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어르신들에게 ‘줬다 뺏는’ 기초연금

2014. 8. 20. 00:07내만복 활동(아카이빙용)/언론 기고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서울역 근방 쪽방촌에서 어르신들을 만났다. 당사자 목소리를 모으는 복지시민단체 활동으로 나선 거지만 마음이 무겁다. 기초연금을 받은 만큼 수급비가 깎인다는 이야기를 믿으려 하지 않으신다. 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렇게 힘없는 노인들을 외면할 수 있느냐며 통탄하신다. 다른 지역을 다녀온 동료 경험도 비슷하다. 기초생활 수급 노인 대부분이 기초연금이 오른 만큼 생계급여가 준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신다.

오늘은 40만명의 기초생활 수급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줬다 뺏는’ 날이다. 생계급여(주거급여 포함) 지급일인 오늘 20일, 독거노인의 경우 7월에 약 39만원을 받았지만 이번 달에는 29만원만 입금된다. 지난달에 기초노령연금이 기초연금으로 바뀌면서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인상된 만큼 생계급여가 공제된 것이다. 많은 어르신들이 통장을 확인하고 왜 수급비가 덜 들어왔느냐며 주민센터에 문의하실 거고 지난달 기초연금을 받았으니 그러한 것이라는 답을 듣고 황당해하고 끝내 좌절하실 거다. 노인빈곤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기초연금이 오히려 가장 가난한 노인을 울리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기 전인 2007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기초생활 수급 노인은 5만원가량의 경로연금과 월 1만~2만원의 교통수당을 받았다. 생계급여와 별도로 총 6만~7만원의 현금수당이 따로 존재했다. 2008년 약 8만원 수준의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면서 경로연금과 교통수당이 폐지되었다. 기존 현금수당이 기초노령연금으로 통합되는 모양새다. 일반 노인은 새로 기초노령연금을 얻게 되었지만 기초생활 수급 노인에게는 기존 현금수당이 사실상 기초노령연금으로 이름만 바뀌어 지급되는 것이기에 추가 혜택은 거의 없는 제도 변화였다.

그런데 기초노령연금 시행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전에 경로연금이 생계급여와 별도로 지급되었으므로 기초노령연금도 그러해야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기초노령연금 일부액을 생계급여에서 공제하더니 2011년 들어 전액을 생계급여에서 삭감했다. 기초노령연금만큼 생계급여가 줄어버리면서 기존에 받았던 경로연금, 교통수당이 사라져버린 꼴이 되었다. 일반 노인은 기초노령연금 혜택을 누리는 반면 기초생활 수급 노인들은 오히려 기존 현금수당만 잃었으니 기초노령연금 도입이 오히려 손해로 귀결되었다.

당시 이 일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진행되었다. 기초생활 수급 노인들은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처지라 항의하지 못했고, 생계급여 구조가 복잡해 자초지종을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했다. 전문가 집단이나 시민사회도 그다지 주목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분명한 법령 근거도 없이 생계급여를 공제한 후 뒤늦게 2011년 9월 ‘기초노령연금액이 수급자의 소득으로 산정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기초연금액을 소득인정액으로 포함’하도록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생계급여가 최저생계비와 소득인정액의 차액을 지급하는 보충원리에 토대를 두고 있는데 기초노령연금도 노인의 소득이므로 그만큼을 차감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경로연금, 교통수당 때는 없던 논리가 갑자기 기초노령연금에서 등장해 빈곤 노인의 복지를 일방적으로 빼앗아갔다.

그래서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드리겠다’는 박근혜 후보의 기초연금 공약이 기초생활 수급 노인에게는 대단한 희망이었다. 5월에 국회를 통과한 기초연금법에도 기초생활 수급 노인에게는 20만원 전액을 준다는 내용이 담겨 있고 보건복지부는 이를 보도자료로 알렸다. 당사자 노인 누구도 가장 가난한 자신들이 20만원 권리에서 배제될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오늘은 이 기대가 무너지는 날이다. 끝내 생계급여가 삭감된다. 노인빈곤을 완화하겠다던 기초연금이 정작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인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통장에 적힌 금액을 몇 번이나 응시하고 있을 어르신, 주민센터에서 큰소리 한번 못 내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돌릴 어르신에게 무슨 말을 드릴 수 있을까? 기초생활보장법 대통령령에 기초연금을 생계급여와 별도로 지급한다는 문구 하나만 넣으면 해결되는 일인데 말이다. 면목이 없다.