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임금 피크제' 타령 말고 '실업 급여'나 인상하라!

2015. 8. 18. 12:0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핀란드는 청년에게 구직 급여


김형모 <누가 내 국민연금을 죽였나?> 저자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 담화를 계기로 노동 개혁 의제가 전면에 등장했다. 노동 개혁의 목적은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제대로 대우받고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기울어진 노동과 자본의 관계, 주류 노동과 주변부 노동의 격차 해소가 핵심이다.

그러나 청와대나 여당은 주로 '노동 내 격차'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때리기'만 하다 막상 좋아지는 건 하나도 없는 결론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노동 부분을 대표하는 이용득 최고위원은 새누리당의 임금 피크제 강행을 비난하며 "노동이라는 것의 근본적인 핵심은 노사 자율"임을 강조했다. 이 역시 정답이 아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극도로 낮은 한국 현실에서 노사 자율은 곧 '사장님 마음대로'이기 때문이다. 

노동 개혁의 핵심은 '격차 해소' 

우리나라 노동 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느니 정년 연장으로 '임금 피크제'가 절실하다느니 하는 얘기는 대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직장인 중에서도 강력한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거나, 공무원법 등으로 고용이 안정되고 정년퇴직 때까지 알아서 월급이 오르는 임금 구조를 가진 일부에게만 해당한다.

물론 지나친 연공급, 호봉제의 경직된 임금 구조는 개선해야 한다. 단적으로 OO초등학교 2학년 1반 20대 담임교사 월급은 240만 원 남짓이고 2학년 2반 환갑 지난 교사 월급은 700만 원을 넘나드는 전근대적 연공 서열 임금 체계가 2015년 한국에 존속하고 있다. 이는 "나이 든 노동자는 좌불안석이요 청년은 들어갈 틈"이 없는 아래위가 막혀버린, 청년에게 최악인 노동시장을 강요하는 원인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갑을' 관계를 넘어 '병정'으로 이어지는 기업 간 격차, 동일 노동 차별 임금, 허울뿐인 사장인 특수고용직,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청년 실업과 노인 세대 빈곤 등 일명 '노동 개혁'을 위한 과제는 무엇 하나 바꾼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 중첩적으로 얽혀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노동 개혁'이 풀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가장 시급한 숙제는 '주변부 노동 및 노동에서 배제된 이들'의 삶을 어떻게든 향상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프레시안

 
 
90% 노동자(구직자)에게 최소한의 협상력을! 실업 급여 강화해야 

이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가 강화되기 위해선, 특히 이들의 '협상력'이 높아져야 한다. 부당한 처우, 쥐꼬리만 한 월급, 언제 어떻게 망할지 모르는 회사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출근하는 이유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어쩔 수 없는데다, 고용주와 협상을 할 권리 자체가 없어서다.

열악한 처우라도 감당하고 입사하는 건 구직자에게 '미취업'의 고통이 훨씬 크며 선택지가 없는 '무권리'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항상 나오는 얘기가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다'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업장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 확 좋아지나? 신설 사업체 5년 생존율이 30%에도 못 미치고 기업의 3분의 1이 영업 이익으로 이자조차 내기 버거운 상황에서 개별 사업주 처지 역시 도긴개긴이라 노동조합이 만병통치약일 수 없다. 즉, 다수 노동자(구직자)에게 중요한 것은 나를 고용한 사장님과의 협상력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존엄한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보편적 권리로서의 '협상력'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노동 개혁을 강조하면서 '실업 급여 수급 기간을 현재 90~240일에서 30일 늘리'며 '실업 급여 소득 대체율을 50%에서 60%로 인상'하는 방안을 언급한 바 있다. 담화 내용 전반에서 노동 개혁의 진정성이 담긴 '알맹이'는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그나마 고용 보험과 실업 급여 강화를 언급해 이 사안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다. 

앞에서 강조했듯, 주변부 노동자 및 실업자의 권익을 높이는 노동 시장 개혁의 핵심은 바로 이들에게 '밥벌이의 지겨움과 고통'으로부터 당분간 벗어나 새로운 직장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를 허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지금보다 고용 보험을 더 길게, 더 많이, 더 관대하게 지급하는 게 대안이다. 꼭 해고를 당하지 않더라도 노동자 스스로 회사를 그만둬도 동등하게 실업 급여를 보장해야 한다.

공적 연금이 보편적 조세 기반 '기초 연금'과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국민 연금'의 2층 구조로 되어있듯, 청년 구직자 등 당초 '고용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던 이들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고용 수당' 또는 '구직 수당'을 도입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참고로 핀란드는 생애 첫 취업도 하지 않은 청년 구직자도 월 700~910유로의 Labour Market Subsidy(노동 시장 보조금)를 받는다. (놀랍게도 기간 제한마저 없다!)

이는 한국 경제 산업 구조의 고도화와 더불어 대통령이 그토록 좋아하는 '창조 경제'를 가능케 할 것이다. 유럽 선진국들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불평등한 경제 구조를 바로잡고 노사 대타협과 산업 구조 혁신을 위한 조치의 핵심은 노동자에게 살 길과 직업 교육을 보장하지만, 망할 기업들은 시장은 물론이고 '노동자의 선택'도 못 받아 퇴출을 유도해 전반적인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과정이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고용도 창출했다.

주요 대기업이나 공무원이 된 일부만 승자가 되는 '선착순 노동 시장'에서 창조 경제니 혁신이니 하는 말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청년들이 자신의 꿈에 따라 삶을 개척해갈 수 있는 기본 구조를 만들어야 개인의 창조성과 사회적 역동성이 깨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남는 과제는 있다. 바로 '고용 보험 기금' 그리고 고용 보험 운영의 혁신이다. 풍부한 실업 급여와 직업 교육을 보장하기 위해선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향후 노동 시장의 변화에 역동적으로 대응하면서 보편적인 노동의 권리를 향상시키려면 당사자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공무원도 고용 보험 가입하고, 보험료 월 평균 7000원만 더 내자!  

이제 고용 보험 강화를 위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 이를 위해 필자는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고용 보험료 인상이다. 현재 '실업 급여 보험료'는 노사가 동등하게 0.65%씩 부담하고 있다. 이를 최소한 1%로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200만 원 받는 중위 소득 직장인이라면 인상액이 한 달 7000원에 불과하다. 7000원 더 내고 실업 급여를 더 받고 자발적 이직에도 보장된다면, 결과적으로 훨씬 더 이득이고 고용 관계에서 '노동'의 힘은 더욱 커질 것이다. 더불어 사회적으로 공정한 노사 관계와 산업 구조 경쟁력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둘째, 고용 보험에서 사측이 전액 부담(기업규모별로 급여의 0.25~0.85%)하는 '고용 안정 및 직업 능력 개발비' 역시 적절히 올려야 한다. 이는 단순히 실업 상태인 노동자의 생계 보장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 산업 구조 혁신과 연관된 핵심 과제이다. 미래의 먹을거리를 찾기 위한 산업 구조 혁신은 반드시 필요하며 새로운 산업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는 숙련된 노동자는 '교육과 직업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다. 특히나 산업 구조 개편에서 실직하는 노동자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교육 기간 중 노동자의 생계를 확실히 보장하는 건 고용 보험의 당연한 책무이다. 

셋째, 공무원, 교사, 직업 군인 등 기존 특수 직역 연금 가입자와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 공직자까지 모두 고용 보험에 가입하는 걸 적극 검토하자. 150만 명의 공무원, 교사 등 특수 직역 연금 가입자의 평균 소득은 대략 월 470만 원을 넘는다. 만약 이들이 고용 보험에 가입한다면 추가되는 고용 보험 예상 수입은 현행 보험료율로도 약 1조8000억 원 정도이다. 2014년도 고용 보험의 보험료 수입은 7조4815억 원이니 이들의 가입만으로 보험료 수입은 24% 이상 늘어난다. 더군다나 이들의 보험료를 상당 부분 부담하는 고용주가 정부이므로 사실상 국고 지원을 늘리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이들의 상당수는 고용이 안정되어있어 보험료 수입 증가에는 기여하지만 지출 요인이 크게 발생하진 않을 것이다. 

넷째, 고용 보험 운영의 혁신과 정보 공개 및 당사자 참여 확대가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노사 자율을 얘기한다. 정부에서도 노사 문제가 발생하면 "노사가 협력해서 해결하라"는 식의 태도를 자주 보인다. 그러나 순전히 노동자와 기업주의 기여만으로 조성된 자금인 고용 보험을 운영하는 고용노동부와 정부의 모습은 관료적, 독점적,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고용 보험법 및 고용 보험 보험료 징수 등 법률 시행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하는 '고용 보험위원회'는 위원 명단은 물론, 회의는 얼마 만에 하는지, 안건은 무엇인지 도무지 정보를 알 길이 없다. 

'고용 보험위원회'는 고용 보험의 입법부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최소한 고용 보험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노동자와 기업주에게 대한민국 국회가 국민에게 공개하는 수준으로 안건과 쟁점을 공유하고 끊임없는 피드백과 일상적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 하지만 역할은 입법부인데, 보여주는 행태는 '국가정보원'이다. 이 사안과 관련해 필자는 고용노동부 고용 보험위원회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도 했지만, "왜 그런지 자기도 모르지만 그냥 공개할 수 없는 게 방침"이라 알려주었다. 



ⓒ프레시안


실업 급여 강화와 보험료 인상, 노동계가 주도하라 

그간 노동 시장과 관련해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안타까움이 많았다. 여야, 노동계 모두 진영 논리에 따른 논쟁만 하다 뭔가 다수 노동자 서민의 삶을 향상시킬 생산적 대안 모색은 흐지부지되곤 했다. 그 결과 목소리 한 번 내기 힘든 다수의 '대한민국 직장인'들과 '노동 바깥의 이들'의 삶은 단 1센티미터도 나아지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비록 현 정부 여당이 '정치 공학적 이해관계' 때문에 노동 개혁을 이슈로 던졌다 하더라도 조선 시대 계급 사회 못지않은 차별적 노동 시장에 대한 문제의식과 개혁의 필요성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나쁜 놈' 하나 때려잡는다고 해결될 단순한 문제가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반노동에 기반을 둔 정부 여당과의 힘 관계에서 모든 걸 바꿀 수 없더라도 이번 기회에 최소한 고용 보험 하나만큼은 확실히 바꿔보자.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보호할 도구조차 없는 절대 다수 주변부 노동자, 구직자들에게 최소한 '안전모'라도 쓸 수 있게 하는 게 이 시대 노동 운동의 최우선 과제이자 진정한 '사회 연대'이다.  

어찌됐건 고용 보험 강화의 핵심 고리는 돈 문제, 고용 보험료 인상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아무리 필요하다 해도, 여야 정치권은 증세나 보험료 인상을 감히 먼저 꺼내는 걸 너무 부담스러워 한다.

그렇기에 노동계가 앞장서 '고용 보험료 인상, 제대로 된 실업 급여!'를 주장하길 바란다. 다른 조세나 사회 보험처럼 고용 보험 역시 돈을 내는 이들이 나서서 "내 돈 더 가져가라"고 해야 일이 쉽게 풀린다. 더불어 공무원 및 교원노조도 고용 보험에서 배제된 조합원들이 '동등한 노동자의 권리'로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도록 '공무원, 교사의 고용 보험 가입'을 적극 요구하길 희망한다. 

(김형모 <누가 내 국민연금을 죽였나?> 저자는 청년유니온 조합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