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복 칼럼] 48세, 홈리스에게 생의 종착을 알리는 숫자

2014. 12. 29. 17:38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내만복 칼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홈리스, 주목받지 못한 삶, 가려진 죽음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이 계절엔 거리, 쪽방, 고시원 등지에서 살아왔던 홈리스들의 비보를 참 많이도 듣는다. 오늘 29일도 함께 활동했던 쪽방 주민 김 아저씨의 추모식이 예정돼 있다. 하루가 멀다할 부고 때문인지 요 며칠은 초승달마저 외롭게 죽어갔을 홈리스들의 슬픈 눈 마냥 그저 애처롭고 쉬 차오를 것 같지 않다. 

홈리스의 죽음은 일상적이고, 익숙하다. 서울역, 영등포역…. 바삐 흐르는 인파속에 배경처럼 존재하던 홈리스들은 죽어서도 주목받는 법이 없다. 화장장 화로에 들어가는 모습을 봐 주는 이 하나 없는 주검들도 허다하다. 살아서도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죽어서도 하나의 세계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죽음, 이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홈리스의 죽음을 해명하기 위해, 홈리스 사망 실태를 이야기하고 죽음으로 드러나는 홈리스의 의료와 복지지원체계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2001년부터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를 즈음하여 매년 홈리스 추모제를 열고 있다.  

올해도 12월 21일 서울역 광장에서 추모제가 진행되었고, 해당 한 주 동안 의료, 주거, 급식을 주제로 각각의 추모 주간 활동을 진행하였다. 홈리스의 죽음은 타고난 명을 다 한 자연사가 아니기에, 빈곤의 잔혹사를 빚어내는 홈리스 복지의 문제들을 제기하기 위해서다. 이 글 또한 추모 주간 활동으로 드러내려 했던 홈리스 주거, 의료, 급식 대책의 문제를 간추리는 데 목적이 있다. 추모보다 죽임의 연쇄를 막는 게 급하기 때문이다.



▲ 지난 21일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제를 마치고 추모 행진을 진행하였다. 홈리스 당사자들이 동료들의 영정과 요구를 담은 피켓을 들고 있다.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사무처장  

 
 

흥정 대상이 돼 버린 홈리스 의료 

홈리스들은 평소에도 많은 질병에 노출돼 있고, 그 결과 전체 인구 집단보다 사망률이 상당히 높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통계에 따르면, 1998년 5명에서 시작했던 거리와 시설의 홈리스 사망자 수는 2003년 300명대에 이르렀다. 그 이후에는 300~325명에 달하는 이가 매년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다쳐서 사망하는 사례들이 가장 흔했지만, 점차 만성질환, 간질환, 감염성 질환 등에 의한 사망이 늘고 있다. 사고사가 아닌, 질병의 누적에 의한 병사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야 할 홈리스 의료지원체계는 어떠한가. 그간 홈리스에 대한 의료지원은 각 광역지자체의 몫이었으나,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노숙인 복지법)' 제정에 따라 '노숙인 1종 의료급여'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 제도는 포괄지대보다 사각지대가 더 크다. 올해 2월 기준 서울 지역에서 '노숙인 1종 의료급여'를 적용받는 홈리스는 고작 371명에 불과하다.  

복지부도 이런 사각지대를 예견했던 듯하다. 새 제도는 구제도를 대체하기 마련임에도, 복지부는 의료급여와 함께 지자체 의료지원을 존속시켰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지침을 통해 노숙인 1종 의료급여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홈리스에게는 각 지자체가 의료지원을 실시할 것을 규정하였다. 동시에, '노숙인 1종 의료급여'의 문턱을 엄청나게 높였다. '노숙인 1종 의료급여'의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① 노숙인 일시보호시설, 노숙인자활시설 입소자 중 노숙인 해당기간(거리에서의 노숙생활및 노숙인시설 입소기간, 쪽방거주 등)이 지속적으로 3개월 이상 유지된 것으로 확인된 사람
② 질병, 부상, 출산 등에 대해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 
③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6개월 이상 체납된 사람



홈리스 중 일시보호시설이나 노숙인 자활시설(입소생활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대상이 되지 않는다. 신규 홈리스 역시 마찬가지다. 건강보험 가입 또는 연체 여부를 묻는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노숙인 복지법에 따른 지원 대상 중 하나인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제도 접근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 예로 쪽방 주민과 고시원 생활자들이 노숙인 시설을 이용할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들은 신청은커녕 이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게 현실이다. 

물론 지자체 노숙인 의료지원이 단단해 노숙인 1종 의료급여의 문제를 메울 수 있다면 상황은 나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낫다는 서울시를 보더라도 현실은 실망스럽다.  

지난 8월 25일, 서울시는 '노숙인 의료지원 시 부담금 절감 방안'을 주제로 회의를 연 바 있다. 쉬 짐작되듯, 이 회의를 통해 결정된 것은 첫째,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선정비율을 높일 것, 둘째, 실적에 따라 시설별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부과(예산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들에게 홈리스 의료지원은 건강권의 영역이 아닌 손익 계산을 다루는 산수일 뿐이다. 복지부나 서울시나 이 점에서 속내는 마찬가지다. 의료급여는 복지부 재정이, 의료보호는 서울시 재정이 투여되기에 서로 지출 감축 경쟁을 하는 것이다. 



▲ 서울역 광장에서 진행된 '보이는 라디오', 집 없는 설움은 홈리스만 앓는 게 아니다. 일산 덕이지구에서 재개발로 가게를 잃은 전국철거민연합 회원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대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

 
 

시설주의에 갇혀 버린 주거대책 

'하우징 퍼스트'란 말이 있다. 홈리스 복지에 있어 주거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천적으로도 건강의 문제, 취업의 문제 등 홈리스에게 떨어진 과제가 여럿 있지만, 이 모두 주거 안정이라는 기틀이 있어야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곤 한다.  

허나, 우리나라의 홈리스 복지는 여전히 시설 중심주의다. 홈리스에 대한 주거 지원은 '시설'이면 족하다는 인식은 공식처럼 굳어져 있다. 그러나 홈리스는 거처가 불안하거나 상실된 것을 공통의 특질로 한다. 따라서 그에 대한 대응은 주거로 시작되어야 하며, 시설은 주거의 아주 특수한 한 유형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현재의 홈리스 복지는 부분(시설)이 전체(주거)를 과잉 대표하는 기형적 체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홈리스 상태를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물꼬를 트듯, 진입과 유지가 가능한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시주거비 지원 사업'이 바로 이와 같은 제도다. 이는 거리 홈리스에게 2, 3개월가량의 주거비를 제공하고 사회복지 지원을 하는 것으로, 지원 후 주거유지율이 약 8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서울시 임시주거비지원사업의 연간 계획 인원은 350명으로, 거리홈리스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시장재로 빼곡한 한국의 주택 상황에서 쪽방과 고시원 같은 염가주거 역시 열악하나마 탈거리 노숙의 자원 혹은 거리노숙 방지에 주요한 자원으로 역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곳들은 새로운 대상층을 겨냥해 고급화되거나 재개발되며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에 따라 높아만 가는 임대료도 문제다. 선진 외국 사례에서는 이런 주택들을 홈리스의 주거 자원으로 활용하거나, 그렇게 할 경우 개보수 비용을 저리 대출하는 등의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이들 저렴 주거의 '사회적 유효성'을 인정함과 함께 거처로서의 안정성을 꾀하려 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국토부의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은 홈리스에게 매입 또는 전세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유일한 임대주택 정책이다. 그러나 입주를 위해서는 '입주자선정위원회'를 거치고, '운영기관'을 통해야 하는 등 타 입주 대상에는 없는 검증 절차를 두고 있다. 의당, 절차가 복잡해지고 대기가 길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런 절차를 고수하는 것은 시설주의 혹은 홈리스에 대한 의심의 발로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공급량 또한 문제다. 2012년 실태조사에 의하면 본 정책의 대상(노숙, 쪽방, 고시원 등 거주자)은 약 26만여 명에 달하나 연평균 공급량은 340호에 불과하다. 또한 홈리스의 대다수가 1인 가구임에도 1인 가구형 주택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렇듯 현재 홈리스 복지에서 '주거 지원'의 비중은 구색 맞추기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러 저러한 이름의 사업이 있으나 비현실적이거나 부족한 공급 탓에 유명무실하다. 무게 중심의 변화가 필요하다. 시설의 한계를 주거가 보완하는 게 아니라, 주거를 중심으로 홈리스 복지를 재구성해야 한다.



▲ 서울역 대합실 내 행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노숙인 강제 퇴거 조치'에 반대해 "단속과 혐오는 빈곤을 더욱 심화시킬 뿐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김대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

 
 

구호, 자선에 의존하는 급식 지원 

노숙인 복지법에 따라 '급식시설'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었지만 만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를 이행하는 지자체는 단 한 곳도 없다. 법령에 따르면 홈리스에 대한 급식은 식품위생법상 집단급식소 설치·운영 기준을 따라야 한다. 쉽게 말해 학교 급식과 마찬가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여전히 지하도, 공원과 같이 외기와 시선에 고스란히 노출된 실외 급식이 존재하고, 실내 급식이 있다하나 하루 한 끼만 제공하거나 종교행사에 참여해야 한다, 식자재나 조리 과정에 대한 어떠한 관리감독 체계도 없다. 서울시에서 유일하게 만든 실내급식소 역시 '장소' 제공의 역할만을 할 뿐 위 문제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지난 12월 10일부터 일주일 간 진행된 홈리스 100인에 대한 추모제기획단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하루 세 끼를 다 챙기는 이는 응답자의 29%에 불과했다. 식사의 질을 논하기에 앞서 안정적인 공급부터 문제다. 또한 조사 대상의 18%는 무료급식과 취사를 병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무료급식 정책이 거리홈리스 뿐 아닌 고시원, 쪽방 등지에 거주하는 홈리스 또한 염두에 둬야 함을 뜻한다.  

한편, 조사 대상의 다수는 복수의 급식소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로는 '가까운 곳에 급식소가 없어서'(41%)란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는 급식소가 안정적인 급식 제공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함을, 그에 따라 이용자들이 자주 이동해야 하는 고단함을 나타낸다. 급식소의 입지 문제가 있고, 이와 더불어 자선과 구호의 원리에 따라 급식소가 특정 시간대만 운영됨에 따른 결과다.   

급식을 받기 위한 긴 대기시간은 이런 문제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부, 지자체의 홈리스 급식 지원에 대한 의지나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급식 지원은 자원 투여 대비 성과가 계량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거리 홈리스 복지 지원이 좋아지면, 이들의 숫자가 늘리라는 미신도 함께 신봉하기 때문이다.

홈리스, 빈곤과 차별 없는 삶을 위하여 

올해 홈리스 추모제는 위와 같은 문제와 요구를 녹여내고자 했다. 정부청사 앞에서 수십 명의 홈리스가 스스로 무료 급식을 재현하며 급식 실태를 고발했고, 요양병원의 홈리스 유인으로 대표되는 의료 지원과 복지 지원의 개선점을 찾기 위한 토론회도 진행하였다. 추모제 당일, 혹한을 맨몸으로 견뎌야 하는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주거 현실을 토로하는 '보이는 라디오'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였다.  

'48세', 누군가에게는 한참 일할 나이이고, 뭔가 하나 이뤄냈다 할 나이겠으나, 홈리스에겐 종착을 알리는 숫자다. 사망 홈리스의 평균 연령 '48세', 그래서 홈리스 추모제는 망인의 넋을 위무하는 일만큼 살아있는 이들이 무얼 다짐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홈리스 주거, 의료, 급식 정책의 개선을 다짐한 2014 홈리스 추모제, 이제 이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일이 남았다. 



☞ 내만복 칼럼을 읽는 독자에게 감사드립니다. 내만복 칼럼은 복지 현장, 풀뿌리 시민의 목소리를 주목합니다. 내년에도 정성껏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