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잘나가던 회사원은 왜 복지 운동을 시작했나?

2015. 2. 27. 15:18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인터뷰] 이상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무국장




잘나가던 회사를 그만두고 복지 운동에 뛰어든 사람이 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는 가족들의 임종을 맞으면서 의료 복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상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무국장 이야기다. 

1987년, 그가 11살 때 아버지는 심장판막증으로 돌아가셨다. 28년 전 가족들은 수술비 1000만 원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고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어릴 때였지만 그는 어렴풋이 "돈이 없으면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 잘나가는 외국계 의료기기 회사에서 일했던 그는 2004년에는 뇌졸중으로 큰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인생의 중대한 질문에 부딪힌 순간이었다. "지금은 얼굴도 모르는 미국 주주들을 위해서 일하지만, 내 남은 인생을 누구를 위해 일할 것인가?"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복지 운동에 뛰어든 이유다.  

이상호 사무국장은 복지 시민운동계의 팔방미인이다. 도봉구에서 마을 신문을 만들고,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시민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가 만드는 <만복라디오>와 <만복TV>를 총괄하는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그가 미디어로 전달하려는 신념은 이렇다. "아픈데 치료 안 해주는 건 가장 치사하고 비열한 거예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는 범죄 스릴러 영화를 보더라도 범행 동기를 '의료비'로 설정하는 경우는 한국 영화와 미국 영화밖에 없다고 했다. <전태일 평전>을 읽을 때도 아들 전태일에게 "돈이 없어 주사 한 대 제대로 못 맞힌" 이소선 어머니의 슬픔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깨알 수다'를 떨다 보니 1시간이 훌쩍 갔다. 다음은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에서 이상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무국장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이튿날인 26일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설립 3주년 행사가 열리는 날이기도 하다. 편집자.  



▲ 이상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무국장. ⓒ프레시안(최형락)  

 
 

'의료 상업화 첨병'에서 '복지 전도사'로  

프레시안 : 평범한 회사원이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상근 활동가가 됐나?

이상호 : 대학 졸업하고 4년 반 정도 외국계 의료기기 회사에서 일했다. 의료 상업화의 첨병으로 있었다. (웃음) 9년 전에 그만 뒀다. 돌연 의료비 문제만큼은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에 큰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고, 1년 반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큰아버지는 독거노인이어서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였는데, 병원비가 간병비를 포함해 매달 300만 원씩 나왔다. 다른 가족들과 매달 나눠 내긴 했지만, 내 당시 월 평균 소득에 맞먹는 돈이었다.   

그 전에 내가 11살 때 아버지가 심장판막증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때 수술비로 1000만 원이 든다고 했다. 수술비가 없던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다. 그래서 어릴 때 어렴풋이 "돈이 없으면 사람이 죽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런 문제를 잊고 살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나니 이번엔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질문이 찾아왔다. "나는 월 300만 원으로도 부담되는데, 88만 원 세대는 부모님이 쓰러지시면 얼마나 부담이 클까? 지금은 (의료기기 회사에서) 얼굴도 모르는 미국 주주를 위해서 일하는데, 남은 인생 누구를 위해 일할 것인가?"   

2006년 회사를 그만두고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등에 몸담았다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로 왔다.  

범행 동기가 의료비인 범죄 스릴러물, 한국·미국 영화뿐 

프레시안 : 의료비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낀 적이 많은 것 같다.   

이상호 : <전태일 평전>을 보면 전태일이 분신 이후 피부 화상으로 병원에 옮겨졌는데, 몸 안에서 열기가 올라와 호흡 곤란으로 사망했다. 1970년에 의사가 1만5000원짜리 주사 두 대를 맞히면 우선 화기는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이소선 어머니가 "집 팔고 갚을게요. 맞혀주세요" 했는데 의사가 주사를 안 맞혔다는 대목이 나온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왜 아픈 사람의 응급 처치를 거절하나?   

전태일 씨가 사망했을 때는 1970년대였는데, 2000년대가 넘어가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다. 나는 영화를 많이 보는데, 우리나라 범죄 스릴러물에 나오는 범행 동기가 아직도 의료비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2002년)을 보면 신하균 씨가 누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범죄를 계획한다.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영화에서만 발견되는 소재다. 유럽 영화는 그런 내용을 소재로 삼지 않는다. 배고프면 컵라면 먹으면 되지만, 아픈데 치료 안 해주는 건 가장 치사하고 비열하다.  

그래서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가 하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 꽂히고 말았다. 병원비 걱정 없이, 민간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복지는 공동 구매다 
  

 


<영어 랩 공연중인 이상호 사무국장. 사진; 김미현>

프레시안 :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건강보험료를 1인당 1만1000원 더 내는 대신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그런데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더 내는 데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직장인이 많은 것 같은데, 주변 반응은 어떤가?  

이상호 : 내 친구들이 이제 회사에서 차장급이다. 연말정산 때 "(세금을) 너무 많이 내는 것 같다"고 하더라.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복지가 충분히 확충된 것도 아니고, 사람이 기본적으로 이기심을 다들 가지고 있다. 나와 내 가족이 먼저 보이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복지를 늘리는 게 크게 보면 더 이익이다. 복지란 의료 서비스를 비롯해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를 '공동 구매'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서 점차 자리 잡아 갈 것 같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가 열심히 활동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복지를 위한 세금'에 대한 여론이 점차 호의적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도, "복지를 확대한다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국민의 절반 정도가 호응했다.  

'박근혜=악마'라는 식은 곤란  

프레시안 :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부자 증세뿐만 아니라, 중산층을 포함한 보편적 누진 증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해 연말정산 파동 때 '세금폭탄론'을 들고 나왔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상호 : 세금폭탄론을 들고 나온 것을 보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앞으로 집권하기는 어렵고, 정부 여당의 페이스에 말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여정부 시절 '종부세 논란' 때는 민주당이야말로 '세금폭탄론'의 피해자였지 않나? 여전히 비난과 비방밖에 할 줄 모르는 정당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하는 것이 우리 국민 이익을 위해서도 좋다.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잘못된 건 얘기하고 비판해야겠지만, 진영 논리에 빠져선 안 된다. '박근혜는 악마'라는 식의 접근은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소신 발언을 한 적이 몇 번 있다.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과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 형식으로 바꾼 연말정산 제도를 잘했다고 했다. 

서민의 눈물 닦으려면 단계적 증세해야 

프레시안 : 하지만 법인세를 올리고, 부자 증세를 해야지 보편 증세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 있다.  

이상호 : 일각에서는 '노동자 양보론'은 안 된다고 한다. 부자들, 대기업들이 세금을 더 내야지 '중산층 노동자까지 양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나도 집권한다면 부자들, 대기업에만 세금을 물리고 싶다. 그게 실현 가능하다면 옳은 말이지만, 우리는 복지 운동이 보편적 공감대를 얻고 지지층을 확장할 수 있도록 비판을 넘어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각자 형편에 맞게 세금을 부담하고,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공동 구매'하자. 나는 그것이 사랑과 연대의 원리라고 본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복지는 돈"이라는데, 나는 "복지는 사랑"이라고 본다. 상위 1%를 타도한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서로 나누고 더 내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이 사회가 변할 것 같다. 이는 '사회복지세(복지에만 쓰겠다는 목적을 두고 걷는 세금)'의 원리이기도 하다.  
  
사회 지도층들이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의 눈물 닦는다면서 구호만 외친다. 구호에서 끝나지 않으려면, 세금이든 사회 보험료이든 더 내겠다는 마음으로 단계적 증세 정책을 펴야 한다. 

프레시안 : 앞으로 어떤 과제가 남았나?  

이상호 : 지난해에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에 집중했는데, 그 전에는 사회복지세 신설과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이 양대 축이었다.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는 단기간에 여론의 호응을 많이 받았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가 이룬 성과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향하는 '풀뿌리 시민 네트워크'에 못 닿은 것 같다. 공감하는 시민들을 더 많이 모으고, 거기서 풀뿌리 시민 연대체를 만들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26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3주년 행사도 외부 인사를 초정하는 식으로 안 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회원들이 준비했다. 나는 그날 랩 공연을 할 것이다. 이 바닥에서 영어로 랩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