월 남았다(필요하면 25일 연장 가능). 연금제도 개혁은 상당 기간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 노인 인구 증가에 따라 노인 빈곤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정치권의 심각한 직무유기이다.

심각한 노인 빈곤과 빈약한 공적 연금

한국의 노인 빈곤 상황은 공적 연금 강화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해도 충분치 못할 만큼 심각하다. 201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48.1%가 빈곤 상태에 있다. 한국의 전체 인구 빈곤율(14.6%)의 세 배가 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한국 노인의 높은 빈곤율이 빈약한 연금제도에 기인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OECD에 따르면 한국 노인 소득 중 연금을 비롯한 공적 이전소득의 비중은 16.3%에 불과해 칠레를 제외한 다른 모든 OECD 국가보다 적다. 기초연금을 제외하면 공적 연금을 수급하고 있는 사람은 노인의 36%에 불과하다.

공적으로 이전되는 소득이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노인이 어떻게든 일자리를 찾고자 하지만, 일자리를 구해도 대다수가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다. 한국 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2014년 일자리를 가진 65세 이상 노인 중 61%는 최저임금 미만, 77%는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의 임금을 받고 있었다(월간 <노동리뷰> 2014년 10월호).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의 사각지대 문제도 크다. 2013년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는 경제활동인구의 81%에 이르지만, 보험료를 내고 있는 이들은 63%에 불과하다. 주로 비정규직 노동자나 영세 자영자, 농어민 등이 포함된 지역가입자의 상당수가 납부 예외 또는 장기 보험료 체납 상태에 있다. 국민연금은 경제활동 전체 기간의 가입 및 납부 기간을 반영하므로 이들이 모두 연금을 받지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가입 기간이 짧고 소득 수준이 낮아서 연금을 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낮은 수준에 그칠 위험이 매우 크다.

요컨대 한국에서는 현재 노인 대부분이 가난할 뿐 아니라 현재 경제활동인구가 노인이 됐을 때도 가난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문제는 여러 각도에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겠으나, 그 핵심이 공적 연금제도의 개선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방치하는 여당, 방관하는 야당

이런 상황에서 공적 연금 강화에 관한 사회적 논의 환경이 조성되었다. 여야 합의는 지난 5월 2일 공무원 연금개혁 실무기구가 제시한 공적 연금 개선안의 적정성 및 타당성을 검증하고 실현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5월 초 합의 직후에 청와대가 나서서 '월권행위' 운운하고 여당이 합의를 뒤집으려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특위와 '공적 연금 강화와 노후 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이하 '사회적 기구')를 설치해 공적 연금 강화 방안을 찾기로 했다. 물론 핵심 논점인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50%'가 지금 공적 연금 강화 방안으로 적절한가는 따져볼 필요가 있지만 이를 논의하는 사회적 기구가 구성되는 건 전향적 일이다. 활동 기간을 10월 31일로 박은 것 또한 너무 촉박하지만, 정해진 기간 내에 나름의 성과를 내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와 같은 합의는 지난 두 달간 방치됐다. 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갈등 끝에 물러나는 등 당정 간 권력다툼에 바빴고, 총선을 앞두고 공적 연금 특위에 참여하는 것이 표에 도움이 될지를 계산하느라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는 소리마저 들렸다. 야당 또한 적극적으로 여당을 압박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공적 연금 강화 의제를 끌어냈다고 그리 자부하더니 왜 이리 소극적인지 의아할 정도였다.

공적 연금 강화, 기초연금에 주목해야

이제 남은 3개월, 한 번 연장하면 4개월 기간으로 온전히 연금 개혁 논의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연금제도는 연금을 받는 은퇴자와 연금 보험료를 내는 경제활동인구,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국민의 복지와 나라 경제가 얽힌 복잡한 문제다. 개선 방향을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실행 안을 도출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서구의 연금 개혁 사례를 봐도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거칠 때 성공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남은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논의의 기간뿐 아니라 방향도 문제다. 공적 연금 강화 특위와 사회적 기구는 지난 5월 초 공무원 연금개혁 실무기구가 합의한 방안을 기초로 실행 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당시 합의안은 국민연금 강화를 골자로 했다.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40%에서 50%로)과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연금 크레디트 확대, 사회보험 지원 사업 확대, 기타 노후 대비 취약계층 지원)가 그 내용이다. 이는 물론 중요한 과제들이지만 과연 현재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최적의 방안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국민연금 강화는 현재 노인의 빈곤 완화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적정한 기여에 대한 조정 없이 추진되는 급여 상향은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악화시킬 위험도 있다.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방안이 다루어지긴 했지만, 유연화되고 양극화된 한국의 노동시장 상황에서 이것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가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우선순위는 기초연금 강화에 있으며, 국민연금의 강화는 제도의 여러 측면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유이다. (☞관련 기사 : "왜 한국의 노인은 가난한가?")

이러한 상황에서 제한된 시간 동안 특위나 사회적 기구가 가시적인 정책적 성과에 집착한다면, 적절한 정책 방향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의사 결정이 이루어질 위험이 있다. 제도는 일단 형성되면 이후의 경로를 제약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성급한 결정은 오히려 노인 빈곤의 사각지대 문제를 고착화할 수도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공적 연금 기구, 흐지부지 만들지 마라

이제라도 공적 연금 강화 특위와 사회적 기구를 활성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흘러온 모양새를 보면, 여야 모두 남은 3개월을 흐지부지 보낼 우려가 크다. 그간 공적 연금 관련 논의의 대부분이 재정적 지속 가능성에만 초점을 두어왔다면, 이번 논의는 노후 보장의 적절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에 특위와 사회적 기구는 논의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국민연금 강화는 현재와 미래의 노인의 겪을 수 있는 빈곤을 완화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표 그 자체가 아니다. 노인 빈곤 문제의 해결에 국민연금 강화는 유일한 방안이 아니며, 가장 효과적인 방향조차 아닐 수도 있다. 특위와 사회적 기구는 국민연금 강화에만 매달리지 말고 노후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기초연금의 강화는 물론 때에 따라서는 공공부조 제도까지 포함하는 논의일 수 있다.

물론 한 번의 시한부 특위와 사회적 기구를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공적 연금 개혁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현재와 미래의 노후 소득 문제에 대한 검토와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의견수렴 및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2000년대에 비교적 성공적인 연금 개혁을 이룬 영국의 경우 연금위원회를 구성하고 4년 후인 2006년에야 위원회 권고안을 마련했고, 이후 2년여간의 여론 수렴 기간을 가졌다. 우리의 경우 당장 노인 빈곤 문제가 시급하여 이 정도로 긴 호흡을 가질 수는 없을지 몰라도, 여러 방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위해 남아있는 3개월은 너무 짧다. 이번 기회에 공적 연금과 노인 빈곤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되, 향후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계속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이번 사회적 기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