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21. 23:26ㆍ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증세 정치가 시작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포문을 연 격이다. 국정 운영자로선 당장 복지 확대에 따른 재정 부족이라는 급한 불을 꺼야 한다. 꼼꼼하게 나라살림 방안을 마련했다는 대선 공약도, 취임 이후 역대 정부 최초로 국민들에게 제시했다던 공약가계부도 이미 파산한 상황이다. 증세 없이 나라를 운영하겠다고 큰소리쳤는데 스스로 증세 논쟁을 불러와 대통령 마음이 편치 않겠으나 사필귀정이다. 복지 확대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물결임을 아는 지도자라면 이제는 증세 정치를 소임으로 받아 안아야 한다.
보편복지 진영에도 증세는 절실한 주제이다. 보편복지는 세입 확대를 단짝으로 이어가야 하건만 지난 몇 년간 복지는 성장했으나 세금은 제자리다. 세입 총량이 그대로인 채 무상보육, 기초연금 등에 예산이 쏠려가면서 기초생활보장제, 공공주거 등 취약계층 복지들이 방치되는 복지의 불균등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 예산 여력이 없다 보니 박근혜 정부 복지를 넘어서는 보편복지 나름의 복지 비전을 제시할 엄두도 제대로 내지 못한다.
이번 증세 논쟁을 압박한 도화선은 지자체다. 지자체가 아우성치는 기초연금 지급 디폴트가 그냥 엄살이 아니다. 작년부터 중앙정부에 더 많은 예산 지원을 강하게 요구해왔다. 중앙정부가 사실상 세입을 관리하는 우리나라에서 복지재정 해결의 열쇠는 중앙정부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독자적 세입 확대 권한은 없고, 중앙정부가 결정한 복지 확대에 따라가느라 대응 예산만 늘어났으니 당연한 목소리이다. 그런데 중앙정부 살림살이 형편도 무척이나 어렵다. 올해 재정적자가 30조원을 넘을 듯하다. 내년에도 심상치 않다. 불과 1년 전에 박근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중기재정운용계획에 의하면 내년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1%이고, 임기 말에는 균형재정에 근접하겠다고 호언했으나 얼마 전 당정이 합의한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재정적자 규모도 GDP의 2% 안팎, 30조원대로 예고되었다. 정부가 증세 카드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어떻게 증세하느냐, 증세 정치가 관건이다. 논의 방식과 증세 방안이 중요하다. 우선 박근혜 정부의 증세 제안 방식이 부적절하다. 증세 정치의 성공 여부는 신뢰에 달려 있는데, 민감한 증세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세금을 더 거두면서도 증세라 부르지도 않는다. 소통도 솔직함도 없다. 우리나라처럼 행정부와 의회 불신이 큰 곳에서는 차라리 증세를 위한 국민 테이블을 만들어 여기서 시민들이 토론하고, 의회와 행정부가 그 결과를 받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조세 부담 등 국가 현안을 논의하는 ‘국민대타협위원회’를 대선 공약으로 제안하지 않았는가?
증세 방안도 모두 열어 놓자. 정부는 주민세, 자동차세 등 서민증세 카드를 내놓았다. 직접세가 취약한 한국에서 인두세를 먼저 꺼내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야권과 시민사회에선 소득세, 법인세 최고세율을 올리는 부자증세를 주장해왔다. 나는 ‘복지에만 쓰는 세금, 사회복지세’ 도입을 지지한다. 재정지출에 대한 신뢰가 약한 우리나라에선 증세의 사용처를 복지로 못 박는 복지목적세가 효과적이다. 이미 몇몇 복지단체들이 사회복지세 청원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았다. 최근 일본의 부가가치세 증세도 인상분을 모두 복지에 쓰는 복지목적 증세이다. 증세 논쟁이 본격화되면 기획재정부는 부가가치세 인상을 내밀 듯한데, 이왕이면 일본처럼 복지목적세 방식으로 제안했으면 한다.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 누진적 직접세에 부가되는 시민단체의 ‘사회복지세’와 부가가치세에 추가로 붙는 정부의 ‘소비복지세’가 생산적인 논의를 펼치게 말이다.
대한민국 복지의 핵심어가 보편복지에서 복지증세로 넘어가고 있다. 증세 논쟁이 본격화되길 바란다. 아직은 정부가 증세라는 단어 사용에 소극적이다. 증세 규모도 정부의 국세와 지방세 개정안이 모두 통과된다 해도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에 부족하다. 올해 중앙정부 세입이 예상보다 무려 12조원이나 덜 걷히고 고착화되는 재정적자 구조를 감안하면 더 적극적인 증세 논의가 요청된다. 국민들을 믿어라. 복지증세 테이블을 만들고 납세자인 국민들이 토론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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