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박근혜·문재인·안철수가 꼭 가봐야 할 곳은…

2012. 9. 24. 16:33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박근혜·문재인·안철수가 꼭 가봐야 할 곳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주거 설움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

최창우 노원주거복지센터 사무국장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나는 서울시 노원구에 있는 주거복지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임대주택을 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일단 주거복지센타라는 이름을 듣고 뭔가 주거 관련 혜택이 있지 않을까, 주거 관련 중요한 정보자원이 있지 않을까, 임대주택을 향한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기대감을 잔뜩 갖고 찾아온다. 아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온다는 말이 딱 맞을 듯 하다.

지난달에 찾아왔던 어떤 분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고 한숨지으면서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이럴 때마다 마음이 찢어진다. 주거복지센타에 출근해 상담의뢰인을 만나면 종종 맨붕 상태에 빠지게 된다. 여러 번 망설이다가 전화주신 분들에게, '역시나 일꺼야' 하면서도 '혹시나' 하고 문 두드린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고, '교육복지도시 노원'이라는 펼침막까지 보이길래 세상이 좀 바뀐 걸로 생각해 용기를 내어 어려운 발걸음을 내딛었는데 돌아가는 길이 천근만근 무거울 것이다.

주거 설움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

우리 센터를 찾는 사람들은 나이 드신 분도 많지만 젊은 층이 반은 된다. 나이 드신 분도 젊은 분도 상담을 하다가 설움이 북받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지난주 수요일 하루에만 세 분이 눈물을 짓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너무나 세상살이 폭폭하고 서러워서 울음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번은 영구임대 아파트에 사는 분이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상담 전화를 걸어 왔다. 곧 찾아오겠다고 한다. 영구임대 아파트 보증금이 300만원인데 임대료가 모두 합쳐 200만원이 밀린 탓에 1주일 뒤에 법원 집달리(집행관)가 와서 세간을 끌어내겠다고 통고가 왔는데 어떤 방안이 없을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다. 자녀가 네 명이고 남편은 장애인이다. 본인은 사업하다 허리 수술로 2개월간 입원한 한 사이 사업은 망했다. 지금도 여전히 허리가 아프고 한쪽 다리 마비 증세까지 나타나 일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매달 기초생활보장급여가 110만원 나오는데 이 돈으로 임대료와 관리비, 공과금 내고 나면 약 80만원이 남는다. 이어 교육비에다 약값, 교통비 내고 나면 먹고 입는데 쓸 돈이 곧 바닥난다. 여러분 같으면 임대료 안 밀리고 살 재주가 있겠는가? 이처럼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의 마지막 보금자리마저 법의 이름으로 빼앗는 게 국가라니 어이가 없다. 이 분은 상담 도중 눈물을 감추려고 애를 쓰다 결국 울음을 쏟아내었다.

긴급지원 요청, 자녀들 서명 받아오라고?

두 달 전 50쯤 되어 보이는 한 남자분이 찾아 왔다. 그는 대뜸 200-300만원 정도 빌려 주면 돈을 버는 대로 갚겠다고 했다. 그런 제도는 없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저소득층 전세 자금 대출이 있긴 하지만 자기 돈이 최소한 30% 이상은 있어야 가능하다. 신용도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의 사연을 들어 보자. 그는 대학생,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이다. 상담 의뢰인의 아내는 아파서 병원을 드나든다.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일을 나갈 정도는 못된다. 의뢰인은 막노동을 하는데 요즘 일이 없어 인력시장을 비롯해 여기저기 백방으로 돌아다녀도 한 달에 12일 이상 일하기 힘들다. 결국 45만원 월세를 12개월이나 밀리게 되어 보증금 전액이 잠식되자 주인이 소송을 냈다. 집달리가 들이 닥치기 3일 전에 우리 센터를 찾아왔다. 그가 이렇게 악화된 삶의 소용돌이 속에 빠진 건 사업실패 때문이다. 밀린 것은 임대료만이 아니다. 수도료, 도시가스료, 통신요금도 밀렸다.

구청 긴급지원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그분을 바꾸어 주었다. 그는 안내받은 대로 서류준비하고 구청으로 다음날 갔다. 물론 법원에서 발부한 퇴거 통고장도 가져갔다. 구청을 찾아갔던 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화가 잔뜩 묻어난 목소리다. '이제 절대로 관공서를 찾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가 화가 난 이유는 자녀들 서명을 받아 오라는 요구 때문이다. 학교에도 연락하게 된다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집안 경제 하나 해결 못해 구청까지 찾아가는 못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고 자식들에게 절대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에서다. 그는 말한다. 주거 위기 가정을 구한다고 하면서 가정마저 흔들리게 만드는 것이라면 탁상에서 만든 제도 아니냐는 것이다. 무상급식을 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선별적 무상급식을 받는 학생들이 받을 상처를 걱정했던 것 아닌가.

그는 결국 구청직원하고 싸우다시피 하고 '복지', '자살 예방'을 내건 플래카드 다 떼라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구청 인근 구석 자리에 세 시간 동안 신세한탄하면서 앉아 있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어떤 지원도 못받고 말았다. 사실 구청에서 긴급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그리 큰 도움은 못되는 게 현실이다. 조건과 절차가 까다로운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른 긴급주거비용은 월 55만원에 불과하고 특별히 긴급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에만 연장이 가능할 뿐이다. 엄격한 판정 과정을 거쳐 총 4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대부분 1회 지원으로 끝난다.

이 분은 막노동에 나가 하루 8만 1천원을 번다. 한달에 일할 수 있는 날이 12일, 잘해야 15일인데, 임대료가 월 45만원이다. 임대료가 총수입의 절반에 이른다. 구청 가기전에도 구청 갔다 와서도 자살할 마음이 든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장애 판정 받기도 어려워

또 한분의 사정을 들어 보자. 시아버지는 장애가 심하고 시어머니 역시 장애가 있다. 남편은 지난 해 말 뇌출혈로 쓰러졌고 중학생 자녀가 있다. 남편은 일어나긴 했지만 기억상실과 기력을 쓰지 못하는 증세가 나타났고 지금은 다른 병까지 생겼다.

그럼에도 남편은 장애 등급을 받지 못했다. 장애 판정을 받고 싶다고 하니까 의사가 난감해 하더란다. 눈에 드러나는 근거에 기초해 판정을 하지 않으면 의사면허가 취소될 수도 있기 때문에 등급 판정을 꺼린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판정 받는데 60만원의 비용이 들어서 생각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부인은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 시아버지 간병을 해서 약간의 돈을 얻고 있다. 형편이 이러니 사채에 의존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보증금은 계속 줄어들고 월세는 계속 늘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보건복지부에 전화를 걸어 긴급지원을 요청해 보라고 했더니 아픈지 6개월이 지나서 안된다고 말했다고 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차라리 알아보지 말 것을! 힘들게 전화 걸고 사연 다 말하고 나서 결국 안된다는 말을 들을 때 얼마나 비참함을 느꼈을까!

대선후보들, 하루라도 주거복지센터에서 한스런 사연을 들어보시라

이번 주 실평수 12평형 규모의 임대아파트가 나왔다. 경쟁률이 대체로 20대 1이다. 이번에 어렵게 정보를 얻어 임대주택을 신청을 한 사람 20명 가운데 19명은 반드시 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두 달 전에 노원구에 나온 국민 임대아파트는 경쟁률이 무려 250대 1이었다. 이 분들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내가 못났다고 한탄을 하거나 세상을 탓하면서 절망할 것이다.

집 문제만큼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 주거 문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시한폭탄의 임계점이 눈앞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했다. 민의 통곡소리가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는 나라가 민이 주인인 나라인가? 주거권은 생존권이자 인권이다.

대선후보들이 진정 주거현실을 몸으로 느끼려면 주거 복지센터에 와서 하루만 직접 한스런 사연을 들어보길 권한다. 말로만 하는 생애주기별 복지, 이제는 벽장 속에 내던져라! 제대로 된 복지재정 확충방안을 내지 않으면서 복지국가라는 말을 내세우는 위선도 벗어던져라!

책임지지 않는 공약, 임대주택 건설

지난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임대주택 120만호 건설을 외쳤다. 어제는 임대주택 20만호를 내걸었다. 그런데 재정대책이 사실상 없다. 막 지르고 보는 것이다. 이게 '먹튀' 아니고 무엇인가? 표만 먹고 튀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론스타는 잡범 수준이다.

지금 땅값, 자재 값, 인건비를 생각할 때 21평과 25평을 반반 섞어서 주택을 짓는다면 집 한 채당 최소한 1억 5천은 들 것이다. 다음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100만호를 짓는다고 하면 150조가 든다는 이야기다. 사실상 줄푸세 논리에 갇혀 있는 새누리당은 증세를 극도로 회피하면서 '아껴 쓰겠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어디서 돈을 만들어 한해 30조원이 드는 임대주택 20만호를 매년 짓겠다는 것인가? 엊그제 박근혜 후보는 한해 16조를 증세 없이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정당이 다수당, 집권당이다. 스스로 지금 흥청만청 쓰고 있다는 걸 고백하는 것인가? 이제 와서 근거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아껴 쓰겠다고 말하는 게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집 걱정 덜기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 종합대책을 통해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자신의 주택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받고, 세입자는 그 대출금의 이자를 납부하는 형태의 새로운 전세제도를 추진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한해 20만호 짓겠다는 민주당도 실질적인 재정대책은 거의 없다. 야야 경쟁적으로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하는데 국민 속이는 공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안철수 후보도 '안철수의 생각'에서 소득별 보편증세를 내걸긴 했는데 최근 점진적으로 개혁을 하겠다고 말하는 걸로 봐서 무너져 내리는 민중의 삶을 제대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복안을 내놓을 지는 미지수다.

주거복지 당사자들이 외쳐야

대선 후보들과 정치세력들은 공허한 외침을 거듭하는 관성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말만 복지국가를 외치는 후보 더 이상 원치 않는다. 집권하자마자 공약에 맞추어 공공 임대주택을 확보하고 주거권을 확립하는 데 사활을 거는 정부를 보고 싶다. 대선을 눈앞에 둔 시점에 민중들의 숨통을 틀어막는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세력이 꼭 대선에서 승리하길 바란다.

역사에서 그냥 주어지는 건 없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 당사자가 나서지 않는데 누가 대신해주겠는가? 쪽방촌과 고시원 거주자, 수급권자, 차상위 계층, 차차상위 계층, 장애인, 비정규직, 실업자, 중산층, 영세 자영업자까지 주거복지가 절박한 당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내야 한다. 우선 각 대선후보들의 주거 복지 공약에 대한 엄정한 검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당사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명확히 내걸고 직접 나서야 한다.

지난달 21일부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광화문 지하보도에서 천막을 치고 24시간 농성을 벌이고 있다. 빈곤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나가려는 조그만 실천행동이다. 우선 복지국가와 경제 민주화, 교육복지, 주거권, 의료인권 등을 위해 당사자들의 직접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