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5. 19:55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또 ‘물건’이 나왔다. 내년 예산안이다. 1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난 적자를 보면 정말 국정 운영을 책임진 사람들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복지를 살리고 재정도 구하는 출구를 찾아야 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얼마나 매력적인가? 세금을 올리지 않고도 복지를 제공하겠다니. 얼마나 믿음직한가? 쓸데없는 지출은 줄이고 지하에 숨어 있는 세원을 발굴해 공약
비용을 충당하겠다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역대 정부 최초로 어떤 복지를 제공하고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공약가계부를 작성하니 말이다.
그런데 어찌 이리도 뻔뻔한가? 대통령 취임도 하기 전 인수위원회가 공약을 전면 축소하고,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공약가계부는 잊히고, 증세가
아니라며 담뱃세·주민세·자동차세 등 서민이 부담하는 세금만 골라서 인상한다.
황당 개그라면 좋으련만, ‘이런 정부 아래서도 살아야
하니 그냥 견디자’ 마음을 삭이고 있는데 또 물건이 나왔다. 내년 예산안이다. 맞춤형 복지란다. 처음으로 예산에서 복지 비중이 30%가 넘었다고
강조한다. 증가율로만 보면 지난 5년 평균 7.0%보다 높은 8.5%다. 하지만 대부분이 기초연금(장애인연금 포함) 때문이다. 올해는 7월부터
최고 20만원을 지급했지만 내년에는 1월부터 적용된다. 기초연금을 제외하면 복지 증가율은 6%에 불과해 기존 복지 증가 속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핵심 공약이었던 고교 무상교육은 아예 폐기 순서를 밟고 있다. 원래 공약은 올해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미뤄졌고 내년에는 꼭 시행한다 했건만 예산은
또 0원이다.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공약 축소는 그나마 논란이라도 거쳤지만 이건 소리 소문 없이 슬쩍 버리려는
듯하다.
재정적자도 심상치 않다. 내년 적자가 33.6조원에 달한다. 올해 적자액도 국회에서 의결된 건 25.5조원이지만 세수
결손으로 인해 실제는 30조원대로 예상된다. 재정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그런데도 정부는 ‘일시적 악화’이며 조만간
개선된다고 말한다. 무슨 근거로? 경기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세수가 늘어난다는 원론적 기대가 전부다. 지난해 9월 정부는 중기재정운용계획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2015년 재정적자를 17조원으로 전망했다. 1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난 적자를 고백하면서 앞으로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정말 국정 운영을 책임진 사람들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 재정의 근본 문제는 세입에 있다. 복지 지출, 안전 강화 모두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재정 규모만 보아도 지출 확대는 불가피하다. 우리나라 재정은 2014년 GDP의 30.3%로 OECD 평균
40.8%, 유로 지역 평균 49.2%에 비해 매우 모자란다. 빠른 고령화와 시민의 복지 열망으로 지출은 늘어나고, 악화되는 재정적자에
대응하려면 해법은 증세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GDP 20%에 머물러 OECD 평균 25%에 도달하려면 연 70조원이 필요하다.
시중에는 지출개혁, 지하경제 양성화 등 유권자 귀를 솔깃하게 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떠돌지만 모두 불량상품이다. 우리나라 재정은 애초 규모가
작고, 토목 분야도 이제는 상당히 포화상태에 이른 데다가 일부는 민간투자 사업으로 대체되고 있어서 지출개혁 여력이 그리 크지 않다. 보도블록
예산을 절감하고 업무추진비를 엄격히 관리해야겠지만 여기서 조달되는 돈은 상징성은 가질지언정 액수는 미미하다. 지하경제 양성화 역시 꼭 달성해야
할 숙제지만 시간이 필요하고 얼마가 발굴될지 모르는 ‘미래 어음’일 뿐이다. 당장 늘려야 하는 복지 예산과 메워야 하는 재정적자를 일부
지출개혁, 언제 생길지 모르는 지하경제 양성화 운운하며 방치할 수는 없다.
공평 증세·복지 증세 위한 사회복지세
도입해야
지금 대한민국은 ‘증세 없는’ 덫에 걸려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고집’ 때문이다(그녀는 이것을
‘원칙’으로 이해한다).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복지공약을 파기하고 재정적자가 30조원대에 이르러도, 지자체가 기초연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아우성을 쳐도, 대통령에게 더 중요한 건 ‘증세 없는’ 신조이다. 법인세 감면을 독차지하는 삼성전자에 세금을 더 내게 하자는 요구가, OECD
회원국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소득세를 올리자는 제안이 그녀에겐 마치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증세 없는’
덫에 허덕이는 대통령을 구해드리자. 악마가 되어 증세에 나서자. 우리 붉은 악마가 외치는 건 서민을 터는 꼼수 증세가 아니라 소득에 따라
누진적으로 내는 공평 증세이고, 헛된 곳 말고 복지 확대에만 쓰는 복지 증세다.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상속증여세에 복지에만 쓰도록
추가 세금을 매기는 사회복지세를 도입하자. 복지를 살리고 재정도 구하는 출구를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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